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비빔밥토크] 성탄절 기념 대담 ②
<에큐메니안>의 기획칼럼 '레페스 포럼'의 멤버들이 성탈절을 기념해 원음방송 <둥근소리 둥근이야기>에 출연해 생방송 대담을 나눴다. 가톨릭, 기독교, 불교, 원불교에서 바라본 예수 탄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토론자는 다음과 같다.
김근수 (가톨릭프레스 발행인, 해방신학) *사회 및 진행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일본불교학)
이병두 (종교칼럼니스트/ 북칼럼니스트,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종교평화연구원장)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종교평화학)
*이들은 지난 5월에는 종교, 문화로서 불교의 가치, 사회적 역할, 과제 등을 주제로 원음방송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근수 : 반갑습니다. 가톨릭 해방신학 연구소장 김근수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원음방송종교와 프로그램 둥근소리 둥근 이야기에서 예수 탄생을 주제로 이웃종교인들과 대화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좌담을 통해서 모든 종교인들이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더 종교다운 종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함께 대화 나눌 종교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종교칼럼리스트이자 종교평화연구원 원장으로 계시는 이병두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개신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교수님이자 목회자로 활동 중이신 이찬수목사님 나오셨습니다. 원불교에서는 원광대학교 교수님이자 정역원에 계시는 원익선교무님 나오셨습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다면 오늘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가 잘 실천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어때야 한다고 보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병두 : 오늘은 축하의 말씀만 드려야 하는데 오늘날 보여주는 모습과 반대로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나 성당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개신교 특집은 지난번 부활절 때 했고, 오늘은 주로 천주교쪽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천주교 대구교구에서 수십년간 운영했던 희망원 사건이나, 인천 교구가 운영하고 있는 인천성모병원 문제를 보면, 저것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상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흔한 말로, 구만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그 뒤에 처리해 가는 과정을 보아도 희망이 안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웃종교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대담에서 이야기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축제나 각 교회와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와는 다르게, 교회나 천주교 교단으로 해서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근수 : 이병두 선생님 같은 분이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영입을 해야 개신교가 변화될 것 같습니다.
원익선 : 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죠. 일단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에 12사도와 식사를 함께 하실 때처럼, 일단 인류가 형제가 되는 날 임을 확인하는 그런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보구요. 부자와 가난한 자와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죄인과 시민, 노인과 아이들, 남과 북 사이의 모든 인류의 축제로 승화되었으면 하구요. 성인을 기리는 날만큼 좋은 날이 없다 할 만큼 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하고 이런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면서 차이를 느끼고 줄이고 공존을 모색하는, 타자를 생각하는 하루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전쟁 중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하루를 쉬는 것이 나오는데, 저는 오늘날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비상상황이지 않습니까. 남북간, 정치도 그렇고 종교야 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야말로 민중들 속에서 앞서서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교단들이 최근에는 교단을 만을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모든 종교가 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이 사회를 존재하는 것인지 깊이 고민하는 그런 축제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근수 : 크리스마스는 어때야 한다 해마다 설교를 하실 이찬수 목사님?
김근수 발행인, 이병두 칼럼니스트ⓒ에큐메니안
이찬수 : 사실 이런 설교는 부담스러워 잘 안하고 슬쩍 회피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마스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날짜가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의미가 중요한건데,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죠 미사라는 말은 영어의 미션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고, 즉 그리스도의 보내짐, 소명 이런 뜻이 들어있는데, 예수 탄생일을 크리스마스라고 이름 붙이게 된 이유는 신학적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핵심은 세상과 하나님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정말 그게 신의 뜻에 맞는 구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요청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상당히 긴장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또는 성탄절이 교회조차도 상업화하고 한편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교회조차도 그것으로 끝나거나 그것을 이용하는 듯한 분위기가 많은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그리스도의 미사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짐, 또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세상으로 보내져야 한다. 라는 의미가 담겨진 의미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크리스마스가 진지해 질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김근수 : 예수 탄생에서 저는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느껴야 하겠지만 또 하나는 처음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근본을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원불교에서는 대각개교절이 큰 명절입니다. 각 종교에서는 이날을 어떻게 보내며,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와 비교하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집니다.
