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대중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자비심으로 신과 인간의 이익과 복락, 행복을 위하여. 둘이 함께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법. 뜻도 말도 참된 법을 가르치라. 바른 법을 듣고 그들 또한 해탈을 이룰 것이니니라. 나도 우루벨라로 가겠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린 전도명령이다. 이 전도명령에는 불꽃처럼 일어나는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에 대한 붓다의 연민이 깔려 있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중생을 구하겠다는 구세원력(救世願力)이 압축된 것이 부처님의 전도명령이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의 길을 떠날 것을 명령하시면서, 자신도 우루벨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우루벨라는 당시 마가다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섭 3형제가 머물며 수행을 하던 곳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정법을 세상에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빔비사라 왕의 비호와 후원을 받는 가섭 3형제를 정법으로 조복받는 것이 급선무였음을 간파하고는 목숨 건 전도를 몸소 행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사르나트에서 전도명령을 내린 후 열반에 이를 때까지 평생을 전법으로 일관했다. 부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승한 가르침으로 외도들의 조복을 받고 제자를 삼았다. 부처님의 상수제자로 알려진 사리불이나 목건련 등은 모두가 외도들이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바라문 수밧다를 교화했다. 부처님의 전법은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외도, 그중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도 정법이 아닌 사법을 추종하는 외도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사 외도’는 물론이고 외도의 주장을 총망라한 비불교적 견해를 4견과 62견 등으로 설명했다. 세계는 상주한다, 세계는 무상하다, 세계는 상주하면서 무상하다, 세계는 상주하지도 무상하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4구분별로 분류한 것이 4견이다. 또한 사인사과(邪因邪果), 무인유과(無因有果), 유인무과(有因無果), 무인무과(無因無果)를 4견이라고도 한다. 62견은 붓다 생존 당시 상주론, 단멸론, 회의론, 무인론 등 다양한 주장을 펼친 외도들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바에 따르면 ‘절대적 존재’나 ‘영원한 생명’ '궁극적 실재' 따위를 핵심교리로 하는 오늘의 기독교와 같은 종교는 정법으로 바로잡아야 할 대상에 해당된다.

세상에 많은 종교와 가르침들이 있지만,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정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삿된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어느 종교든 권선징악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종교의 근본 교설을 살피고 들어가면 잘못된 견해에 의한 잘못된 교리로 중생들을 삿된 길로 이끄는 곳이 많다. 아무리 그럴듯한 언설로 잘 포장된 교리라고 하더라도,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연기, 무아, 중도, 공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한, 실재를 인정하는 한 외도이며, 진리를 가르치는 집단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한국불교는 전법에 소극적이고 자신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인에게 법을 전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전해야할 법(진리)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특히 일반 불자들의 경우) 소홀해졌으니, 전법이 시들해질 것은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포교에 성공한 스님이나 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기존의 불자들이 이동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불교의 정법을 알려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포교는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불교 신행의 모습에서 법에 대한 공부나 연구는 거의 사라지고, 바른 견해를 갖추려는 노력도 미미해졌다. 불교공부는 그저 불교학자들이나 일부 지식인 불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치부되고 온통 천도재와 소원성취 기도만이 득세하고 있다.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하기 보다는 부처님께서 외도라고 말씀하신 쪽으로 기우는 추세가 뚜렷하다.

'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장면.

급기야 사실상 전법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그것도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이들이 그럴듯한 언설로 발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21세기 아쇼카 선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초안을 성급하게 언론에 발표하는 만용도 만용이거니와, 그 내용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뜯어보면 볼수록 문제투성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눈에 띤다.

그런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이라는 명칭의 ‘21세기 아쇼카 선언(이하 아쇼카 선언)’의 초안을 읽으며, 부처님께서 그토록 강하게 부촉한 전도명령을 실천할 동력을 잃은 나약한 집단의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

'아쇼카 선언'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저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요, 남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을 연기적 세계관이라며, ‘부정’을 ‘반목과 대립’으로 등치시킨다. 잘못된 것에 대한 부정,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부정까지 ‘반목과 대립’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쇼카 선언은 이 논리를 종교에 적용시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웃종교는 ‘이웃’에 있는 나 자신의 종교이며, 내 종교를 비추는 거울”,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 “각자 다른 인연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논리의 비약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 않고 인정하는 것과 다른 종교를 나 자신의 종교로, 실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이란다. 과연 그런가. 이 말은 부처님 전에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가.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또 무슨 해괴한 주장인가. 전법은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해 깨달음과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는 당연히 다른 종교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매번 법회 때마다 염송하는 사홍서원의 ‘중생무변서원도’는 이제 그만 폐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 사람이라도 더 부처님의 정법에 귀의할 수 있도록, 둘이 같이 가지 말고 혼자서 전도하라는 간절한 부처님의 명령이, 마음이 이 ‘아쇼카 선언’ 문을 기초하고 발표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가.

이쯤에서 다른 종교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기독교에서는 선교(宣敎, mission)를 생명처럼 여긴다. 선교의 열의가 지나쳐 가는 곳마다 갈등을 빚고 심지어 전쟁까지 일으킨다. ‘땅끝까지 전도하라’는 강력한 미션으로 그들은 똘똘 뭉쳐 있다. 선교를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나친 선교행위는 분명 문제이지만, 그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부러울 정도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 선교사로 그려지고 있으며(마르코의 복음서 1:14~15), 예수의 선교활동은 그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활동에 본보기가 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세상 끝날까지 복음선교 사명을 수행하도록 위임하였다(마태오의 복음서 28:18~20, 요한의 복음서 20:19~23, 사도 1:8).

기독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원칙도 분명하다. 먼저 창조질서 보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4:21). 나아가,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선교의 궁극적 과제임을 역설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계에서 극히 일부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한국 가톨릭이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의 주류 개신교가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였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날로 교세가 약화되어 한국사회에서 점차 소수자로 내몰리고 있는 불교가 왜 이런 나약한 선언을 하고 있는가. 불교가 종교간 불화의 원인제공자라도 되는가. 아쇼카 대왕의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말라는 명령은 지금과는 상황과 처지가 다른 데서 나온 것이다. 또 아쇼카 대왕은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말라고 했지,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표현이 다를 뿐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쇼카 대왕의 종교관에 대한 확대해석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불교계가 더욱 간절히 주목해야 할 것은 아쇼카 명령이 아니라 세상이 온갖 신의 굴레에 빠져 있을 때 고고히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한 부처님의 전도명령이다. 작금의 한국 종교의 상황은 아쇼카 시대보다는 부처님 시대와 더 비슷하지 않은가. 엊그제 발표한 '아쇼카 선언'이 자신감을 상실한 약자의 포교 포기선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얼마나 많은 불자가 이 선언에 공감했는지 ‘자성과쇄신결사본부 화쟁위원회’는 밝힐 수 있는가. 충분하게 대중공의를 거치지 않은 선언문의 초안을 국민 앞에 발표하는 무모함을 무슨 논리로 설명할 것인가.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의 자세가 결코 ‘포교 포기 선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웃종교의 존재와 신앙행위를 존중해야 하겠지만 불교와 이웃종교가 ‘그게 그거’이라는 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표현은, 비슷한 것이라도, 엄격히 삼가야 한다.

불교에 있는 진리가 기독교에도 있다면, 그저 가는 길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라면 반드시 불교를 신봉해야할, 또 불교를 포교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