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스님 기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을 보며
“어떤 경우라도 인간정신이 문명에 억압 받지 않아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안성 도피안사 송암스님이 기고문을 <미디어붓다>에 보내왔습니다. 스님의 시의 적절한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불교는 문명의 눈[眼目]이다
인간의 뇌를 밖으로 드러낸 것이 컴퓨터다. 그렇다고 해도 컴퓨터는 기계다. 인간과 기계가 벌이는 세기의 대결(2016년 3월 9일)이 한국에서 펼쳐졌다. 수퍼컴퓨터로도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할 수 없다는 바둑을 놓고 벌이는 한판 대결이었다.
모든 인간의 뇌를 모아 놓은 집단지성(集團知性)이 알파고(구글이 만든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다. 즉 아마추어 바둑 고수들이 둔 기보(棋譜) 16만 건을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알파고에 입력했고, 그 16만 건의 기보에 담긴 착점(着點)은 300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알파고와의 대결에 인간 대표는 이세돌(33) 9단이 나섰다.
당초 양측은 서로 승리를 자신했다. 승부 전망에 대해 ‘50대 50’이라고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대표는 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알파고는 자기학습을 거듭해 작년 10월(유럽에서 활동하는 바둑기사 판후이 2단과 겨뤄 5대 0 전승을 거둠)과 또 다르게 발전했다”며 승리를 점쳤다. 이에 대해 이세돌 9단도 “5대 0이냐, 한 판 정도 내주느냐의 승부”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대해 바둑과 인공지능 모두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對局)은 결국 이세돌의 본능적인 ‘직관(直觀)’과, 확률로 승부하는 컴퓨터 ‘집단지성(集團知性)’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바둑은 5000여 년 전 중국에서부터 시작됐으나 15세기 이후 일본에서 체계화했다. 알파고의 고(go)는 영어에서 바둑이란 뜻으로 일본어 이고(囲碁)에서 나왔다고 한다. 바둑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보드 게임이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한다. 체스와는 비교도 안 된다.
알파고와 이세돌(9단)의 대결, 첫 번째 대결(2016년 3월 9일), 두 번째 대결(3월 10일)에서도 이세돌 9단이 졌다. 인간 이세돌의 본능적인 직관(直觀)과 컴퓨터의 집단지성이 펼친 대결에서 이세돌이 진 것이다. 사람들의 바둑경험을 모은 집단지성이 알파고의 교재가 됐고, 거기에 인간 혼자 나선 것이다. 어쩌면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서 이기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중계하는 SBS화면 캡쳐
일찍이 주산(珠算)과 암산(暗算:속셈)으로 대결했을 때는 암산이 이겼고, 암산과 계산기(計算機)와 대결했을 때도 역시 암산이 이겼지만, 암산과 컴퓨터가 대결할 때는 컴퓨터가 이긴다. 컴퓨터는 인간의 뇌이고, 인공지능은 집단 뇌와 같다.
컴퓨터가 조합을 통해 확률을 높이는 일은 끝없이 이어갈 수 있고, 심지어는 인간감성의 표현까지도 가능하다고 내다본다. 인간 감성의 최고단계를 시(詩)라고 했을 때 많은 시를 입력 조합하면 인공지능으로 시도 너끈히 쓸 수 있을 거란다.
이 말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컴퓨터가 못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는 거고, 거기엔 인간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문명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두려움이다. 실지로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에서 겪은 경험도 있던 터다. 그렇다고 오늘의 문명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는 않고, 그 누구도 그런 예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하 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누가 이기든 그 승자는 인류라고 예언자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여기서 그만 돌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은 강대국이 만든 이기기 위한 이기적인 게임[프로그램]이다. 상생(相生)과 협력(協力)의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숨을 쉬는 인간이 돌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상생과 협력의 공생공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다.
인간이 진정한 승자가 되는 건 어떤 경우라도 인간정신이 문명에 억압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바로, 상생과 협력을 위한 정신의 창의성을 전제한 무한자유, 해탈을 말한다. 해탈은 없는 걸 찾는 게 아니라 본래부터 갖춘 것을 회복하는 절대영역이다. ‘이긴다!’는 생각을 버리는 청정계(淸淨界)다.
어떤 역사학자는, ‘인간이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능력만 있으면 전쟁도 막고, 멸망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고, 또 어떤 미래학자는 2050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직업 중에서 종교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위 두 학자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불교에는 자비와 지혜(智慧:空思想)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설령,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휩쓴다고 해도 상생과 협력을 위한 창의성(創意性:本來 解脫)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한 창의성의 원천이 공(空)이고, 바꾸어 해탈의 모습[相]인 창의성은 공의 영역에 속한 일이어서다. 공은 ‘연기(緣起)·중도(中道)’이고, ‘연기(緣起)·중도(中道)’의 불이세계(不二世界)다. 불이는 어떤 경계(境界)를 두지 않는다. 제한이 없는 게 불이이고, 공이라는 말이다. 해서, 현대 인류문명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게 불교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아닐까, 여기서 다시 엄숙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맞는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문명의 눈[眼]이 되고 자신의 길이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배워서 구현해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으면 불교는 영원히 사성제 팔정도에 머물고 만다. 사성제 팔정도에는 남에게 도움 되는 육바라밀다의 모습이 없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