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의 법문에서 활성 스님은 평소 지론이기도 한 중도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그 구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파했다.
고요한소리를 통해 부처님의 원음을 확산시키게 된 이유는 스승 경봉 스님께서 사미계를 주시며 내려주신 ‘불교중흥의 동량이 돼라’는 당부를 지킨 것이라고 밝힌 활성 스님은 그동안 1천 여명에 이르는 고요한소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일관되게 중도, 4성제, 8정도를 주제로 법문을 해왔다.
고요한소리 창립 30주년 기념 중도포럼 법문에서도 “사실 나는 이것(중도) 외에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고 밝히기도 한 스님은 “중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 안에 불교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중도를 너무 일상적으로 들여다보니까 중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파했다.
모처럼 친견하는 선지식의 보리심 충만한 간곡한 법문에 법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한 말씀 한 말씀이 가슴을 울릴 때마다 부지불식간 합장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불자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예정 시간을 넘겨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스님의 법문이 마치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끝나자, 불자들의 표정에는 법문이 마무리 된다는 데 대한 아쉬움과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듯한 감동과 환희가 교차했다.
다음은 활성스님의 법문을 정리한 것이다. 현장에서 취재수첩에 정리한 내용이어서 다소 내용이나 뉘앙스가 다르게 전달될 우려도 없지 않지만, 가능한 법회현장의 감동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오기나 와전이 있다면 전적으로 기자의 과문 탓임을 밝힌다. 편집자
오늘 3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 모임이 파격적인 규모입니다. 조촐하게 회원들을 상대로 이야기하던 제 입장에서는 이런 규모 자체가 버겁습니다.
출가 전 <독서신문>에서 일을 했습니다. 한 2년 쯤 되던 해 휴가를 맡아 통도사 극락암으로 갔습니다. 극락암으로 휴가지를 정한 것은 <독서신문>에 기고를 하던 석지현 스님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석지현 스님은 복잡한 머리도 쉬고 산사와 스님의 체취를 맡고 싶으면 당연히 경봉 큰스님이 계신 통도사 극락암으로 가야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극락암에 도착해보니 경봉 스님께서 마침 부산에서 온 신도 두 분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젊은이는 누군가?” 경봉 큰스님께서 물었습니다.
“동태(활성스님의 속명)입니다.” 제가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큰스님께서 “동과 서가 따로 있나? 동태라니, 왜 동태가?”라며 다시 물으셨지요. 그래서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왜 웃기만 하나.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디….”하셨습니다.
이것이 경봉 큰스님과의 첫 인연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주지실을 비우고 저를 그 방에서 자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저를 데리고 산이고 어디고 데리고 다니면서 참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말씀 가운데 제 머리에 깊이 박힌 말은 “한 생 안 난 셈 쳐라.”였습니다.
저는 휴가 일주일 내내 밥 얻어먹고, 큰스님이 마련해놓은 아란야(토굴)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불도 할 줄을 몰라서 멀뚱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큰스님께서는 탓하지 않고 귀엽게 봐주시며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안 난 셈 쳐라. 안 난 셈 치고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노라면 머리가 시원해지고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 이곳에 잘 왔다는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극락암에서 나와 부산으로 가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부산고를 나와 부산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바둑도 두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지냅니다. 친구 중에 검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보다 바둑이 고수여서 지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는 절에서 있다가 와서 그런지, 제가 두 판이나 내리 이겼습니다.
