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가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12월 12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열렸다. 한국불교사연구소의 제12차 집중세미나 겸 세계불교학연구소 제2차 학술대회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중무상과 구화지장, 상산 혜각, 고려 제관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다뤘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정중무상에 대한 조명이었다.
이 행사를 주재한 고영섭 교수(동국대 교수, 한국불교사연구소 및 세계종교학연구소 소장)는 발제 외에 정중무상을 특집으로 다뤘던 공중파 방송의 영상을 이례적으로 상영하는 등 정중무상 선사의 조명에 세미나의 초점을 맞췄다.

당초 이날 세미나의 머릿 주제인 '정중무상이 중국불교에 미친 영향'을 이계표 박사가 발제할 예정이었지만, 발제자의 건강문제로 논문이 발표되지 못했다.
정중무상 선사(사진)는 신라 성덕왕의 세째 아들로, 불교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의 사천 지방으로 유학했다.
정중무상 선사는 인성염불에 의거해 삼구설법을 강조하는 염불선 수행법을 주창했다. 정중무상 선사를 처음 학술적으로 발견해 조명한 학자는 중국의 호적으로, 그는 규봉종밀을 연구하면서 규봉종밀의 무상계열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호적은 당시 중국의 선종에 7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5가가 무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호적은 규봉종밀이 '자신은 무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규봉종밀 역시 무상의 영향권 내에 있었음을 밝혔다.
정중무상은 중극의 북종과 남종의 양대 선종 전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중선맥을 정립시켰다. 정중무상은 스스로 "나는 혜능의 영향도 아니고, 그 누구의 영향도 아닌, 달마를 직접 잇는다"며 독자적인 선종을 창시했음을 강조했다. 정중무상은 또 소의경전을 <능가경>으로 정해 달마의 직계임을 분명히 했다.
정중무상이 독자적인 종파를 일으킨 것은 안록산의 난으로 사천지방으로 피신했던 당 현종과의 만남 이후 본격화했다. 당 현종은 사천에서 위력을 떨치던 정중무상을 만나 감복한 후 사천지역 불교의 맹주로 정중무상을 공식 인정했다. 이후 정중무상은 사천 성도에 대자사, 보리사 등을 세워 정중선 종파를 선양했고, 독자적인 종파의 성립을 굳건히 했다.
정중무상의 제자 중에는 중국 선불교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마조도일이 있다. 백림선사에 머물며 '평상심시도' 등의 화두를 제시하는 등 독창적 선풍을 드날린 마조는 사천 출신으로 나한사에서 불문에 들었고 정중무상이 주석했던 덕순사에서 수학하며 정중무상의 직접 영향을 받았음이 최근 돈황에서 발견된 문건 등을 통해 재입증됐다.
정중무상의 법은 마조의 제자 서당지장의 문하에서 공부한 신라출신 승려 도의에 의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이를 두고 백장회해는 "마조의 법이 동국(신라)로 건너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7개의 선문이 마조 계열이라는 점은, 마조가 신라왕자 출신의 정중무상의 제자라는 점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크다.
정중무상의 선맥은 역시 마조도일을 거쳐 조동종으로 이어져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동종은 오늘날에도 일본의 최대 종파로 묵조선 수행을 전수하고 있는 선종의 일파이다.
뿐만이 아니다. 정중무상의 선법은 티베트에도 전해졌다. 티베트의 사신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 사천지역을 거쳐가면서 정중무상으로부터 불교를 배웠고, 이는 인도불교가 중국불교화 된 이후 중국불교가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전파된 첫 사례로 기록된다.
정중무상 선사의 선맥은 이렇게 한중일을 망라한 동아시아 전체와 티베트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중국 선불교의 시조인 마조도일, 일본의 최대 종파인 조동종, 한국의 구산선문에 이르기까지 정중무상의 영향은 광범위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서도 정중무상이 주창선 정중선의 핵심을 정중무상의 삼구, 즉 무억(무(無憶), 무념(無念), 막망(莫忘) 가운데, '무념'으로 보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중무상의 무념이 마조도일의 평상심으로 계승되었다는 입장이 견지됐다.
그러나 정중무상의 삼구 중 핵심은 무념이 아닌 막망(사띠)이라는 것은 이미 호적에 의해 구명된 규봉종밀 연구에서 발표된 바 있다. 정중무상의 제자인 무주와 신회는 삼구 중에 무념을 중시했으나, 이런 해석은 이미 규봉종밀에 의해 잘못되었음이 호적의 연구에서 밝혀진 것이다. 규봉종밀은 정중무상선의 특수성은 삼구 중 '막망' 개념에서 나타나며, 따라서 무상의 제자 무주가 막망을 버리고 무념으로 가는 것은 스승을 배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주가 무상을 이었다고 하면서 무념 극단주의로 흐른다"는 것이 규봉종밀의 입장이었다.
정중무상의 막망에서 망은 잃어버릴 망으로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도 무주는 막망의 망을 '망녕될 망'으로 엇갈리게 사용해 스승을 배신하고 있다고 종밀의 지적했다.
정중무상의 삼구 중 무념을 핵심으로 인식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날 세미나는 우리나라 출신의 고승들이 중국불교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을 보다 확실히 드러낸 것은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향후 승랑, 혜균, 원측, 무루, 오진, 혜초, 의통 등의 중국에서 활동했던 고승들에 대한 연구가 예고되어 있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한 세미나 모습.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구화지장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고영섭 교수(동국대)가, '상산 혜각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여성구 국민대 국사학과 외래교수가, '고려 제관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최동순 불교학술원 교수가 각각 발표했다.
고영섭 교수는 발제에서 중국 구화산 지장보살의 화신인 김지장 스님을 숭배하는 지장왕신앙이 동아시아에 크게 유행하고 있고 또한 경기도 일대 사찰에서 지장신앙 대신 지장왕신앙을 봉안하는 전각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구화지장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인식의 틀을 확보하려는 논지를 펼쳤다.
여성구 교수는 발제에서 봉암사 지증대사비에 이름만 언급될 뿐 그 활동과 사상에 대해 거의 알려진바 없었던 혜각이 지난 2009년 중국에서 탑비가 분석된 상태로 발견되면서 그 활동과 사상의 대강을 알 수 있게 된 것과 관련한 내용을 발표했다. 여 교수는 혜각이 스승 신회로부터 돈오, 지견, 무념 사상을 배우고, 일각 사상을 새로이 주창하며 자신의 법등을 밝혔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동순 교수는 발제에서 고려승 제관을 중심으로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머무른 보운의통과 원공지종의 활동상을 통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고려의 천태승과 천태학이 중국 천태종의 부흥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역동적으로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