원익선 : 저번 모임에서 대각개교절을 말씀 드렸다시피, 원불교의 대각개교절 처음은 공동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모두가 같은 날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것은 정신이 거듭나는 날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점을 소태산 대종사님이 대각하는 날로 잡으신 거죠. 지금은 그 근본에 입각해서 대각개교절이 되었지만, 모두가 다 깨어있는 날이라는 의미가 크다고 보면 됩니다. 무명으로부터 벗어나서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큼 의미 있는 날이 없거든요. 그렇게 보지는 못하더라도 깨달음을 얻으신 성현들의 눈으로라도 , 마음으로라도 보면 좋겠다,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에 서 계셨기 때문에, 탄생이 곧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각개교절과 비교할 때 육신의 탄생과 정신의 탄생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궁극적으로는 육신과 정신이 조화로워야 하는데 아마 어떤 같은 지점에서는 만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건강한 정신, 건강한 육신이 갖춰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보는데, 아무튼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지만, 우리 인류 전체가 새롭게 태어나는 날로 받아들인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근본에서 바라보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근수 : 네 원불교에서 모두가 깨닫는 날이 대각개교절이라는 설명이 큰 감동으로 오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이병두 : 과거 부처님 오신 날이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년에 쌀밥 한번 먹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날 절에 가면 그래도 떡도 먹고, 쌀밥도 먹고, 이랬던 시절인데 지금 웬만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 당시에는 법문을 할 적에 빈자일등의 이야기를 강조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힘들게 기름을 사서 밝힌 등불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이런 내용인데요,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빈자일등 법문이 거의 사라졌어요. 등에 값을 매기고 이러기 시작한지가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불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세속화되는 종교와 맞추어서, 등의 값을 매기고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찰을 유지하는 입장에서는 일년에 한번 크게 돈을 벌어들이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좋다고 봅니다. 빈자일등이 주로 법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되어가기를 바랍니다.
김근수 : 가난한 사람이 등 하나를 올린다...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충격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찬수 : 동서양의 문화나 문명차이일수도 있겠는데요. 크리스마스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기장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명이라는게 하늘과 인간 사이에 긴장이 있다. 대체로 불교의 석탄일이나 원불교의 대각개교절은 상대적으로 그에 비하면 붓다와 인간 사이에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긴장이 덜한 느낌이 있는데, 그리스도교는 그런 신과 인간사이의 긴장이 있죠. 바로 크리스마스가 신과 인간 사이의 긴장관계가 하나되는 날, 그리고 하나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차원에서 기쁜 날 임은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는 기쁜 날이고, 인간의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고, 상상해보는 날이기도 하고, 그렇게 놓고 보면 두분 선생님의 내용과 통하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이찬수 목사, 원익선 교무 ⓒ에큐메니안
김근수 :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 인들에게는 자기들끼리 교회 안에서 기쁨을 나누는 일이 주가 되었다면 이제는 교회와 성당 밖으로 나가서 가난 한 자와 함께 나누는 날로 변화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어떤 실천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익선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하늘의 정의가 이 땅에도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실정법은 정의를 실현하자는 민주공화국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인데 사회현실에서 보듯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가진자들의 편에 서 있거든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 그를 쫓는 형사 이름이 자베르지요. 우리는 장발장을 주인공으로 보지만 자베르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거든요.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지만은, 한국사회에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미리엘 신부와 같은 종교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자베르와 같은 양심 있는 지식인, 양심 있는 관료들, 양심 있는 기업가들이 필요하다고 보구요. 양심을 종교가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 정치인들 가운데는 검사 판사 변호사 등 힘 있는 법의 전문가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법률의 ‘Law’의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요. 지금 정교분리가 된 사회이지만, Law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의가 종교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름화’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로우의 정당성이 구축해 주는 것은 종교의 ‘다름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의 가르침 법인데, 이점을 깊이 생각해야 하고,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를 통해 보고 느끼는 것은 진정한 참회가 없다는 것, 우리가 만든 사회현상 이거든요. 수많은 민중들의 절규에 직면하면서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참회나 회개가 필요하고, 이러한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종교인들이 결국은 사회의 잘못에 대해서 통렬하게 지적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도 반성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병두: 배움이 짧아서 예수님의 생애를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짧은 소견으로도 예수님의 일생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당시의 창녀나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고 돌맹이 맞던 세리나 이런 사람을 끌어안아 주는 장면에서 공감을 갖게 되었거든요? 