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구니회와 열린비구니모임의 시비를 우려하는 원로 비구니 스님들의 성명이 ‘명의 도용’ 의혹으로 번졌다. 대표적인 인물로 명성, 혜해 스님 등이 거론됐다.
열린비구니모임(공동대표 혜운·임대·정현·행법 스님)은 11월 3일 오후 2시 템플스테이종합정보센터 3층 문수실에서 ‘전국비구니회 임시총회 소집 촉구 및 비구니 원로 스님들의 심려의 글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로 비구니스님 허락 없이 사칭”
열린비구니모임은 지난 10월 30일 비구니 원로위원 12명의 명의로 발표된 ‘비구니 승가의 정법안정을 염려하며’에 이름을 올린 스님 중 7명이 서명을 거절했으나 전국비구니회 측에서 명의를 사칭했다고 주장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스님이 직접 원로 스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얻었다는 대목과 정반대되는 지점이다.
공동대표 임대 스님은 “원로 스님을 일일이 찾아뵙고 확인했더니 몇몇 스님들은 대단히 편찮은 상태로 어떤 사안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계셨다”며 “또 전화를 받은 시자 스님들이 이름 올리는 것을 거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연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등재한 것은 원로 스님들의 이름을 사칭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인 명연 스님은 “혜해 노스님의 경우 자리보전하고 계셔 비구니회장 스님과 직접 통화하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시자인 법경 스님과 연락이 되었는데 성명서가 아니라 책에 이름 올린다고 해서 승낙했다”고 말했다.
공동대표 정현 스님은 “전 비구니회 회장인 명성 스님도 이름을 올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좋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원로위원, 회칙엔 있지만 구성되지 않아”
신설된 전국비구니회 회칙 제14조(원로)에 따르면 비구니회는 회원 중 최고의 수행복덕을 겸비한 스님을 원로로 추대하며, 원로회는 9인~15인 이내의 의원으로 구성한다. 또 원로회는 비구니회에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인정될 때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이행할 것을 회장에게 지시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린 12명 전원이 ‘원로위원’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명 스님은 “2014년 9월 비구니회에서 나온 운영위원회 명단에 원로위원이라고 되어있기는 하지만 명단에는 원로위원이 아닌 스님이 5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며 “원로위원이라고 집행부에서 호칭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로위원장도 없고 회의도 한 번 하지 않은 위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졌다.
임대 스님도 “여기에 등재된 스님들이 비구니회 원로 스님인 것은 사실이나 원로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없다”며 “2014년도부터 8명의 스님이 의원으로 등재돼있지만 정식적인 구성은 아니”라고 말했다.
임대 스님은 “원로 스님까지는 나서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행부가 원로스님까지 말씀하는 상황을 만들어 심히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명연, 임대, 정현, 혜욱 스님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스님 물러나야”
당초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장 계환 스님만의 사퇴를 촉구해온 열린비구니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스님의 퇴진도 촉구했다.
열린비구니모임은 “원로 스님의 이름을 도용해서 원로 스님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은 바로 전국 비구니들의 명예까지 훼손시킨 것”이라며 “이번 일로 더 이상 명우 스님과 계환 스님을 전국비구니회장과 운영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함을 한 번 더 확인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대 스님은 “처음시작은 운영위원장의 독단적인 행보가 지나치게 문제시됐고, 총회를 통해 내부규정을 바로잡아 모순적인 관행을 바로잡아보자는 의도였다. 회장 스님은 우리의 의견을 수렴해서 대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일방에 묵살시켰다. 즉 열린비구니모임에 소속된 스님은 회장이 인정하지 않은 비구니, 대한불교조계종 스님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차기 회장 운달 스님 거론은 본질 흐리는 것”
파행적 운영을 정성화 하자는 열린비구니모임의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다시금 차기 비구니회장 선거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번에는 운달 스님이라는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됐다.
이에 대해 임대 스님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임대 스님은 “현재 열린비구니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을 왜곡되게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며 “운달 스님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비구니회장 선출 당시 내가 (명우 스님의 상대 후보였던) 운달 스님 측 선관위원으로 있었다. 이는 나를 타깃으로 여론을 호도해서 본질을 흐려놓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진명 스님은 “우리는 절대 누군가를 회장을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못 박았다.
“선학원 스님은 종회의원 피선거권 제재”
이날 기자회견에는 현재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도 나서 눈길을 끌었다. 대구지회 회원인 명연 스님은 비구니 종회의원 후보 선출에 선학원 소속 비구니가 배제됐다고 토로했다.
명연 스님은 “종회의원 후보를 뽑기 전에 선학원 스님들은 자격이 없기 때문에 참석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나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모르고 간 선학원 스님은 제재를 받았다”고 말했다.
명연 스님은 “비구니회칙에 선학원을 언급한 바 없는데 비구니 종회의원 후보를 뽑을 때 선학원은 오지 말라 하고 돈 받을 때는 선학원을 가리지 않고 받는다”며 “자기 편리할 때는 선학원도 넣어주고 불리할 때는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지회 회원은 혜욱 스님은 발언을 통해 임시총회 소집을 촉구했다. 혜욱 스님은 “나의 가라앉은 성품을 흔들었던 것이 종회의원 후보를 뽑는 것이었고, 옳지 않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혜욱 스님은 “오는 6일 있을 운영위원회 소집 공문을 받았는데 지금 논의되는 중대 사안이 하나도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며 “운영위원장이나 회장 스님이 고뇌하는 부분을 총회를 열어 물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임시총회를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 년이든 십 년이든 끝까지 관철”
열린비구니모임은 조계종 법규위원회에 비구니 종회의원 자격에 대한 심판청구를 한 상태이다. 진명 스님은 “종법상으로는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회에서 후보 추천한다고 나와 있어 심판청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내부에서 일 년이든 십 년이든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대 스님은 “아무리 약으로 처방하려고 하려고 해도 약이 듣지도 않고 먹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결국은 수술해서 도려내는 수밖에 없다”며 “치유가 끝날 때까지 관철해나갈 것”이라고 첨언했다.
한편 열린비구니모임은 보도자료와 공식석상에서 ‘열린비구니회’라는 명칭을 여러 차례 언급해 독자적인 비구니회로 전환하느냐는 의문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임대 스님은 “‘비구니회’가 입에 붙었다. 바로잡아 달라”고 부인했다.
임대 스님은 “우리는 현 집행부가 행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내부규정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며 “후배들을 위해서, 미래 불교상을 위해서 수술할 때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약으로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공동대표 임대, 정현 스님과 현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인 명연 스님(대구 서봉사), 혜욱 스님(춘천 봉덕사), 진명 스님이 참석했다. 열린비구니모임에는 현재까지 400여 명의 비구니 스님이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