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폭동 팔담의 맨 위에 있는 제일 큰 소를 화룡담이라 하고 그 동쪽에 있는 법기봉의 북쪽 절벽위에 있는 바위를 사자바위라 부른다. 사자바위와 화룡담에는 금강산을 지켜낸 용맹한 사자의 화룡에 대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예로부터 악과 불의를 막고 선과 정의를 지키는 신령스런 짐승으로 일러 오는 사자와 화룡이 금강산에 보금자리를 정하고 살아왔다. 사자와 화룡은 금강산에 의지하여 용맹을 키웠고 때로는 서로 힘과 슬기를 겨루어 보기도 하였다. 사자와 화룡이 어울려 용맹을 겨룰 때면 그 기상이 천지를 뒤집는 듯하였고 뇌성이 벼락 치는 듯 한 소리에 산천도 흔들리었다.

이렇게 서로 용맹과 지혜를 자랑하며 성장한 사자와 화룡은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 저들을 신령한 존재로 키워준 세상 으뜸가는 명산 금강산의 경치와 보물을 굳건히 지켜가기로 약속하였다. 이때로부터 천태만상을 이룬 봉우리들을 사자가 말아 지키고 화룡은 폭포와 명소들, 계곡들을 살피며 의좋게 살았다.

사자는 이른 새벽 일찍 외금강의 만물상을 높이 올라 신계동, 옥류동을 살피고 금강문을 빠져나와 영랑봉, 중향봉, 혈망봉, 오선봉, 향로봉, 일출봉, 월출봉 등 내금강의 뭇 봉우리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비로봉마루에 올라 동해의 상쾌한 바람이 불어드는 삼일포와 총석정을 살피고 다시 법기봉을 지나 만폭동에 이르러 절승경개를 굽어 살피며 잠간 다리쉼을 한 다음 팔담 윗목에 뛰어올라 밝은 빛 뿌리며 망망한 바다위에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였다. 이것은 비가 내리고 눈이 오며 세찬 바람이 불 때에도 쉬지 않고 사시장철 일 년 열두 달 어느 하루도 빠지지 않는 사자의 빈틈없는 일과이기도 하였다.

화룡도 사자와의 약속을 지켜 명소들과 폭포들을 비롯하여 물이 있는 곳은 번지지 않고 일일이 돌아보며 살피었다.

화룡은 턱밑에 달린 여의주구슬로 조화를 부려 혹 작은 물고기로 변하고 혹은 물속에 비친 구름이 되어 먼저 팔담을 돌아보고 이어 문주담을 비롯한 명소들을 두루 살핀 다음 해금강까지 나가 총석정 금관굴을 거쳐 다시 팔담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금강산을 지켜 수백 수천 년, 세월은 흘러 이 땅에 고려 국이 서고 국토의 통합이 실현되어 사람들이 화목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이었다. 그 날도 봉우리들과 명소들을 두루 돌아보던 사자와 화룡은 마을들에 어느 때처럼 상서롭지 못한 기운이 떠돌고 있음을 감촉하였다. 사자는 급히 화룡을 찾아갔다.

“화룡아, 저 마을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 금강산에 호종단이란 놈이 기여 들었대. 너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아느냐?”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해금강에 나갔을 때 어부들의 말을 들으니, 그 놈이 나라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있다누만. 강릉 한송정에 찾아간 그 놈이 그곳에 있는 화강석 비석을 보고 경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뽑아 바다에 처넣었고 삼일포 비석도 흔적도 없이 깨버렸다네. 그리고 이젠 금강산에 기여든 모양이야.”

노기에 움틀거리며 이야기하는 화룡의 말에 사자도 짐작되는바가 있었다.

“음. 그런즉 그 놈이 저 경주 봉덕사의 종이 울리지 못하게 쇠를 녹여 종아구리에 넣자고 하다가 발각되어 쫓겨난 그 놈이 분명해.”

 이렇게 서로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분노를 터뜨리던 사자와 화룡은 그 놈을 결단코 요정내리라 벼르며 명승과 명소들을 빈틈없이 살피었다.

호종단은 국토의 통합을 실현하고 겨레의 힘과 지혜를 모아 융성부흥의 터전을 마련해가는 고려의 기를 꺽어 보려고 기여든 적국의 밀정 놈이었다. 이놈은 풍수에 밝은 체 가장하고 통치관료들에게 아부 아첨하여 한때 고려 정부에서 중서성의 기거사인 벼슬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을 감출 수 없듯이 날이 감에 따라 그 놈은 그 악착한 정체를 점차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악착같은 이놈은 명산들을 돌아다니며 지맥을 끊어 놓기도 하고 민족사의 유구성을 전해주는 유적과 유물을 파괴하기도 하고 없는 소리를 꾸며 내어 민심을 소란 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흉심을 품고 못된 짓을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호종단이 세상 으뜸가는 승지이고 동해의 요충지인 금강산에 기어 들었던 것이다.

 며칠째 눈에 쌍심지를 켜고 길목을 지키고 있던 사자가 마침내 호종단놈을 발견하고 만폭동 온 골짜기가 떠나갈 듯 사납게 외치었다. 골짜기마다에 메아리치며 울려가는 사자의 외침소리는 금강산 1만2천봉우리가 일시에 멸적의 함성을 울리는 듯하였다.

이때 안무재령을 넘어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위를 살피며 만폭동 골 안으로 기어들던 밀정 놈은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뭇 봉우리들의 분노에 찬 외침소리에 기겁하여 타고 오던 말잔 등에서 굴러 떨어졌고 말은 말대로 놀라 어디론가 뛰어 달아났다. 이미 금강산에 조선의 넋과 기상을 지켜가는 신령스런 사자와 용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처럼 속내까지 꿰뚫어보고 뭇 산악을 모두 불러 일으켜 꼼짝달싹 못하게 하며 무적의 힘으로 달려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기가 꺽이고 겁에 질린 밀정 놈은 얼이 나간 채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좁고 험상한 바위 층을 따라 종적을 감추며 도주하는 밀정을 주시하던 사자는 성이 독같이 올라 향로봉을 단숨에 뛰어넘어 그 앞길을 막을 생각으로 깍아지른 앞산의 바위턱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나 너무나 조급하게 뛰어오른 탓에 앞발과 뒷발 하나는 벼랑턱에 붙었으나 다른 한쪽 뒷발이 그만 바위에 미처 닿지 못하고 허공중에 뜨게 되었다. 이때 구름을 타고 법기봉에 날아 올라있던 화룡은 바위돌 하나를 뽑아 위험에 처해 있던 사자의 발밑에 던지었다.

화룡이 던진 커다란 바위돌이 허공에 떠 있는 사자의 뒷발을 고여 주었으나 분노와 저주에 불타고 있던 사자는 그만 그 자리에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화룡이 뽑아 던지었던 바위 돌 자리 흔적도 법기봉 동남쪽 절벽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움푹 패인 모양새와 크기가 사자의 뒤발을 고이고 있는 그 바위돌과 신통히 같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 사람들은 사자는 비록 돌로 굳어 졌으나 금강산을 지켜가려는 그 마음 불같아 남을 해치려는 악한의 무리들은 감히 이 명산에 얼씬하지 못하며 그리하여 금강산은 예나 지금이나 선과 정의를 상징하는 세계의 명산으로 빛난다고 말한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 법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