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론(Pyrrhon)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그리스 철학이 화려한 꽃을 피우던 시기의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로마제국의 건설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서, 헬레니즘의 철학적 기반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반면 피론은 알렉산더의 인도원정에 동행하여 인도의 자이니즘과 불교를 직접 접하고 귀국하여 회의주의의 창시자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로마제국의 건설적 철학을 제공하였다면, 피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이스 철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다. 때문에 로마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며 제국을 건설 유지해 가는 동안에 피론의 회의주의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세기 피론의 회의주의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에 의해 새롭게 조명, 소개되었다. 세계, 인식, 진리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주의 태도는 확실한 진리임을 주장하는 모든 철학에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으로써 신(G0d)을 가지고 있었던 기간 동안 피로니즘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철학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중세를 지나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서 회의주의가 다시 도전자로 등장한다.

특히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적 태도는 인식과 경험의 확실성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진리의 획득 가능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흄의 과격한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18~19세기 전환기의 유럽에서 요구되는 철학적 과제였고,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철학적 대답을 제시함으로써 근대철학의 문을 연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였다.

회의주의는 지식의 확실성을 주장하는 모든 철학에 대한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걸림돌에 걸리지 않고 넘어설 때에야 완결된 체계를 갖춘 철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불교에서 그리스 회의주의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훨씬 더 넓고 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는 것이 용수(나가르주나)의 중관철학이다. 용수는 엠피리쿠스와 거의 동시대 인물인데, 그의 주장은 당시 가장 번쇄하고 정교하게 발전되어 있던 아비다르마 불교철학에 대해, 어떤 실재론적 철학체계도 결코 성립될 수 없다는 대단히 파괴적인 충격을 던져 주었다.

'중관논리학과 역설'을 강의할 김성철 교수(왼쪽)과  '회의주의와 불교'를 강의할 황설중 교수(오른쪽)

용수 이후의 모든 대승 불교사상은 그의 공(空) 개념을 어떻게든 새롭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유식의 삼성설이나 불교인식논리학파의 정교한 인식론이나 논리적 체계도 모두 공성의 해석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발전하였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현대불교학자들의 모순과 역설에 관한 논쟁도 역시 이 공성의 해석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회의주의와 중관사상은 서구철학사와 불교사상사의 발전과정에서 지속적이면서도 결코 완벽하게 극복되지 않는 도전이자 걸림돌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이 양대 철학, 그러니까 필론에 의해 주창되고 엠피리쿠스에 의해 조명된 그리스 회의주의와 나가르주나의 공성(空性)의 사상적 유사성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비슷하다.

이 두 사상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이후 전개되는 모든 철학적 사유의 뿌리를 살피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사상의 유사성에 주목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철학자들은 그리스 회의주의와 중관사상에 대한 비교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비록 국내 불교학계에는 아직 그런 흐름이 소개되지 않아 생소한 일이지만, 이미 수십 편의 회의주의와 중관을 주제로 연구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국내 첫 소개가 이번 미붓아카데미가 주최한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두 번째 강좌인 황설중 교수(대전대)의 ‘회의주의와 불교’를 주제로 한 7월 17일(금) 강좌에서 이루어진다. 황설중 교수는 이 강좌를 위해 중관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서구의 관련 논문을 2달째 집중적으로 공부 중이다. 일부 학자를 제외하면 훈고학이나 서지학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불교학계에 신선한 충격과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피로니즘을 중심으로 강연에 나설 황설중 교수에 이어 7월 24일(금)에는 세 번째 강좌로 국내 최고의 중관학자이자 왕성한 연구 및 저술 활동으로 주목받는 불교학자로 자타로 공인받는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가 ‘중관논리와 역설’을 주제로 미붓아카데미 동참 대중들과 만난다. 서양철학과 불교철학에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두 대가의 사상, 즉 필론의 회의주의와 용수의 공 사상의 정수를 불교계에 처음 얼굴을 내미는 신진학자 황설중 교수와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는 김성철 교수에 의해 잇따라 설파되는 ‘불교와 철학의 향연’이 오는 7월 17, 24일 차례로 열리는 것이다.  

미붓아카데미 강남의 김현진 코디네이터는 “황설중, 김성철 교수가 진행하는 ‘회의주의와 불교’, ‘중관논리와 역설’ 두 강좌는 어느 한 강좌만 떼어서 들을 수 없는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라며 “모처럼, 아니 한국불교학계에서 처음 소개되는 그리스 회의주의와 용수의 중관의 상호관계에 대한 철학적 조명에 대중의 주목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코디네이터는 이어 “두 번째 강좌부터는 보다 쾌적한 공부환경을 위해 동참인원을 80명으로 제한할 방침인 만큼 예약을 서둘러 달라” 덧붙였다.

예약 : 010-6742-2151 (정하중), 010-8770-5258 (김현진), 010-5575-7010 (이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