오직 수행일념으로 점철되어온 혜담(慧潭) 스님의 50여 년의 수행 여정이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는 책으로 불광 출판사에서 간행 됐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는 깨친 선승의 ‘할(喝)’이라기보다 묵묵히 걸어온 수행과정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회고록이자, 선승으로서 조사어록을 정리하여 설명한 지침서이다. 저자의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과 달마, 혜능의 사상을 통섭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수행의 길을 응집하여 결국, 출가 당시의 물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겠다는 원력으로 출가수행을 시작한 혜담 스님은 조사어록에 전일하여 화두참구에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며, 20여 년 동안 조사들의 화두가 자신의 화두가 되는 달마와 혜능의 선사상을 체득해 갔다. 출가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삶의 고해를 지나 고희(古稀)에 이른 지금 혜담 스님은 “이제 조금 눈이 열린 것 같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번뇌가 다 한 것이 부처가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부처’임을 여실히 관(觀)한 스님의 고백이기도 하다.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되는 선(禪)은 인도불교와는 다른 중국적 성격을 지닌 불교 사상이다. 스님은 이것을 ‘달마의 심(心)종교’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달마의 심종교’인 선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님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禪)은 이제 불교의 일파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류의 지적 유산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선종 이전의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부처를 찾았다면, 선종은 오직 마음에서 부처를 찾는 데 그 결을 달리한다.
초기불교와는 다른 달마 대사의 심종교의 기본 골격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입이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본래 부처라는 이법(理法)과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한 행위로서의 수행 방법을 말한다. 사행은 ‘본래로 돌아가기 위한 네 가지 실천’을 가리킨다. 첫째는 보원행(報怨行)으로 수행하면서 겪는 장애나 역경은 전생에 지은 과보임을 알고, 괴로움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수행이다. 둘째는 수연행(隨緣行)으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고 인연에 따라 움직인다는 진실을 깨닫기 위한 수행이다. 셋째는 무소구행(無所求行)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체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이다. 넷째는 칭법행(稱法行)으로 자기 자신이 본래 청정하다는 도리를 깨닫는 수행이다.
초조 달마의 수행법에는 사념처(四念處) 등에서 말하는 부정관(不淨觀)이 없다. 본래 자성이 불성이고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선종의 교리적 해석이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과 달마, 혜능의 사상을 통섭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수행의 길을 응집하여 결국, 출가 당시의 물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이다. 무엇에도 얽힘 없는 자유자재한 삶, 그러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안목을 키우는 지혜, 그것이다.
혜담 스님은 서문 ‘이 책을 쓰면서’에서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틀림없이 무상(無常)?고(苦)?공(空)?무아(無我), 혹은 부정(不淨)?무(無常)?무아(無我)이긴 하지만, 이것은 현상에 대해서 범부들이 집착하기 때문에 범부들의 그릇된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깨달은 궁극적인 진실을 말한 게 아니다. 그러면 부처님 법문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다.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즉, 실제로 부처님께서 깨달은 법문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를 믿는 것을 순수불교라고 한다.”
결국, 불교의 광활한 가르침은 ‘마음 없음’에 귀결된다. 이 무궁무진한 지혜를 얻기 위한 50년 수행의 치열한 삶, 이 책이 전해주는 뜨거운 가르침이다.
현담 지음 ∥ 불광출판사
양장본 ∥ 159 * 224 * 23 mm ∥ 296쪽
20,000원
책 속으로
이미 제 나이가 70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소납이 수행 과정에서 실패했던 경험들을 후배 수행자들이 똑같이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수행 경험과 선불교(禪佛敎)를 이 땅에 있게 하신 달마 조사와 혜능 조사의 선사상(禪思想)이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7쪽, _‘이 책을 쓰면서’ 중에서)
법문이 있어서 한강에 있는 강변북로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텅 빈 내[我]’가 몸 전체에서 보였습니다. 나라는 이 신체가 내가 아님을 본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설하고 있는 “반야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체득되었습니다. “산은 산이 아니다. 그 이름이 산이다. 그것이 그것을 본다. 부처님이 부처님을 보고 있다. 그것이 산이고 그것이 물이다. 그래서 산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산이다.”라는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45쪽)
‘텅 빈 그 자리’, ‘불식의 자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성(本性)자리를 단순히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소위 해오(解悟)의 상태에 있으면서 그것이 견성(見性)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바르게 보았을 때, 『벽암록』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태로 다가왔습니다. (95쪽)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라는 『유마경』의 말이나, “미혹한 마음 밖에 따로 깨달음은 없는 것,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마음을 파악할 수 없다”는 『금강경』의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의 가르침도 혜가 스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는 도리나 방법이 아니라, 참으로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130쪽)
번뇌가 다한,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것입니다. 끊어 버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번뇌란 원래 없으므로 열반에 이른 상태나 불성?법성?진여(眞如)의 진리 자체로 계시는 부처님의 입장에서의 진리는 다릅니다. (169쪽)
저자 혜담 스님
저자 혜담은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 졸업, 칠불선원과 해인사 선원 등에서 참선 수행, 해군 군종법사 대위로 전역했다. 불광사 불광법회 지도법사를 지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붓쿄(佛敎)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조계종 총무원 홍보실장, 소청심사위원, 호법부장, 재심호계위원을 역임했다. 검단산 각화사 주지, 군법사후원회 초대회장, 선우도량 공동대표, 불교신문 논설위원, 경향신문 정동칼럼 필진을 지냈으며, 현재 불광사 선덕(先德) 소임을 맡고 있다. 역서 및 저서로는 『대품마하반야바라밀경』(상ㆍ하), 『반야불교 신행론』, 『신 반야심경 강의』, 『방거사 어록 강설』,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