그 때 친구가 말하기를, 검사 생활을 하다가 부산으로 발령이 나서 고향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서울로 올라오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서울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 친구는 가족들이 자기를 따라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며 학교 등에 적응하는 고통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다음에 올라가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검사로 일하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 즉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한 일이 없다는 미안한 생각에 온 가족이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지 이틀째 되던 날, 신문에서 ‘부산에서 검사 일가족이 화재로 전원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검사 가족이 휴가 때 만났던 제 친구와 가족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제 검사 친구가 소파에 안자 졸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를 떨어뜨려 불이 난 것이었습니다. 불이 난 것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카펫에 불이 붙어 아파트 현관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온 가족이 베란다 쪽으로 피했다가 불이 베란다까지 밀려오자 할 수 없이, 이 친구가 7층 아파트에서 자녀부터 한 명씩 7층 아래로 던졌다고 합니다. 두 아이와 아내를 던지고 마지막으로 자신도 뛰어내렸지만, 온 가족이 다 사망하는 비극이 빚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삶인가?” 부귀영화와 행복이 보장된 것 같았던 검사친구와 그 가족이 이렇게 허망하고 끔찍하게 죽었다는 현실은 제가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사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고, 그럴수록 경봉 큰스님의 “안 난 셈 쳐라”는 말씀이 뇌리에 가득 찼습니다. 번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고, 결국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출가 결심을 굳힌 뒤, 어머니에게 출가의 뜻을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지만 허락을 해주셨고,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을 하셨습니다. 하기야 제가 2대 독자이니 허락을 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출가도 못하고 그대로 지냈는데, 아버지의 꿈에 아버지를 꾸짖으며 때리는 무서운 노장(노스님)이 나타났습니다. 하룻밤도 아니고 2~3번이나 똑같은 꿈이 반복되자 아버지가 마침내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아버지는 “출가를 막는 게 아닌 것 같다. 출가를 할 놈이구나.”라고 하시면서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그 길로 회사로 달려가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마침 안거 결제일이 하루가 남아있는지라 빨리 절로 가야 한다면서 일방적으로 퇴사를 통보하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제게 참 많은 배려를 해 준 회사인데 그만 무례를 무릅쓰고 출가를 이유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이지요.
그렇게 통도사 극락암으로 도착하니, 큰스님께서 물으셨습니다. “행자할래? 공양주할래?” 저는 공양주를 맡았고, 안거 3개월 동안 공양주를 살았습니다. 주로 한 일은 쌀을 씻은 것이었는데, 열심히 쌀을 씻었습니다. 선방수좌가 70~80쯤 되었는데, 돌 하나 안 섞이게 쌀을 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씻었고, 큰스님으로부터 “안거 동안 돌 안 씹은 것은 이번 철이 처음”이라는 칭찬까지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공덕으로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그때 3명이 함께 사미계를 받았는데, 한 분은 속퇴하고, 한 분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미계를 받던 날 경봉 큰스님께서 당부하시기를 “불교중흥의 동량이 돼라”고 했습니다. 이 당부는 이후 제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제 중 노릇은 다 이 좌우명에 입각한 것입니다. ‘고요한소리’도 불교중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출가하고 계를 받은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온갖 빚을 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 형제들, 회사 사장님 등. 모든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내 할 도리를 하나도 못하고 살았구나, 내가 세상 잘못 살았구나”라는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가를 해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경봉 큰스님께서 특별히 저를 아란야에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3년 동안 아란야에서 살고, 그 후에는 선방을 가든 뭐를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란야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새소리, 물소리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행복에 취해 있다가 문득 빚을 갚아야 겠다는 생각을 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 형제, 사회에서 도움을 받은 분들, 경봉 큰스님, 통도사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10.27법난이 일어났을 때에 종단을 수습하는데 나름대로 일조를 해 종단에 진 빚도 어느 정도 갚았고, 이후 불교중흥을 어떻게 해서 이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요한소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출가 전 사회에서는 제가 하는 일이 되는 게 없었는데, 절에 오고 나니까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밥을 굶은 적도 있었고, 노숙을 한 경험도 있습니다. 직장도 10군 데 이상을 바꿨습니다. 가는 데마다 회사가 망하거나 중도에 그만둬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출가를 하고 난 후에는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희양산 봉암사가 국립공원이 될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봉암사 문을 닫고 서울로 올라와 관계요로에 공원 반대의 뜻을 전달할 때에도 이상할 정도로 반연들이 필요한 부처에 근무를 하고 있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 지정을 막아 봉암사를 보호하고, 나아가 봉암사가 종립선원으로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록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30년 은둔의 수행자 활성스님의 첫 대중법문에 경향각지에서 많은 불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요한소리’를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자신감 하나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고요한소리 초대 대표인 한기호 회장님 부부가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 회장은 자신의 모든 반연들을 고요한소리에 참여시켜 고요한소리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으로 3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고요한소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일년에 한 두 차례 법문하는데, 주로 중도, 4성제, 8정도를 주제로 법문합니다. 사실 나는 이것 외에 달리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8정도를 씹고, 씹고, 곱씹어서 이야기 합니다. 오직 4성제, 8정도, 12연기만을 반복해서 집중적으로 설법했더니, 우리 회원들은 이제 불교를 좀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중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안에 불교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도를 너무일상적으로 들여다보니까 중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도와 중용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지 의문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중도와 중용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중’에 대해 나름대로 천착을 해보았습니다. 세계를 크게 구분하면 동양, 서양, 남양(인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동양에서는 ‘중용’, 서양에서는 ‘중간’, 인도에서는 ‘중도’를 이야기합니다. 3대 문화권에서 한 결 같이 몇 천 년의 문화를 이어오는 중심사상으로 ‘중(中)’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자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 부처님의 ’중도‘에서 공통적으로 중을 들고 있습니다.
