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미황사·범어사 등 80여개 사찰의 불화·단청 작업을 한 베테랑 불교미술인이 있다. 늘 ‘불교미술 대중화’를 발원하며 기도·정진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는 이수예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 소장(42)이 그 주인공이다.

훤칠한 키에 빼어난 미모로 첫인상부터 시선을 휘어잡는 그이는 최근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미황사 괘불 1:1 모사도를 완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장곡사 괘불탱 작업에 매진 중인 그이를 ‘땅끝 미황사 큰부처님 서울에 나투시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인사동 아라아트갤러리에서 만났다. 

미황사 괘불 모사는 물론, 미황사 대웅전에 그려진 천불도과 각종 그림들을 모두 모사하는 작업도 주관한 이수예 소장의 노고로 아라아트갤러리는 금강스님의 말씀마따나 “마치 미황사 대웅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괘불의 정밀 모사도를 둘러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진품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렸고, 역시 이를 둘러본 강순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강우방, 김창균 교수 등 전문가들도 노고를 칭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일년에 딱 한 번, 그것도 고작 두 시간 정도밖에 친견하지 못하는 괘불 부처님을 일주일 내내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보통의 불자들이나 일반 관람객들이 가졌을 감동과 기쁨은 어느 정도였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한 번, 두 번, 심지어 일주일 내내 갤러리를 찾은 이들도 적지 않고, 날이 갈수록 갤러리를 찾는 발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례적으로 전시를 일주일 연장해 11월 11일까지 괘불 친견이 가능해졌다. 이런 귀한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 진화 스님 등이 “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을 친견하도록 해야 한다”며 흔쾌히 갤러리 대여료를 보탰다.

‘사찰은 불국토를 형상화시킨 공간’이라는 신념 아래 불국토를 건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한다는 이 소장은 ‘당연한 것이지만’ 불화찬탄자이다. 법당 안팎의 그림들을 한 점 한 점 독립시켜 보면 그것이 곧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모사한 미황사 괘불 부처님과 대웅전 천장 및 대들보 등에 그려진 천불도와 단청 등은 사찰에서만 볼 수 있던 불화들을 법당 밖으로 옮겨 놓은 셈이죠. 이번의 전시로 일반인들이 불교미술을 거부감 없이, 그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소장은 금강 스님과 함께 ‘땅끝 미황사 큰부처님 서울에 나투시다’전을 기획한 장본인이다. 불화가인 그는 이번 전시에서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높이 약 1170㎝, 폭 486㎝에 달하는 초대형 걸개그림인 ‘해남 미황사 괘불(보물 1342호)’ 모사를 완성해 대중에 공개한 것이다. 약 3백년 만에 쌍둥이 괘불로 태어난 미황사 괘불 모사도와 함께 이미 완성해 놓았던 미황사의 천불도 25점, 포벽나한도 13점, 단청문양도 114점 등 총 153여 점을 모사한 작품들이 모두 이수예 소장과 그가 이끄는 연구원들의 손끝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20여 년 동안의 불화 작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2007년에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를 개소한 이 소장은 문화재 수리나 보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성보(사찰 문화재)의 수리나 보존은 문화재수리 기술자나 보존과학을 전공자들의 몫이라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오히려 예술적으로 잘 복원할 수 있는 사람들, 즉 불화 전공자들이 이 일에 나서야 한다는 그이의 소신은 이번 미황사 괘불 모사작업을 통해 대중의 공인을 받은 셈이다.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를 개원한 후 첫 번째 작업이 미황사 단청과 벽화 복원이었고 이번의 미황사 괘불 모사작업까지 이어졌으니, 미황사와 이 소장의 인연은 금생의 것만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 소장을 비롯한 불교미술 전공 연구원 9명(사진 오른 쪽)은 지난 3년여에 걸쳐 안료분석과 적외선 촬영, 디지털 현미경 촬영 등 과학적 조사방법을 토대로 원본의 재료, 형태, 도상 뿐 아니라 오염 박락 손상부분 등을 훌륭히 복원해냈다. 해풍에 깎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대웅전 안팎의 단청들까지 원형을 완벽하게 찾아내 조선 후기 단청과 벽화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에 관한한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금강 스님의 호된 지적을 받기도 했고, 덕분에 더 완벽한 복원을 해낼 수 있었다. 

“모사 작업이 예술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명나라 도자기를 복원한 청나라 도자기가 현대에 와서 문화재로 인정받지 않습니까? 모사도 하나의 작품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문화재 보호와 불화의 대중화 측면에서도 모사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에요. 1대 1 모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모사본을 공개하고 진품은 보관한다면 문화재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고등학교 시절, 입시미술을 준비하며 책자를 뒤적이다 불화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불교미술로 진로를 결정한 이수예 소장. 불모를 자신의 천직이라 여기며 불화 단청 등 수많은 작업에 참여해왔고, 5번의 개인전과 17번의 단체전을 가질 만큼 작품 창작에도 최선을 다해 왔던 그는 앞으로 이번 미황사의 경우처럼 법당 안의 작품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에 진력할 계획이다. 이 소장은 오는 12월 24일 범어사 단청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해 대중들 앞에 나타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