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중앙박물관, 수국‧흥천사 소장 불화 등 63점으로 테마전
3월 말까지…수국사 ‘밀교대장’, 흥천사 ‘극락구품도’ 등 눈길 

절에 오래 다녀도 제대로 절에 소장한 성보를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하거나 법당에 게시했어도 불상에 가려 전체를 온전히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에는 고려나 통일신라 대에 비교해 불사가 많지 않았지만, 왕실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발원을 위해 왕실과 종친들은 부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왕실 주도로 불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왕과 왕비, 종친들이 불사에 동참했고, 조선시대 불화의 상당수가 대비, 왕비와 상궁, 궁녀 등 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조선말기에는 왕실 후원으로 조성된 불화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서울 인근에 있는 왕실관련 사찰에 전해오는 불화들은 대부분 왕실의 여인들이 간절한 비원이 어린 성보들이다. 이 귀중한 성보들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관장 현조 스님)에 의해 마련됐다.

불교중앙박물관은 지난 2월 1일부터 오는 3월31일까지 2달 간 ‘서울지역 왕실발원 불화’를 주제로 한 테마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왕실 원당이었던 수국사와 흥천사의 불화 등 총 21건 63점의 불교성보가 전시되고 있다.

수국사 불화는 일반에게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황금사찰’로 알려진 수국사는 세조 5년(1459)에 창건됐다. 세조의 맏아들로 요절한 의경세자의 묘인 경릉의 능침사찰이었다. 성종 2년(1471) 인수대비 후원으로 119칸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찰이 됐지만 연산군 때 화마로 소실됐다. 몇 번의 중수가 반복되다가 1900년 월초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중창했다.

이번에 선보이고 있는 수국사 불화는 아미타불도, 극락구품도, 십육나한도, 현왕도, 신중도 등으로 1907년에 일괄 조성됐다. 당시 “왕실로부터 금 1500원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황제와 황태자, 태자비, 귀비 엄씨, 의친왕, 영친왕의 안녕을 기원하며 대시주자인 강재희와 그의 아버지 강문환이 황명으로 불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왕실후원으로 조성된 불화답게 불화의 주요한 부분에 금니나 금박을 사용했다. 아마도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구도, 즉 정확하게 선을 구획해서 9등분한 면에 그린 극락구품도와 십육나한도는 이 시기의 양식적 특징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보물 1580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나온 복장유물도 전시된다. 13~14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다양한 복장유물이 나왔는데, 두 점의 전적이 주목된다. <밀교대장> 권9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특히 <밀교대장>은 그동안 고려 문신 이제현이 지은 서문과 <세종실록>에 “왜인에게 밀교대장경판과 주화엄경판을 보내줬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을 뿐 실물은 전해지지 않았는데 수국사 아미타불 복장에서 그 실체가 확인됐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조선시대 금속활자인쇄본으로 세조가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며 큰 글자의 자번을 직접 썼다. 권말에는 세조 발문과 김수온, 한명회, 임원준 등 발문도 함께 실려 있다.

조선시대 최초의 능침사찰로 태조때부터 왕실의 원찰 역할을 담당해온 흥천사의 성보도 함께 전시됐다. 흥천사는 태조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을 지키기 위해 창건된 절이다. 조선시대 드물게 도성 안(지금의 정동)에 건립된 흥천사는 당시 170여 칸에 이르는 대찰로 위용을 자랑했으나 태종이 능을 지금의 정릉으로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흥천사 역시 자리를 옮겼다. 흥천사는 순조 때부터 다시 왕실의 발길이 빈번해졌고, 헌종, 철종 대에도 왕실의 후원이 이어졌다. 흥선대원군 역시 흥천사 주요 시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사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흥천사에는 불화 40여 점이 전해지는데, 주로 19세기 이후에 조성됐다. 전시에서는 아미타불도, 극락구품도, 지장시왕도, 현왕도 등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불화를 가까이 볼 수 있다. 극락보전은 철종 4년(1853)에 건립됐는데, 흥선대원군 후원으로 대규모 불사가 이뤄졌다. 함게 조성된 불화들은 왕실과 상궁들이 왕실안녕과 복을 빌며 조성한 것이다.

구획을 나눠 극락을 표현한 극락구품도는 대허 체훈스님과 축연스님 등이 불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서양화 기법이 두드러지는 감로도는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불화로 관심을 모은다.

불교중앙박물관장 현조스님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을 통치이념으로 삼았지만 죽음 이후에 대해 답할 수 없었던 유교의 한계로 불교는 꾸준히 신앙됐고, 왕실이 주요 불사의 중심이 돼 왔다”며 “수국사와 흥천사 성보를 통해 전 시기동안 대중을 위로하고 정신적 버팀목이 돼 줬던 불교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