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 교수 기고] 깨어있음이 곧 지혜요, 그것이 곧 자비다

“얼룩진 종단 현실에 안주하며 지혜와 분리된 자비행 거론하는 건 훼불”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를 맡아 ‘파사현정’의 기치를 들고 불교계의 빗나간 행태를 앞장서 비판해온 우희종 교수가 최근 불교계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깨달음 논쟁’ 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우 교수는 일부 불교학자의 사변적 글을 읽으면서 학자로서의 한계가 드러나 보여 일침을 가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우 교수는 일전에 <미디어붓다>에 기고한 글이 ‘깨달음의 미신화’에 방점이 있었다면, 이번 글은 ‘깨달음에 의한 지혜(깨어있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담은 글이라고 소개했다. 깨달음과 자비를 나눠 생각하는 일부 학자의 관념적인 글에 대하여, 개인의 깨달음을 통해 얻어진 지혜는 그 자체로 주변에 대한 자비로 표현되는 것이고 결코 둘이 아님을 지적하고자 했다고 우 교수는 덧붙였다. <미디어붓다>는 이 글에 대한 격조를 갖춘 반론이 있다면 게재할 방침이다. 편집자

깨어있음이 곧 지혜요, 그것이 곧 자비다

깨달음을 통한 깨어있음은 왜,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지혜와 자비행으로 나타나는가? 라는 질문은 불교라는 종교를 교리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 삶의 근간이 되는 신앙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전자는 논리에 근거한 지식이 될 것이고, 후자는 삶의 변화를 수반한 지혜로 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는 개인을 넘어 화택 속에 있는 타자들의 이고득락을 위해 깨어있는 삶을 강조한다. 경전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란 표현도 있듯이, 불자의 연기실상에 대한 바른 깨달음은 참된 지혜와 더불어 깨어있는 삶으로 이어진다. 연기실상의 통찰이라는 지혜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자타불이로서 고통의 공감(compassion)이라는 모습으로 자비행의 근간이다.

고통(dukkha; 무상에 의한 불만족)이란 삶을 살아내야 하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인 생명체를 전제한다(유정·무정 실유불성을 말하는 대승불교에서도 무생물의 고통을 구제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공감을 말하는 불교에서 불살생의 생명존중이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독화살의 비유처럼 붓다의 가르침은 철저히 삶의 현장을 전제하고 있으며, 고통의 근원으로서 탐진치라는 생의 욕망에 주목한다. 따라서 불가의 고통과 깨달음의 문제는 현실에서 생명체가 지닌 욕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열반(nirvana)은 고통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욕망의 불이 꺼진 상태로 말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통과 자비행을 이야기할 때 욕망에 근거한 고통에 대하여 조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편의를 위해 조금 단순화 시킨다면 생명체가 절절히 겪게 되는 고통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지니는 기본 욕구와 생로병사라는 변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통이 있고, 탐진치라고 하는 어리석은 욕망에 의해 스스로 불필요하게 만들어낸 고통이다.
 
전자의 고통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본 욕구를 지닌 생명체라면 그 누구나 겪는 고통으로서 그 고통의 조건의존성을 통찰하여 실체 없음을 알게 되지만, 그와 맞닿아 붓다의 가르침에서 보다 강조되는 것은 탐진치로 인해 생기는 불필요한 삶의 현장 속 고통의 문제다. 부처님 당시 그 두 종류의 고통을 혼동해 오해한 제자들이 칼에 익숙한 이에게 부탁해 목숨을 끊자 부처님께서 탄식과 더불어 심히 꾸짖고 관련된 계율마저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병들어 고통에 괴로워하는 제자를 찾은 부처님이 그 모습을 탓하기보다는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의 무상성을 들여다보아 편안하게 입적하도록 했다. 불교는 욕망 속에 늘 고통을 느끼는 생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의 허망함과 이기적 폐쇄성을 보게 한다.

한편, 고통의 공감에 의한 생명존중과 이를 위한 자비행을 지금 이대로 구족한 세상임을 강조하는 ‘일즉다 다즉일’의 화엄의 관점에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화엄의 관점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각각의 모든 존재는 지금 이대로 ‘온전’하며(관념적인 ‘완전 내지 완벽’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아름다운 존재다. 한 존재는 전 우주와 같기에 한 개체의 고통과 생멸은 우주의 고통과 생멸이 되어 불가의 생명존중은 단지 한 개체의 고통에 공감 여부를 넘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의 우주적 행위다. 개체로서의 생명이 지닌 욕망은 단지 탐욕이 아닌, 성찰과 감사를 수반하여 생명력에 가득 찬 자비로 전환된다.
 
그렇기에 깨달아 지혜로운 이가 왜 자비심을 내어 중생을 구제하려 노력해야 하는가? 깨달으면 이미 부족함 없이 행복 자체로 완벽한데 뭘 더 한다는 말인가? 식의 질문은 지극히 사변적인 학자들의 질문일지는 모르지만 종교적 체험을 통한 질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질문 자체에 이미 너와 내가 있고, 완벽하고 못하고의 이분법적 사유와 논리가 담겨있다. 깨달음을 통한 지혜의 깨어있음은 그런 상대적 모습을 넘어선다. 다시 말하면 지혜 속에 깨어있는 삶이 곧 자비가 되는 종교적 체험 없이, 논리와 이해로 접근해서 던지는 철학적 질문일 뿐이다.

