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철 기고]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 불자들의 슬픔
“불상 반환, 왜 몇몇 불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이어야 하나”

윤제철 대불련총동문회 상임고문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 회수 운동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적은 글이다. 윤 고문을 이 불사에 동참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정작 이 운동에 참여해야할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에 깊은 슬픔을 맛보았다. 누가 관음상 반환불사를 추진하는 불자들을 슬프게 만드는가? 윤 고문의 절절한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지난 7월 7일 오후 4시, 대전지방법원에서 한 민사소송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약 4년 전 한국의 절도범들이 일본 대마도에 잠입하여 고려시대 불상을 훔쳐 왔고, 검찰은 이 불상을 몰수하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수장하고 있는데, 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지 말고 원 소유자인 서산 부석사에 인도해 달라는 소송이다.

이 불상은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고려 말인 1330년에 충남 서산의 스님과 신도 30여명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는데, 1350년 이후 창궐한 왜구들이 약탈하여 대마도로 가져갔다가 1527년에 대마도 관음사에 모셨다고 한다. 부석사 측은 이 불상이 원래 부석사 불상인데 왜구가 약탈해 간 것이니 부석사에게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일본 관음사측은 그 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당했다는 증거는 없고, 한국 절도범들에게 도난당한 사실은 분명하므로 관음사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소송에서 원고는 서산 부석사, 피고는 관음상을 보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이날 원고측은 “관음상을 몰수하여 보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문화재 보존의무가 있는 국가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기다렸지만,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측은 “현재까지 원고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관음상의 약탈 경위나 제작된 장소, 일본으로의 유출 경위 등을 입증하기 어려우므로 반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재판에는 서산 부석사의 남녀 신도들과 국내외 기자들이 많이 참석하여 법정이 가득 차고,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통로에 서서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재판부(제12민사부)의 재판 진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재판장은 서두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알았으면 더 넓은 법정에서 재판을 했을 텐데 미안하다. 다음 재판 때는 넓은 법정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엄격하고 위압적인 줄만 알았던 법원에서 이렇게 친절한 인사로 재판을 시작한 것이다.

이 재판은 첫 공판이어서 단시간에 끝났다. 재판을 마무리하면서 재판장은 “이 사건 관음상이 지금 잘 모셔져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원고측은 “그렇지 않다. 지금 문화재연구소 지하 창고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부석사나 예산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모셔 신도들이 종교의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관음상을 적합한 곳에 모셔야 한다는 말을 이해한다. 지금 모신 곳이 적합하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민간 친화적이었고, 문화재 관리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그래서 방청객들은 감동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 불자들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재판이 시작되기 2시간 전인 7월 7일 오후 2시, 대전지방법원 앞에서는 반대로 부석사 관음상의 일본 반환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이 설립한 인권정당 문화재발굴조사위원회가 가진 회견이다. 이들은 “우리가 일본측에 역사에 대한 사과반성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절도품을 못 돌려주겠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권정당의 정식 명칭은 ‘강제동원일제피해일본군위안부인권정당’이다. 이들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사과반성을 잘 받아내기 위해서는 관음상을 반환해 주어야 한다”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독도라도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 불자들은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일본 측에 역사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라, 그 시기의 경제수탈, 민간인 학살과 문화재 약탈, 1590년대 임진왜란과 고려말 왜구침략에 대한 반성도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복잡한 경위가 있긴 하지만, 현재 국내에 모시고 있는 부석사 관음상은 당연히 우리가 보존하여야 하며, 앞으로도 우리는 일본이 탈취해 간 모든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일본에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 등 요구할 사안이 많다, 우선은 우리가 국제법상 규약에 따라 도난 물건을 반환하고, 과거사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또한 우리 불자들을 슬프게 한다.