서양의 ‘중간’에서의 중은 산술적이고 기하학적에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러다보니 기하학과 산수학이 발달하고 이것의 외연이 확장되어 물리학이 중심이 된 과학으로 이어지고, 오늘날의 인류를 이끄는 과학문명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중용’의 중은 항상하다는 뜻의 용과 함께 결합되어 중을 항상 견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을 항상 견지하는 것이 잘 안 됩니다. 오죽하면 공자도 중용은 참 어렵다고 탄식을 했겠습니까. 어려워지니까 점차 추상적 개념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중’의 숙명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속성이란 극단으로 가게 돼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아무리 속성을 ‘중’에 묶어 두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중’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셨습니다. 중도는 빠알리어로 맛지마빠따비타, 즉 ‘중을 지향하는 걸음’이라는 뜻이 됩니다.
중은 사람이 가진 속성 상 현실에서는 추상화되어 극단으로 흐르면서 ‘중’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미리 이런 위험을 간파하시고, 이에 대한 튼튼한 버팀목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즉 아리야, ‘고귀한 성스러운 팔지도(八支道)’인 것이지요. 8정도도 중은 중인데,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어 고요로, 수승한 지혜로, 열반으로, 마침내 해탈로 이끌어줍니다. 앞의 ‘중’과 뒤의 ‘도’가 합쳐진 것이 ‘중도’입니다. 그냥 한 단어로서의 중도가 아닙니다. 중도는 두 개념이 결합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4성제를 두고 요지부동으로 딱 묶어서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장치를 해놓으신 것이 부처님 지혜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깨달은 ‘중中의 걸음[中道]’,
눈을 밝히고 앎을 밝히는 것,
고요[寂靜]로, 수승한 지혜[神通智]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나아가는
그 치우침 없는 걸음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의 길[聖八支道]’이다.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초전법륜경 SN V420>
공자가 중, 중용을 말했지만, 그의 손자인 자사에 와서야 비로소 중용사상이 정립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소크라테스의 손자벌입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당신께서 최초에, 초전법륜에 완결된 중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중도는 중용이나 중간과 취지가 다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관념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일생을 통해 중도를 실현해보이셨습니다. 중도포럼 팜플렛에 인쇄해놓은 <초전법륜경>의 중도와 팔정도에 관한 부처님의 설법 내용은 짧지만 내용 그대로가 불교의 정화(精華)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는 궁전에서 태어났어야 할 분이 가다가 길가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궁에서 자라다가 길을 향해 뛰쳐나갔고(출가), 길에서 수행하시다가 길 위에서 깨달으십니다. 또한 평생을 길에서 깨달은 것을 평생 펼치셨으며, 길에서 열반에 드신 분이십니다. 바로 당신의 출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생사를 길 위에서 시현해 보이신 것입니다. 참 뜻 깊은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길’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처(處)’라는 개념을 중시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학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하겠지만. 처는 도를 대치하는 개념으로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처는 ‘아야따나’라고합니다. ‘입(入)’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육처, 육입이라고 하죠. ‘처’와 ‘입’의 개념은 ‘산냐(想)’와 ‘이나야(의식)’의 주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개고’는 사실 대승적 표현이고, 부처님은 ‘오취온개고’라고 했습니다. 오취온은 고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매우 구체적인 개념을 제시합니다. 공(空)은 개념 자체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이고, 또 깨닫고 난 후(悟後)의 소식입니다. 깨닫지 않은 사람이 공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고(苦)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24시간 현실적으로 닥쳐오는 것이 고입니다. 인생살이, 생로병사가 다 고입니다. 그래서 고성제입니다. 고라는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이 고는 진리로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고를 아는데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진리로서 말씀하시고, 이 고를 뿌리 뽑을까, 해결할까 하는 문제 제기를 하셨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다듬고, 왜 고라 했을까? 