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르지만 ‘도천盜泉’의 물을 마시지 않았던 공자처럼, 그리고 “더러운 공양물은 받지 않겠다”며 발우를 뒤집어 엎은 버마의 승려들처럼 “이 정권에서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갈 경우에는 우리는 일체의 정부 예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 의지를 천명해달라....]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1.
옛날에 “도천이라는 샘물이 있었는데, 공자는 목이 말라도 그 샘물을 마시지 않았다. ‘도천’이란 이름을 미워한 때문이었다.” (水名盜泉, 孔子不飮, 醜其聲也.)
중국 고전 『설원(說苑)』 「담총(談叢)」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실질이 가장 중요하지만 일단 이름이 바르지 않거나 지저분하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성현과 바른 길을 가는 선비의 선택이다. 공자처럼 아무리 목이 마를지라도, 가까이 있는 샘물에 ‘도둑놈의 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면 마시지 않는 것이 맞다.

2.
<승가의 거룩한 행위, 복발(覆鉢)>, 내가 정두淨頭라는 필명으로 2007년 9월에 쓴 글의 일부를 수정해서 옮긴다.(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265)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지만 이 글을 쓸 당시 버마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군사 정권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지금은 일부 극단적인 불교민족주의자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소수 무슬림인 로힝야족을 탄압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반(反)군부 시위에 참여 스님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발우를 거꾸로 뒤집어엎는 복발(覆鉢)을 통해 “군사 정권과 절교(絶交)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버마는 전 국민의 85% 이상이 불교도인 불교국가이다. 군사 정권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스님들을 존경한다.”는 표시로, 전국에서 사원과 탑을 새로 세우고, 불교 유적을 수리하며, 때에 맞추어 스님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왔다. 국영 매체에서는 “정부에서 스님들을 잘 모시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의 매일 이와 같은 보시 행위를 광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정권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설사 그가 80살이 넘은 노스님이라고 할지라도 투옥하고 고문하는 일을 거리끼지 않았다.
  
불교국가인 버마에서 스님들이 발우를 뒤집어엎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너희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 차라리 굶을지언정 당신들이 주는 공양물을 받아먹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폭력에 맞서서 평화 시위를 펼치고 있는 스님들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고, 승가의 본분에 맞는 거룩한 행위였다.
  
‘발우를 뒤집는 복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여러 《율장》의 인연담에 따르면, 나쁜 짓을 골라서 했던 육군(六群) 비구들의 꼬임에 빠져 닷바말라뿟따(Dabbamallaputta; 沓婆摩羅子)라고 하는 훌륭한 비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재가 신도 왓다(Vaddha; 大離奢)가 “닷바말라뿟따가 내 아내를 범했다.”라며 비난했다. 성(性) 행위는 승단에서 영구 추방되는 무거운 죄이므로, 이 비난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닷바말라뿟따는 비구 자격을 박탈당하는 바라이 죄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 비난을 전해들은 부처님이 음모와 음해였음을 밝혀내어 닷바말라뿟따는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를 음해한 왓다에게는 잘못에 상응하는 벌이 내려지게 되었다. 그 벌이란 승가 전체가 왓다와 절교(絶交)를 하는 뜻에서 발우를 뒤집어엎어 왓다의 보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을 복발(覆鉢; pattanikkujjana)이라고 하는데, 출가자가 왓다의 집에 탁발하러 가는 것도 금지되고 왓다가 승가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런 조치는, 왓다가 더 이상 보시를 통해 선업을 쌓을 수 없게 된다는 의미였다. 만일 왓다처럼 복발의 징계를 받은 재가자가 그 해제를 원할 때에는 전체 승가 앞에서 자기 잘못을 사죄 · 참회하고 승가가 이 참회를 받아들이면 원래 상태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승가에서 함부로 복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꼭 그래야만 할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재가신도에게 행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3.
‘박근혜-최순실-김기춘’ 정권에서 주로 문화 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들의 명부인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이들에게 정부 예산 지원에서 배제시키는 ‘음흉陰凶한 짓’을 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 때문에 김기춘 ‧ 조윤선 ‧ 정관주 등등 전직 고위 공직자들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으며 박근혜 탄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문화 예술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목이 마르지만 ‘도천盜泉’의 물을 마시지 않았던 공자처럼, 그리고 “더러운 공양물은 받지 않겠다”며 발우를 뒤집어 엎은 버마의 승려들처럼 “이 정권에서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갈 경우에는 우리는 일체의 정부 예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 의지를 천명해달라.
  
박근혜 ‧ 김기춘 ‧ 조윤선의 허수아비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와 정부 서울 청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블랙리스트 책임자 엄중 처벌하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국민들에게 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정권 담당자들, 앞으로 정권을 잡겠다고 꿈 꾸는 여야당 정치인들도 각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것보다 무거운 벌이 어디 있겠는가.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