불법 문화재 반환에 관한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 의하면 “외국으로부터 불법 반입된 문화재에 대하여 상대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반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협약은 소급효가 없다. 그렇다면 고려 말 왜구가 불법적으로 반출해 간 문화재는 우리나라에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은 면책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건의 판단 역시 당연히 이 협약의 정신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법의 글자가 아니라 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석사 관음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원대학교 김경임 교수는 그의 저서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이라는 책에서 고려 말 왜구의 서산 침략의 기록과 그 정황을 제시하고, 부석사 관음상이 기증이나 교류된 것 아니고 약탈의 결과일 것이라고 언급한 권위 있는 일본 학자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불법 문화재에 대한 간접증거의 사례와 그 증거 능력, 프랑스와 멕시코,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웨덴과 폴란드 간의 불법문화재 해결사례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 부석사 관음상을 일단 반환하고 과거사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다는 그들의 주장은 공허하다. 만일 부석사 관음상처럼 조성연대가 확실하고 왜구에게 약탈 당한 정황적 증거가 확실한 문화재를 일본에 반환해 주게 된다면 지금 현재 일본 도처에 산재한 나머지 문화재들을 어떤 논리로 돌려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김경임 교수는 유네스코 참사관, 외교부 문화외교국장과 튀니지 대사를 지낸 사람으로 세계적인 문화재 약탈의 역사와 분쟁사례를 폭 넓게 연구한 분이다. 도난문화재에 대한 ‘국제법상의 규약’ 운운하는 사람들은 무력에 의한 문화재 약탈금지에 관한 국제법상의 규약에 관해서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국 절도범들이 팔려고 훔쳐온 불상을 무턱대고 반환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크게 실추 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또한 우리 불자들을 슬프게 한다.

2012년 10월 한국의 절도범들이 대마도에서 관음상을 훔친 것은 물론 불법이고, 또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일이다. 절도범들의 행위는 불법이었고, 따라서 모두 처벌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고려 말 왜구가 이 관음상을 약탈해 간 사건과 묶어서 생각해 보면 결국 서산 부석사에 모셔져 있다가 대마도에 불법 유출된 관음상을 원상회복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들 절도범들은 2012년 10월 대마도에 잠입하여 이 관음상 외에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을 함께 절도해 왔다.(사진①의 왼쪽 불상) 그러나 이 여래입상은 그 후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빼앗아 간 것이라는 증거도 없어 지난해 7월 일본에 돌려주었다. 이 하나 만으로도 우리나라의 국격은 충분하다.
 
오히려 고려 말에(왜구), 임진왜란 때,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 가고도 약탈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그 반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의 국격을 논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불자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 불교 종단이다.

이 소송은 현재 서산 부석사와 그 신도들, 그리고 문화재 환수의 사명감을 가진 몇몇 불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 있다.
 
선조들의 재난 극복의 발원이 담긴 관음상, 인자한 미소가 거룩하여 일본에서도 문화재로 지정한 관음상. 재판 결과에 따라 이 관음상의 거처가 결정된다. 매우 중요한 재판이고, 투입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종단은 강 건너 불 보듯 한 푼의 예산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전국 각 사찰에서는 그 수입금액의 일정 부분을 총무원에 납부하고, 특히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은 관람료 수입의 12%를 총무원에 납부한다. 분담금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종단이며, 어디에 쓰기 위한 분담금인가? 적어도 문화재 관람료에서 거둔 분담금만큼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데 써야 할 것이 아닌가?

예산 지원도 지원이지만 이 사안에 대하여 종단에서 관심을 갖고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 아닌가? 불교계를 대표하시는 총무원장께서 의견을 말씀하시고, 발원기도를 해 주신다면 사회적 관심이 달라질 것이다. 총무원장께서 바쁘시다면 문화부장이 하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날 재판정에는 총무원의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산 부석사 관음상의 눈물”의 저자 김경임 교수가 방청석 앞쪽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김교수는 불자가 아니라 기독교 신자이다. 총무원에서는 불교 문화재 지키기를 기독교 신자에게 맡기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 불자들은 슬프기만 하다.

이 재판의 피고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우리와 한편이고, 따라서 이 재판에서는 우리가 승소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 측에서 맞고소를 하여 대마도 관음사로의 인도를 청구하고, 여기에 막강한 실력의 국제변호사를 동원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 불자들은 역량을 총결집하여 이 사건에 강력하게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대불련총동문회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