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탁견으로 질책과 대안제시를 해오고 있는 불교계의 대표적 승려칼럼니스트 법응 스님이 94년 총무원장 3선을 시도하다가 개혁세력에 의해 멸빈된 의현 전 총무원장을 조계종 호계원이 전격 복권조치 한 것과 관련해 94년 개혁의 중심에 선 후 20년 넘게 종단의 중심세력으로 살아온 이른바 94년 개혁중심세력들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불조와 역사앞에 참회할 것으로 촉구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조계종개혁회의’는 사기극이었나?

대한불교조계종은 세상과 함께하는 종교집단이며, 종교 외적으로는 시민사회 또는 국가에 대한 역할과 책임도 막중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조계종이 결정하고 시행하는 모든 행위는 사회로부터 용인되고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사회를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종단이 종단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결정을 뒤집는다던가, 혹은 대승적 견지에서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용서’나 ‘화해’를 말할 때는 그 배경이나 기저에 반드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집단적으로 선언되었던 - ‘그 사실’을 뛰어 넘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일 뿐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역사의 길을 열거나 집단적으로 상당한 발전이 담보된 경우 그리고 대중의 이해와 합의가 전제된 경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1994년 4월 10~11일의 모든 일간지는 ‘조계종 개혁회의 출범’ 기사를 내보냈다. 그해 초부터 시작하여 4월에 정점을 이룬 이른바 ‘조계종 개혁’은 그 후로도 사실상 1년여 간 진행되었다.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까지 관심과 파장을 미친 일대 사건이다.

애석하게도 94년도 당시 의현 스님의 3임 저지 등과 관련해서 촉발된 소위 종단개혁은 그 후 개혁을 이끈 세력들의 철학과 의지의 한계 등으로 인해 지속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지난 20년 간 조계종은 종단 운영의 틀로써 조직과 재정과 인사 운영에 혁신을 이루지 못했고 종도들의 의식개혁에는 아예 손을 대지 못했다. 분명코 종헌 9조 3항과 종법에 저촉된다고 판단되는 인사들의 종권장악 등, 종헌과 종법 질서가 파괴된 지 오래다. 

조계종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과 종헌질서를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나는 즉시 오염되고 생명력을 잃는다. 종헌과 종법의 정치적인 해석을 금하고, 문중 또는 인연관계 등에 의한 편파적인 인사와 그에 따른 행정적 결정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노력을 해 왔어야 했으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94년도 당시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의’의 간판을 내건 주체들은 현재 종단권력의 중심에 있으며 대부분 중진 이상의 위치에 올라서 있다. 그러나 현재의 종단 현실을 보면 당시의 이른바 개혁세력이었고 오늘날의 종단권력이 된 이들에게 과연 역사적 행보에 대한 책임이나 조계종을 어떻게 혁신해서 ‘불일증휘 법륜상전’케 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 같은 게 있기는 있었는가, 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지경이다.

94년도 개혁의 성과와 의미에 대한 회의, 이익에 따라 끊임없이 이합집산 하는 세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해묵은 정서 속에서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개혁의 실패’를 탄식했고 종단 혁신에 대해 기고 등 여러 방법을 통해서 제안해 왔다. 이미 오래 전에, 언젠가는 의현 스님의 사면과 이후 관련 조치들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은바 아니다. 그러나 호계원의 ‘공권정지 3년 판결’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

한마디로 의현 스님의 공권정지 3년 판결- 사실상 복권이 된 것- 은 현실의 난맥상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나, 이러한 토양을 제공해 온 것은 94년도 이후 개혁을 외면한 역대 종권장악 집단이며, 특히 94년도 개혁세력의 한계성이 이토록 어이없는 ‘사건’을 자초했다고 본다.

거듭 문제는 의현 스님에 대한 판결 자체보다 이 판결이 종단 개혁이 답보되고 대중적 논의와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94년도 사태와 관련한 사면은 그 사회적 파장과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적 책임감을 갖고 범종단적으로 추진할 사항이지 결코 호계원의 기능과 판결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의현 스님을 비롯하여 당시 멸빈․징계된 스님들에 대해서는 ‘대화합’ 차원에서 일대 특별사면이라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고 어울리며, 필자도 대 환영할 것이다.
 
이번 일을 기화로 그동안 종단 혁신을 외면하고 기득세력이 된, 사실상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94년도의 개혁중심세력에 대해, 그리고 그 ‘개혁’에 대해 엄중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회생과 발전의 돌파구로 삼아왔던 승려대회가 가지는 의미마저도 재평가 되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향후 어느 스님이든 원장직의 3임을 넘어 그 이상의 시도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일까? 오늘의 종단 현실에 입각하여, 94년도 개혁회의의 중심에서 관계한 승려들은 불조와 역사 앞에 참회해야 한다. 대국민 대사회적 사기가 별것인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서, 세상과 약속을 하고서는 불과 한세대도 안가서 외면하면 그것이 사기 아니고 무엇인가?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