깨어있는 지혜 속에는 세상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부 귀신 굴에 빠진 이들처럼 세상은 구족해서 시시비비할 것 없고 더 말 할 부분도 없다는 식의 허망한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이는 지혜구족의 ‘깨어있는 자(覺者)’로서의 붓다가 평생을 파사현정의 자세로 길 위에서 설법한 이유를 모르는 이다. 진리에 대한 법거량에서의 유마거사의 침묵이 삶의 현장에서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고통에 대한 동체대비로 나타나는 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혜 있는 자는 굶어죽는 자가 배고픔에 겨워 빵 하나 훔쳤을 때 오히려 따스하게 품을지언정 탐진치에 빠진 인간으로 질타하지 않는다. 자비란 그런 것이고, 붓다의 가르침은 육근(六根)에 의해 만들어진 탐진치 속에 자신과 대상에 집착하며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에 대한 자비다. 부처님 말씀이 자신의 탐욕과 우매함으로 자신을 포함해 주변의 바른 삶을 방해하는 이들에 대한 경책이자 천둥과 같은 질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깨어있는 지혜로운 자로서 당시 사람들을 잘못 이끌던 육사외도 하나하나에 대하여 치열하게 시시비비를 따진 붓다의 일생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파사현정 그 자체로 이뤄져 있다.

이런 붓다의 질타와 삶의 자세에 대하여 당시 제자들마저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등으로 따지고 비난했던 이들도 많았다. 겉으로 드러난 세상 기준에 의거해서 그들은 자비란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롭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세상의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롭고, 예쁜 것 그 자체도 고통임을 설파했다.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로운 외형으로 자비행 여부를 따지고 판단하는 이들이란 상(相)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로운 것이 ‘완벽’하다는 헛된 환상의 목적지를 향해 별의별 일이 많은 삶의 현장인 이곳을 버리고 피안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소위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롭고, 예쁜 것으로 이뤄진 완전한 곳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이대로 온전함을 아는 이들은 대자유와 평화로움을 얻지만, 완전함을 쫓는 이들에겐 영원히 대자유나 안식은 없다.

불행히도 굴종의 신앙을 지닌 이들은 차안과 피안, 생과 사, 중생과 부처가 분리되어 깨달음을 향해 평생 개인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서 평생 허덕이게 되지만 그것이 깨달음 장사치들이 만들어 놓은 교묘한 장치임은 간파하지 못한다. 깨달음의 허상 속에 종교장사치들의 혀끝이 던지는 듣기 좋고, 부드럽고, 맑고, 향기롭고, 예쁜 미사여구만을 찾아 일생을 허비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낮과 밤이 함께 하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이 함께 하는 상대적 풍광이 있기에 더욱 풍요롭고 구족하다.

깨어있음이라는 지혜는 오욕칠정이 함께 하는 일상의 삶이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 아름답다는 통찰이기도 하다. 삶의 온전함을 모르고 완전함을 쫓는 이들이 자신과 주변에 불필요한 고통을 강화시키기에 이러한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파사현정의 자세로 대하며, 삶 속에서 생명체가 겪는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내는데 능동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자비행이다. 어리석음에 대한 깨어있는 자의 질타와 무자비가 자비다. 불가의 지혜란 깨어있음 그 자체이며 그대로 자비 자체이다. 체험을 통한 지혜에서는 깨달아 자신은 행복한데 왜 자비행인가라는 사변적 질문은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

지혜와 자비가 초기불교나 대승불교 모두 일관되게 공통되어 내려오는 가르침의 정수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개인의 지혜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자비로 표현된다. 단지 초기불교에서는 자비(慈悲)행에서 비(悲)가 강조되었다면, 대승불교에서는 자(慈)가 강조되어 이웃의 고통 문제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에 방점이 있다. 한 개인의 깨어있는 지혜는 주변과 사회에 대하여 중생수순의 자비를 통해 실천되기에 자비행은 논리적 추론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깨어있는 지혜의 세계이다. 문수와 보현이란 동전의 양면일 뿐, 머리로 헤아려 그것을 나누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한다. 수행과 회향은 둘이 아니며, 파사현정이 곧 자비다.

교리가 아닌 신앙으로서의 종교는 지식이 아닌 지혜의 장(場)이며, 논쟁이나 토론의 대상이 아닌 체험 자체이자 삶 속의 실천이다. 어느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단순한 학자가 아닌 수행 승려들이 삶의 변화는커녕 탐진치로 얼룩진 종단 현실에 안주하면서 깨달음을 논하고, 심지어 지혜와 분리된 자비행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훼불이다. 최소한 출가승을 포함해 신앙을 지닌 불자라면 붓다의 말씀을 지식이나 헤아림이 아닌, 삶의 변화를 수반한 실천적 가르침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혜와 자비가 수레의 양 바퀴로 통합되지 못한 채, 각각 분열된 상품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불교란 이름으로 깨달음 장사치들이 교계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며 식물학적으로, 분자생물학적으로, 미학적으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 또한 의미 있고 지적 만족을 준다. 그러나 그 한 송이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함을 맛보며 즐거운 이도 있다. 그것은 지적 만족을 넘어 자신 삶의 한 부분이 되는 체험이다. 어떤 방식으로 꽃을 바라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불가의 한 송이 꽃이 무엇을 위함인지는 굳이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붓다가 준 이 즐거운 맛을 버리고 굳이 머리 아프게 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