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라와다교단 붓다(웨삭)데이 현장, 마하보디선원을 가다
테라와다 의식, 탁발공양, 보시, 스님들의 릴레이 법문 등 눈길
테라와다 불교권의 부처님오신날 행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테라와다 불교교단이 정식으로 법인으로 등록되었고, 미얀마, 태국 등의 테라와다교단에서 정식 절차를 거쳐 출가한 한국인 테라와다 스님들 10여 분이 활동하고 있지만, 오랜 대승불교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테라와다 불교전통은 여전히 생소하다.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봉행하는 양대 축제는 까티나(가사공양) 축제와 붓다데이(웨삭데이, 음력 4월 15일)) 축제다. 테라와다불교의 한국정착에 힘을 보태겠다는 편집방향을 밝힌 바 있는 <미디어붓다>는 지난해 부산 붓다의길따라선원에서 봉행된 까티나 축제를 취재해 보도한 데 이어, 이번 부처님오신날(5월 21일)에는 경주 외곽에 위치한 마하보디선원에서 열리는 붓다데이 현장을 찾았다.
붓다데이 1부 행사로 한국테라와다 교단 소속 스님들이 야외에 모셔진 불단 앞에서 예경을 올리고 있다.
경주 외곽에 위치한 마하보디선원의 모습.
탄생불을 모셔놓은 모습.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웨삭데이는 유엔에서도 전 인류가 함께 축하하고 기려야 할 기념일로 정해진(1998년) 바 있으며, 가장 큰 축제일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불교전통에서만 각 나라별로 부처님오신날을 기리고 있지만, 전 세계의 불교권에서는 음력 4월 15일을 웨삭데이, 즉 부처님 탄신일로 통일해 축제를 열고 있다.
한국테라와다 불자들은 오전에 등 달기와 관욕(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 의식을 진행한 후, 야외에 모셔놓은 불상에 전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 모여 참배와 촛불, 꽃, 청정수를 공양 올리고 난 후 법당으로 다시 모였다. 아직은 한국테라와다교단이 초창기 단계인 까닭에 법당에는 50명 남짓의 불자들이 참가했을 뿐이지만 테라와다의 필수독송인 <자애경>을 함께 합송하고, 스님의 선창과 재가자들의 후창으로 이어지는 공양의식의 엄숙함과 정성스러움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저희들은 부처님을 스승과 의지처로 믿고 따릅니다. 부처님의 담마는 우리들을 기쁘게 합니다.
부처님은 인도 북부 지방 성스러운 가문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나셨으며, 성는 고따마이시고 이름은 싯닷타였습니다.
그 분은 석가 종족의 가문과 왕족이라는 세속의 부귀영화를 포기하시고 출가 사문의 길을 택하시어, 신들과 마라, 범천, 범행수행자, 종교지도자, 왕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 중에서 으뜸가는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진리를 가르치는 데 능숙하신 부처님은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지혜와 덕행 함께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입니다.~<중략>
이제 저희들은 4월 보름에 이곳 마하보디선원에 함께 모여 부처님을 회상합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향과 꽃, 초들을 공양 올리며, 몸과 마음 다하여 엎드려 예경 드립니다.”
이날 붓다데이 행사는 크게 2부로 나누어 진행됐다. 오전에는 의식 및 사사나 스님의 간단한 ‘붓다의 날’ 법문에 이어 11시 30분부터 남방불교의 탁발의식이 재현 및 점심공양, 오후에는 붓다데이 축제에 참석한 모든 스님들이 차례로 법문을 하고 폐회 이후 스님과 재가자가 차를 함께 마시며 담화를 나누는 것이다.
간단한 의식과 사사나 스님의 붓다의 날 법문을 경청한 재가자들은 곧바로 각자가 정성껏 마련한 탁발 공양물을 들고 스님들을 기다렸다. 이 시간에 재가자들은 공양간과 포살당(시마홀) 사이에서 음식과 함께 생활필수품을 공양할 수 있다.
1부 법회가 끝난 후 탁발시간에 스님들에게 음식물과 보시물을 공양하는 재가자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공양 올리는 재가자와 공양을 받는 비구스님의 모습이 진지하다.
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가 곶감을 공양올리고 있다.
각자 마련한 음식이나 공양물을 들고 가지런히 일렬로 정렬한 한국테라와다교단의 재가자들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부처님 당시 승가의 모습을 이 땅에 새로이 재현한다는 자부심도 얼핏얼핏 엿볼 수 있었다. 재가자들 중에는 미얀마 마하시센터에서 출가해 여러 차례 정진하고 위빠사나 수행지도를 하는 도이 법사를 비롯해 스리랑카에 유학을 하고 현재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정준영 교수, 동국대에서 강의하는 김진태 교수 등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탁발의식과 공양을 마친 후 2부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중들은 다시 법당으로 모여들었다. 2부는 이날 마하보디선원 붓다의 날 축제에 참석한 스님들의 법문을 듣는 순서다.
제일 먼저 수마나 스님이 길상경에 대해 설법을 시작했다.
“법문주제가 길상경이니 행복한 길로 잠시 가봅시다. 길상경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부처님께서 논하신 것입니다. 제따와나 선원에서 설하신 것이지요. 내용은 익숙하고 쉬운 것이지만 그래도 곱씹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갈라’를 오늘날의 언어로 말씀드려볼까요. 예를 들면, 마음이 여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좀처럼 고쳐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굳건하고 확고하지 않은 이는 어리석은 이와 어울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또한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쉬우니 선한 장소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좀 성장할 정도가 되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나름대로 자신에 맞는 규칙을 정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올바른 효도의 토대가 되고 자녀를 올바르게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바른 생계가 확고하게 유지가 되어 평화롭게 일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알기 쉬운 표현으로 길상경의 뜻을 설명하는 수마나 스님의 법문을 듣는 불자들의 표정은 고요하고 밝았다.
공양을 받은 스님들이 공양장소인 포살당(시마홀)로 들어서기 전 재가자들이 스님들의 발을 씻어드리고 있다.
시마홀에서 공양을 하고 있는 스님들. 공양 받은 음식에 깃든 은혜를 무겁게 여기는 표정들이 감동을 자아낸다.
이어 국내 첫 삼장법사로 널리 알려진 한국테라와다교단의 대표적 스님 아짠 빤냐와로 스님이 ‘붓다 탄생과 유훈 및 깨달음’에 대해 법문을 시작했다.
“오늘은 불기의 시작점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지만 부처님 입멸하신 날이기도 하고, 성도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 3개의 경사스런 날을 다 합쳐서 붓다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5년 후 카필라로 가서 처음으로 법을 설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교에서 가장 큰 축제의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온 것도 부처님께 예경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축복된 날이요,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부처님께서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이것이 계속 변함없이 전해졌을 때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의 간결하고도 요긴한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사사나 스님이 연기의 말씀을 주제로 설법했고, 뿐냐디빠 스님이 ‘성도의 말씀’에 대해 법문했다.
스님들의 법문이 끝난 후 선원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보시의 시간이 끝나자 대중들은 공덕회향게송을 합송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서,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서, 담마에 예경 올립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서, 상가에 예경 올립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고하게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서,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조촐했지만 장엄하게 한국테라와다교단의 붓다의 날 축제는 막을 내렸다. 아직은 작은 규모이지만, 어느 곳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진솔한 축제를 목도할 수 있었다.
경주 외곽 산골에 위치한 한국테라와다교단 소속 마하보디선원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의 입가에서는 저절로 ‘사두~, 사두~, 사두~ 가 읊조려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