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대학 박진영 교수 11년 준비 … 하와이대 출판사에서 발간
저자 박진영 교수(오른쪽)가 일엽 스님의 영문판 평전에 관해 성명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 경완 스님.
근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비구니이자 문인, 사상가인 일엽 스님의 영문판 평전(사진)이 출간됐다. 김일엽문화재단의 후원과 아메리칸대학 철학과 박진영 교수의 원력, 고려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의 지원이 빚어낸 결과다.
제목은, 『Women and Buddhist Philosophy: Engaging Zen Master Kim Iryŏp(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하여)』이다.
일엽 스님 평전은 비구니로서의 삶을 불교적 맥락에서 서술하는 동시에 불교의 심오한 사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현재 미국학계의 관심사항인 여성불자, 여성불교에 관한 논의에 대한 불교 철학적 대답이자, 일엽 스님의 삶과 사상에 대해 철학적 시각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저서이기도 하다.
출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박진영 교수는 "평전에는 일엽스님의 삶의 이야기와 불교교리에 관한 논의가 잘 섞여있어, 불교학자들 뿐 아니라 영어권의 불교 수행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근대 한국과 그 시대의 한국여성, 한국불교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문 평전은 출가를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출가 전, 2부는 출가 후로 1부에서는 일엽스님의 부모님, 탄생, 기독교, 교육과 여성, 문학작품과 신여성 문제 등을 다룬다. 2부가 평전의 주요 부분으로 일엽 스님의 불교 사상을 다루고 있다. 일엽 스님과 불교의 만남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불교 철학에 관한 소개, 일엽 스님의 불교 철학에 관한 논리를 명확하고 일관된 논리로 전개하고 있다. 비영리 학술 도서를 주로 출판하는 ‘하와이대 출판사(University of Hawaii Press)’에서 발행됐다.
박진영(Jin Y. Park) 교수는 워싱턴 소재 아메리칸 대학(American University)의 철학과 교수, 동양학 프로그램 디렉터이며, 김일엽문화재단의 명예이사장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일엽 스님 영문 평전을 2004년부터 2015년까지 11년에 걸쳐 완성했다. 박 교수는 지난 6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고려대학교 국제하계대학에서 동아시아 철학과 종교, 한국문학등의 강의를 진행했다. 또한 7월 25일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주최로 서울에서 이 평전을 주제로 한 강연을 진행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학회에서 활발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김일엽문화재단은 2010년 4월 월송 스님을 초대 이사장으로 창립돼, 초등학생 시공모전, 문도장학금 증정 등의 활동을 벌였다. 현 부이사장 경완 스님은 수차례에 거쳐 김일엽 선사 관련 학술대회와 논문 발표를 진행했고, 2015년에는 덕숭총림 수덕사와 경허만공선양회 후원으로 한서대학교에서 제1회 김일엽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박진영 교수가 2014년 영어로 번역한 김일엽 선사의 저서 『어느 수도인의 회상』과 2017년 일엽스님 영문 평전 저작을 후원했다.
일엽 스님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시대의 벽을 깨고 나간 선각자
일엽 스님(1896 -1971, 본명 김원주)은 근대문학 태동기의 문학도(文學徒), 개화기의 여성운동가, 사상가이자 종교인이다. 스님의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관통되어 흐르는 것은 ‘정신의 투철함’이다. 스님은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투철한 ‘자기 정신’으로 ‘자기의 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을 영위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신학문을 수료하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여성으로, 또한 개화기 최초의 여류 문인으로서 모든 주목을 한 몸에 받던 그는 홀연히 출가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며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스승 만공 선사의 뜻에 따라 절필하였으나 1960년대 초, 대중포교에 뜻을 두고 펴낸 『어느 수도인의 회상』, 『청춘을 불사르고』 등은 출판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돌풍을 일으켰다. 일엽 스님 개인과 비구니 세계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던 이 책들에 대한 관심은 스님의 깊은 성찰과 사색의 세계에 매료되어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고, 비구니의 연애담 쯤으로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내용에 감화되어 입산을 하거나 불교에 귀의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도 만만치 않았다.
일엽 스님은 철학가이자 사상가로서, 삶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시대의 벽을 깨고 나가는 선각자적인 모습이었다. 중요한 인생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불법(佛法)에 있음을 알고 그는 주저 없이 입산(入山)을 결행했다. 스님의 입산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인생을 걸고 찾아 나서야 할 삶의 절실한 출발점이었다. 그는 현실 문제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을 수행의 일차적 과제로 삼았고 나아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인간 구제에 뜻을 두었다. “나를 여윌 수 없는 나는 나를 만날 수 없으나 나와 연결된 남이니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며 항상 자비와 연민에 가득 찬 심경으로 세상을 대했다. 이렇게 뚜렷한 자기의 소리를 가진 까닭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도 종교적인 집착에 머무르지 않고 깊은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생명력으로 깨달음의 길을 알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1971년 1월 28일 새벽, 스님은 자신이 건립한 비구니 선원에서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세수 76세, 법랍 38세.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마지막 열반의 모습은 그토록 치열했던 자신의 삶조차 한 잎새의 운명으로 거두어 가는 것 같았다. 그의 삶이 성공적이었나 하는 일말의 세속적인 질문은 더 이상 부질없는 일이었다. 오직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생(生)의 인연 속에서 일엽 스님은 근세 불교의 보기 드문 선승(禪僧)의 모습으로 우리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