왜 고를 겪어야 할까? 하고 다듬습니다. 이게 12연기죠. 그러니까 이것을 멸하는 길이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다듬어서 고에서 벗어난 멸(滅)이 되고, 또 그 원인으로서 집(集)이라는 성제가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실천방법을 팔정도로 제시하는 데, 이것이 도(道) 성제가 됩니다. 이렇게 4성제라는 불교가 표방하는 유일한 진리, 4성제가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도상에서 도를 가르치고, 일생에서 시현하고 다듬어서 진리로서 고집멸도로 나타내주셔서 마침내 우리가 부처님의 법을 만나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중도포럼을 열어 이 시대에 길을 묻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언제는 길이 아니었던가? 이것을 조금 더 이야기를 해야 할텐 데요. 어쩌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참 ‘고’가 많습니다. 뭐 요즘은 하늘에도 쳐다보면 고가 꽉 찼습니다. 지구온난화, 사막화, 이런 것들이 노골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조용하던 땅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지진은 일본이나 있는 줄 알았지요. 천지(天地)가 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인(人),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김정은이니, 트럼프니, 박근혜니 하는 사람들 참 무섭습니다. 아주 무서워요. 사람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요. 옛날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인간이라고 해서 인(仁)을 표시하는 용어였는데, 어쩌다 사람처럼 무서운 게 없어요. 나는 그래서 이 천·지·인을 신삼재(新三災)라고 불러봤습니다. 물, 불, 바람이 아니라 천지인이 신삼재가 된 세상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 고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쪼여 들어오는 고. 특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한반도, 더구나 서울은 온난화, 미세먼지까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요. 이런 정도가 되면 사람들이 체념을 하게 됩니다. 속수무책이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영양제 챙겨먹고, 병원 가고 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버둥거립니다. 그 외에 길이 없어. 답이 보이지 않아요. 이런 고통의 구조에 갇혀 여러분들이 갇혀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8정도를 말씀하실 때는 고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길로 제시하신 겁니다. 저 위의 무슨 당위적인 가치로서 제시한 것이 아니고 문제 해결의 구체적 길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들도 8정도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8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8정도는 왜 8정도여야 하는가? 6정도, 7정도는 왜 안 되나? 다른 종교에서는 사랑 하나만 이야기하면 다 해결 된다는데, 왜 부처님은 번다하게 여덟 가지나 길을 제시하셨을까? 외우기도 어렵고, 그렇죠. 그런데 여기에 아주 오묘한 부처님의 진리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8정도는 과연 그 자체로서 어떻게 완벽한 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8정도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7번째 도인 정념(正念), 즉 ‘삼마사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마음챙김이 아주 중요한 핵입니다. 8정도가 있고, 8정도가 기능하게 하는 핵심도 정념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 전에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라는 두 분의 스승이 계셨습니다. 이 두 선인도 계와 정진, 선정을 다 닦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정(定)의 최상단계를 다 성취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다 배우고 난 후 이것은 ‘아니다’라고 나오신 것입니다. 나와서 고행도 하시고 선정도 하시고 난 후에 깨달으신 것이 중도정입니다. 즉 색계정에 배대시킬 수 있는 그런 정입니다.
경에 보면 초선정부터 비상비비상처정까지 쭉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죠.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왜 부처님은 높은 단계를 놔두고 그 아래인 4선정을 강조하셨는가.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중도정이에요. 그래서 팔정도의 정정은 바른 정인데, 바른 정이려면 4선정, 중도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수행과 부처님께서 제시한 8정도 수행이 무엇이 다른가 하면 바로 정념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선정은 중도정(中道定)입니다. 이것은 색계정(色界定)에 해당합니다.
