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공직자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하라!”고 정치권과 국민 대중에게 당당하게 요구해야...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계시는 공무원 여러분께 몇 말씀 드리려고 컴퓨터를 켜기 전에는 할 말이 아주 많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막상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그리고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0년 7월 중순부터 2015년 5월 말까지 5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저와 동료로 지냈던 여러분들이 계속 언론 매체와 국민 여론의 질타를 당하고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와 지시를 순종하며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기만 하는 곳’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제 마음도 꽉 막히고 이 사태를 가져온 인사들 멱살을 잡고 마구 혼내고 싶은 심정인데, “너무 아프다”는 엄살 한 번 못 낸 채 숨죽이고 있던 여러분들이야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마음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왜 우리에게 이러는 거야? 정치권에서 저지르고, 정치권에서 보내온 엉터리 장차관의 부당한 지시를 받으며 고생한 우리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속을 끓였을 것입니다. 그 마음 백분 이해합니다. 저라면 화를 더 크게 냈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만이 아니라 드러내놓고 큰소리로 외쳤을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우리에게 안 그랬던 적이 있느냐? 공무원들은 아무나 두드려도 되는 동네북이냐? ……”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직급과 직책이 높든 낮든 문체부에 재직하는 5년 동안 제가 만난 공직자들 대부분은 - 아마 98% 이상일 것입니다 -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높은 청렴성淸廉性’과 ‘투철한 국가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머지 2%가 채 안 되는 인사들 중에는 인격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고, 정치권이나 외부 비선秘線에 선을 대어 승진 등에서 특혜를 보려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문체부뿐 아니라 전체 공직자에 대한 국민 여론을 악화시켜온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이런 사람 몇 명과 함께 일을 해보아서, 마치 ‘깨끗한 연못의 물을 다 흐리게 만드는 미꾸라지 한 마리’ 같은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압니다.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어서 그것이 ‘최순실-차은택’의 국정 농단 때문인지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저나 여러분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도대체 이런 부당한 일들이 왜 벌어지는 거야? …”라면서 의아하게 여기기만 했을 뿐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언론의 보도를 보고서야 전임 ‘김장관-김차관’은 ‘최순실-차은택’이 보낸 하수인과 전위대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 온 국민과 함께 여러분들도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최순실-차은택’ 그리고 ‘김기춘’의 부당한 지시와 명령을 여과濾過 없이 전달할 뿐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이권利權까지 덧붙여 이 나라 문화체육 행정을 농단해온 전임 장차관 아래에서 여러분이 겪은 정신적인 고통이 컸음을 잘 압니다. 비율로 따지면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간부 몇 명이 적극적인 부역附逆 행위까지 저질렀던 것이고, 많은 분들은 장차관과 이들 부역혐의자 간부 몇 명의 부당한 지시와 명령에 소극적으로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책임이 모두 면제될 수는 없습니다. 저녁에 소주 몇 잔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면죄부를 주면서 방관하고 체념한 도덕적 책임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히틀러 치하의 나치스 정권이 저지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다룬 책 《나치대학살》을 읽었습니다. 결론 부분에서 저자 최호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치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열광만이 아니었다. 대중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미소와 무표정이야말로 언제나 손익계산에 분주했던 나치스 최고 지도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 살인으로 직결되는 야만은 처음부터 인간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야만성이 학살로 드러나는 데는 다만 세 가지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나는 전쟁의 음습한 기운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직의 명령이라는 변명거리였으며, 마지막 하나는 총이라는 문명의 도구였다.”
 
제가 알기로 문체부 내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그 1%가 채 안 되는 간부 중에 히틀러 측근이었던 힘러 ‧ 괴링 ‧ 아이히만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못된 부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체부 조직을 무너뜨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이 나라 문화와 체육을 말살시키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엄중嚴重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역자들일수록 정치 바람의 흐름에 민감하게 움직일 줄 알기 때문에 정치권에 손을 써서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직책을 이어가고 큰소리를 쳐댈 가능성도 없지 않으므로 잘 지켜봐야 합니다. 저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활보하게 되는데도 여러분들이 아무 대책 없이 소주 몇 잔에 화풀이를 하며 투덜대기만 하고 만다면, 여러분들은 ‘나치 대학살’을 묵인 ‧ 방조했던 독일의 능력있는 관료와 평범한 시민들처럼 ‘조직의 명령’을 이유로 핑계를 대면서 훌륭한 ‘관료조직’을 국정 농단과 문화 말살의 도구로 제공해주는 큰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문체부의 미래에 희망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중요한 말씀을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일부 부역자 간부들은 요리저리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 뱀장어처럼 힘든 일은 하나도 책임지지 않고 하위직급에 미룬 채, 공功은 독차지하며 장차관과 외부 실세에 잘 보여 승진하겠다는 욕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들은 바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업무를 처리했던 동료들이 많더군요. 장차관이 법률 규정에 어긋나게 특정 단체와 기관에 정책 기금을 지원하라는 부당한 지시와 명령을 거부했다가 인사 상으로 불이익을 당한 과장을 비롯해서, 전임 장차관 시절에 이런저런 일로 해서 곤욕을 치룬 서기관 ‧ 사무관 ‧ 주무관들이 여럿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들도 윗사람에게 잘못 보여서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겠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공직자로서 원칙을 지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국정을 농단해온 무리들에게 마음속으로는 수긍하지 못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조직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핑계를 대면서 그들에게 여러분들의 탁월한 업무 능력을 도구로 제공해온 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膺懲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전임 장차관 치하에서 부당한 지시와 명령을 거부하거나 항의하다 불이익을 당한 동료와 후배들에게 용서를 빌고 그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것만이 모두가 함께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다시는 공직자들이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하라!”고 정치권과 국민 대중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