과연 지금 현재 신구교를 가릴 것 없이 그러고 있는가? 버림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돌보고 있기 보다는, 당시 예수님이라면 야단을 쳤을 정치인들이나 재벌들과 만나서 어울리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고 이러는 데에 열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에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찬수: 예수 당시는 전형적인 율법 사회였지 않습니까? 법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생각되고 법 자체가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법은 위로부터 주어진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때가 많은데, 예수는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 속에서 굳은 제도나, 사람을 죽이는 법적 형식을 거부한 분이시죠. 내적 자유를 추구하고 내적 자유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분이거든요 원익선 교수님도 법의 정당성이 어디서 오는가 질문을 하셨는데, 예수는 탈법적인 분이었다. 탈법의 목적이 정말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었잖아요,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의 근간이었고, 그런 해동이 예수의 생애 일관된 모습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한국사회는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국사회 전반이 예수의 이런 정신으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근수 : 자본주의 핵심 진리는 ‘부자는 행복하다’ 이런 문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이 문장을 그리스도교와 다른 이웃종교들이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바라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병두 : 한국에 무슬림 이주자들,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이런 문제가 심각한데 그들에 대해 가장 배타적으로 대하고 있는 곳이 일부 개신교 집단인 것 같습니다. 종교적 배타성을 버리고 그들에 대한 배려를 끝없이 놓지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구요. 여기서 한 말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노벨상 받은 미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 그것이 있든 없든 선한 사람은 선행을 하고 악한 사람은 악행을 한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한다면 그것은 종교 때문이다." 여기에 제가 덧붙여서 앞으로 이런 말, "종교적 확신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선행을 더 잘한다. 교회에 가서 예수님 말씀을 자주 듣는 사람이 훨씬 더 선행을 잘하고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간다." 라는 말을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김근수 : 부드럽지만 뼈아픈 심각한 말씀 감사합니다.
원익선 : 예수님이 바라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지내는 따뜻한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구요. 인간의 한계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잘못했을 때는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가 있는 사회, 그러면서도 잘못을 뉘우쳤을 때는 뜨겁게 안아주는 어머니가 있는 사회, 형제 자매들끼리는 서로 어깨를 맞대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인류가 한 가족이 되어서 지구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놓고 대화하는 가족처럼 다정한 지구 가족이 되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지구 사회가 되길 바라셨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갈릴리에서 설교하실 때, 수많은 민중들이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는데, 버림받고 소외 받은 사람들, 배타적인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으로 예수님 곁으로 다가왔다는 것, 바로 갈릴리에서의 모습이 예수님이 추구하고자 했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예수님이 안 계시지만, 그 누구가 되었든 간에 갈릴리의 모습이 세계의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근수 : 예수가 바라는 세상이 한반도에도 일부라도 빨리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이찬수 : 사실 예수의 스승처럼 신학자들이 보건데 예수의 스승과 같은 분이 세례 요한인데요. 그 세례 요한이 죽고 나서 예수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세례를 베풀면서 구약성경의 이사야서를 인용했어요.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험한 실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이렇게 선포한 요한의 말의 핵심은 하나님의 구원은 구조적모순이 극복되고 소외된 이들이 높아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렇게 가르쳤던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본격 활동을 시작해요 그리고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요청합니다.
제 생각에 예수가 말씀한 가장 핵심은, ‘아버지가 자비로우시니 여러분도 자비로우시오’ 라는 요청 속에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바로 요한이 얘기 했던 하나님 나라와 통하는데요.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프고 이런 이들을 어머니의 모태처럼 더 포용하는 것이 예수가 생각한 그리고 예수가 믿은 하나님의 자세이거든요. 예수가 바로 그런 것을 실천했던 분이죠. 그러다가 그런 것을 거부한 이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지만 죽음을 당하면서도 결국은 용서해요. 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서도 그런 것들을 비추어보건데 예수가 바라던 세상 그것은 정말 자비가 넘쳐나는 세상,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근수 : 예수님이 바라는 세상을 오늘 한국 현실에 비추어서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박근혜가 없는 세상, 최순실이 없는 세상, 김기춘이 처벌받는 세상, 우병우가 감옥에 있는 세상 이렇게 표현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시간과 오늘 이어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4대 종교에 대표적인 종교인 여러분들과 예수의 탄생과 삶,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 나누어 보았습니다. 좌담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레페스포럼 / 한지수 기자 (정리) webmaster@ecumenian.com
※ 이 글은 <에큐메니안>과 네이버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레페스 포럼’ 관계자와 해당 매체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