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국가예산 투입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각 종교끼리 서로 문제를 삼아서는 안 된다. 다만 투입된 예산이 잘 사용되는지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조사가 필요하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지정 및 등록 문화재의 보수 및 유지관리를 각 종교계에 맡기는 현행 제도는 재검토돼야 한다. 가칭 문화재관리공단 같은 기관을 만들어 여기에서 직접 지정 및 등록문화재의 보존 및 관리를 맡겨야 한다고 본다. 종교인들에게 예산, 즉 돈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정황이 너무나 잘 드러나고 있다. 썩어도 종교지도자들보다 공무원이 썩는 게 낫다.”
황평우 문화재 전문위원(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이 지정 및 등록 종교문화재의 국가 직접 관리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황 위원은 11월 29일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주최로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 교육장에서 ‘정부의 종교문화재 예산지원 어디까지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린 2014 종자연 연구용역 결과 발표 및 학술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황 위원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능을 통합하고, 현재 각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각 지역에 소재한 종교계 지정 및 등록문화재 보존·관리의 역할을 맡기면 될 것이라며, “이제는 신부나 목사, 스님이 돈을 직접 만지지 않아도 되게, 즉 종교지도자들이 돈에서 멀어져 스스로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단체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부연했다.
황평우 문화재전문위원이 지난 11월 29일 열린 종자연 주최 학술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황 위원은 또 종교계를 관장하는 정부 창구인 문화체육관광부 내 종무실의 폐지를 전제로, 국회(입법부) 산하로 가칭 종무위원회를 두어 이를 통해 종교계 지원 예산을 심의하고, 결의하는 기능을 맡기는 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해 문화재 전문가들을 위촉해 구성한 문화재위원회와 같은 역할의 종무위원회 설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황 위원은 특히 이날 발표한 ‘정교분리정책과 종교예산책정 문제에 대한 연구’라는 장문의 발제를 통해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의 정부의 종교계 지원 예산에 대한 ‘세입세출예산안사업별 설명서 정리’를 부록으로 공개했다. 또한 ‘종교별 문화행사 관련 사업계획서 정리’라는 제목의 정부의 각 종교계 지원 세부내용이 담긴 미공개 자료를 입수 공개해 학술토론회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황 위원은 또한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에 대해서는 국가예산 지원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전제하고, 개신교 일각에서의 템플스테이 예산에 대한 시시비비 행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황 위원은 “개선교가 템플스테이 국가예산 지원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도 왜 비슷한 성격의 천주교의 수도원(성당) 체험 예산 지원에는 시비를 걸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예산이 지원될 만한 것에 시비를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또 불교계를 향해서도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불교계가 반성해야 한다”며 내실 있는 템플스테이 운영을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황평우 위원의 발제에 7명의 토론자가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유광석 연구원(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 리스도연구소), 박문수 교수(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김영국 상임연구위원(연경사회문화정책연구네트워크), 이창익 HK교수(한림대 생사학연구소), 박광수 교수(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참여연대)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김영국 상임연구위원은 토론에서 “국가권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제공하는 종교계 지원 국가예산이 종교계에서 종교권력의 유지에 활용되고 있다”며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삼을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악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보다 철저한 감사와 지원내역의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익 교수도 논평에서 국가예산에 대한 종교의 의존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종교가 없다면 국가가 그 존립 기반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없이는 종교가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우리의 종교들이 직면한 현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꼬집고, “’눈면 돈‘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종교들의 각축도 있고,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을 만한 ’자본적 적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종교의 자기 변형 내지는 자기 포기, 나아가 자기 폐기 현상마저 눈에 띤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이제 종교가 문화가 되고, 종교가 영성이 될 때, 역설적으로 종교가 돈이 되고 돈을 버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는 종교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