중도정이란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선 왜 제4선이 진리라고 강조하셨을까요? 제가 그 이유를 가만히 음미해보다가 당연히 그래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와 계합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교의 우주관도 ‘중도우주’입니다. 8정도 중에서 정정(正定)도 4선정이어야 합니다. 불교는 정, 즉 선정지상주의가 아닙니다. 우주도 제일 높은 우주가 좋은 것이 아니에요. 중간우주, 즉 색계천이 중요한 것이죠. 부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좋은 곳을 만나도 여기서 머물며 좋은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디 좋은 곳에다 집을 지어 살겠다는 마음을 내선 안 됩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과 상치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궁궐도 버리고 나오신 분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법으로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면 도(道)와 처(處)라고 표현하십니다. 처는 장소이거나 집을 말합니다. 여기에 갇혀 살지 말고 벗어나서 향상일로의 삶을 사는 것이 바른 삶이고 진리의 길입니다. 날마다 향상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사람의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방궁 지어놓고 사는 것은 다릅니다. 무색계의 정은 처정이라고 나는 봅니다. 바른 정은 중도정입니다.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무소유정, 웃따까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정을 체험한 최고의 선정가들입니다. 그분들은 그 단계를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소유처정이나 비상비비상처정이 궁극의 단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직접 두 스승의 가르침을 다 마쳐보고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심해탈’의 경지가 있어서, 즉 ‘마음의 행복’의 경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8해탈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고’라는 큰 나무의 줄기를 끊어냈다고 해서 고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뿌리가 남아 있어 완전한 해탈이 아닙니다. 고를 완전히 해결한 것이 아닙니다. 심해탈은 해탈은 해탈이지만 구경해탈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심해탈을 얻고서도 아직 아니라고 해서 수행을 해서 8정도를 수행하신 것입니다. 팔지성도를 통하면 제8지에서 제9지, 제10지로 자동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즉 8정도를 통해 제9지, 제10지, 즉 지혜의 해탈을 거쳐서 혜해탈을 성취할 수 있고, 비로소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간 크게 한 마디 더 보태겠습니다. 상수멸정(想受滅定)이란 무엇일까요? 상수멸정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합니다. 이것이 부처님 이후에 생겨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저는 상수멸정을 무소유처정이나 비상비비상처정의 단계에 오른 사람들을 구경의 단계, 즉 혜해탈의 경지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시설하신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라 칼라마나 웃따까라마뿟따와 같은 분들, 즉 자신이 닦은 것이 최고라는 확신을 가진 분들에게 당신들이 경험한 무소유처정이나 비상비비상처정이 끝이 아니라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부처님께서 중간시설로 설한 것이 상수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을 멸하는 경지가 여기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시설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너희들은 상에 머물러 있으니까 더 나아가라고 시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수멸이야말로 8정도로 돌아가는 길의 중간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여러분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상, 산냐야말로 모든 극단을 만들어내는 원흉이요, 문젯거리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 전쟁, 종교, 이데올로기 등이 다 상, 즉 산냐에 기인한 것이지요. 산냐의 해결이 고(苦) 해결의 실마리이자 요핵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삼마사띠’입니다. 숫타니파타에 나오지만, 우리는 상을 직접 건들이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팔정도의 사띠를 해서 중도를 나아가면 상은 저절로 무력해지고 사라집니다.
그럼 사띠가 무엇인가? 사념처, 신수심법 4념처를 사띠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치우칩니다. 그러면 사띠를 놓치게 된다. 신수심법의 요체는 우리가 늘 바깥을 향해 있는 것을, 그런 것을 안으로 돌리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남을 보고 오장육부가 있느니, 머리가 있느니 해봐야 다 바깥을 향한 일종의 추측입니다. 추축으로는 진리를,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수심법으로 들어감으로써 내 몸, 내 안의 것을 체감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막연하게 관념적, 피상적 삶을 벗어나서 실질을 사는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신은,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 불고불락이니 하는 것, 그 다음의 심은 내 마음에 돌아가는 이 경계에 탐욕이 붙어 있나, 안 붙어있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조금만 관찰하면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가, 성내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을 닦아서 일어나는 유상심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해탈까지 이르면, 거기서 법으로 들어갑니다. 법념처에서 다섯 가지 장애로서 보고, 오취온이 어떻게 상 놀음을 하고 있는가, 육처 결로 결박되어있는가를 보고, 그러고 나서 칠각지로 나아가서 마지막으로 사성제 수행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