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한국 불교가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면, 그 답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 ‧ 율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과 선의 정신은 잃은 채 묵좌선(默坐禪)에 머물러 머뭇거리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다'는 자세로 맹목적 추종을 일삼다가는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필자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1. 송광사 전 율원장 도일 스님의 일갈
“우리의 판단기준은 항상 부처님의 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원효 대사는 어떻다더라’, ‘경허 스님은 이랬다더라’라는 것만 관심을 갖습니다. 이런 것을 정리하지 않고 어떻게 불교가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스승을 정할 때 혹은 승가의 사표가 되는 분을 정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 ‧ 율 ‧ 론(經律論)을 공히 익히고, 계 ‧ 정 ‧ 혜(戒定慧) 삼학을 잘 닦은 분이어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삶의 모습이 원만한지,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진이 제대로 됐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불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부처님께 묻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선종과 거리가 멉니다. 성철 스님도 선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삶의 방식은 선종이 아니었습니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셨던 절에 가보면 아비라 기도를 하고 삼천 배를 합니다. 이것은 밀교적인 수행방식입니다. 선종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종은 핵심 종지가 무엇입니까? 직지인심(直指人心)입니다. 둘러서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정곡을 찌른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 당신의 가르침과 실제 수행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불행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 종문에서 한 종지를 가지고 계속 밀고 나가지 못하는 현실은 불행인 것입니다. 또 어디선가는 (참선한다는) 스님들이 만년위패를 팔아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종에서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법보신문》 2017. 4. 12.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7590 에서 발췌)
2. 그 주장이 경經과 율律에 맞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존자들이여, 나는 세존 ‧ 훌륭한 장로(長老)가 있는 승가(僧伽) ‧ 학식이 많고 아함(阿含, āgama)에 정통하며 법(法)과 율(律)을 호지하고 논모(論母)를 호지한 많은 장로(長老) 비구들에게서 직접 듣고, 직접 가르침을 받았소. 이것이 법(法)이고, 이것이 율(律)이고,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요.’라고 말하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그 비구 ‧ 승가 ‧ 장로 비구들의 말을 찬탄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마시오. 찬탄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그가 (또는 그들이) 하는 말들을 잘 배운 다음, 경(經)에 비추어 해석하고, 율(律)에 비추어 살펴보도록 하시오. 만약 경에 비추어 해석하고, 율에 비추어 살펴보아서, 그것들이 경을 해석한 것이 아니고, 율을 보여준 것이 아니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이것은 분명히 세존의 말씀이 아니다. 이 비구는 잘못 수지(受持)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버리도록 하시오. 만약 경에 비추어 해석하고, 율에 비추어 살펴보아서, 그것들이 경을 해석한 것이고, 율을 보여준 것이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이것은 분명히 세존의 말씀이다. 이 비구는 잘 수지(受持)했다.’라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시오.”
(《精選 디가니까야》, 이중표 역해, 전남대학교 출판부. 252, 253, 254 & 255쪽)
3. 맹목적인 스승 따르기가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토론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논지의 완벽함이지 그 논지가 지니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권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장애의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권위의 무게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스승이 내린 판단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통용됐던 이와 같은 관행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들은 논쟁에서 “우리의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스승은 물론 피타고라스를 가리킨다. 이미 정해진 견해들이 아주 강해서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권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식이었다.
(《코스모스 Cosmos》,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366쪽 ‘피타고라스학파의 경직성에 대한 키케로의 비평’)
4. 스승을 위하고 존경하는 길
도일 스님이 한국 불교계, 범위를 좁혀서 조계종의 선방 수좌들 특히 성철 스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르려고 애쓰는 이들과 ‘최고의 선사’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 만년 위패 사업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 스님 문중에 보낸 일갈은 이른바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도일 스님의 법문 내용을 전해 듣고, “선방 수좌들이 들고 일어나겠구나. 성철 스님 문중에서 가만히 있을까? 모 스님 문도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뜻밖으로 조용하였다. 이쯤 되면 선사들이 “도일 스님의 지적이 고맙다”라든가, “도일 스님이 우리 현실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했다”라는 식으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도일 스님이 지적한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오래 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스님의 주장은 부처님께서 이미 강조했던 사항임을 《디가니까야》에서 다시 찾아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학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피타고라스 학파가 몰락하게 된 것이 “우리 스승님께서는 ……” 하는 식으로 스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학문 발전의 장애가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전하고 싶다.
이제 성철 스님과 모 스님을 존경하는 문도들이 할 일은 “우리 스님께서 하셨던 방식이니까 …”라면서 무조건 ‘아비라 기도’와 ‘3천 배’ 기도 ‧ ‘만년 위패’ 사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그 때 왜 그렇게 하셨을까?” 그 이유를 따져보고 그 이유가 현재 상황에도 맞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인 경과 율에 맞지 않는 데에다가 오늘의 상황에도 적절하지 않으면, 그것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 성철 스님을 제대로 위하고 존경하는 길이다.
모든 종교계에는 위기의 순간이 있다. 특정 종교와 종파를 가릴 것 없이 그럴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혹 한국 불교가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면, 그 답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 ‧ 율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과 선의 정신은 잃은 채 묵좌선(默坐禪)에 머물러 머뭇거리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다'는 자세로 맹목적 추종을 일삼다가는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