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입적에 드신 후, ‘맑고 향기롭게’는 큰 홍역을 치렀다. 후임 이사장이었던 덕현 스님도 불미스럽게 맑고 향기롭게를 떠났고, 맑고 향기롭게와 함께 오랜 세월을 지냈던 이사들도 대부분 이 여파로 떠나갔다. 이 와중에서 맑고 향기롭게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맑고 향기롭기는커녕 탁하고 구린내가 진동한 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현장 스님이 덕현 스님의 빈자리를 맡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뒤 맑고 향기롭게는 차츰 세간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져갔다. 이따금씩 아직 모든 것이 말끔히 수습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굳이 세세한 내용까지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맑고 향기롭게의 홈페이지를 둘러봤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대강 그 단체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은 예상대로 대부분 ‘맑고 향기롭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글을 찾아 읽던 중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이사장 현장 스님의 글이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호소의 글을 올렸을까.

스님은 이사장에 선출된 뒤의 일정을 차례로 거론하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털어놓고 있었다.

저는 출가 이후 지금까지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업무의 진행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황당해하시겠지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회원들 못지않게 총회를 빨리 개최하여 새로운 이사진을 출범시켜 정상적인 업무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로가 불신의 골이 깊어져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사장을 ‘사임해라’, ‘재신임 받아라’하는 일방적인 주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서울 대의원 모임이 원천무효다.’, ‘법적으로 아직 등기가 안 되었으니 이사장도 아니다.’는 주장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이사장이 이렇게도 괴로울 줄 알았다면….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회원중심의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짐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어찌 처신해야 여러분이 만족하겠습니까. 정관을 잘 읽어보시고 회원으로서 주장할 수 없는 내용은 자제해 주십시오.
…
회원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처럼 대안 없는 시비와 억측이 더해질 때마다 ‘맑고 향기롭게’는 더 병들어가고 그런 부끄러운 모습이 외부에 드러날수록 법정어른스님의 숭고한 뜻이 퇴색하고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루 속히 대의원 총회가 열리고 새로운 이사진이 구성되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대의원들과 회원 여러분들이 지혜를 모아주십시오. (사)맑고 향기롭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좋은 대안이 마련되면 저는 말없는 대다수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든 희생을 감수할 것입니다.

2011년 5월 18일자로 게재된 현장 스님의 이 호소문을 읽으며, 현장 스님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글의 요지는 내가 이사장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정관에 의거해서 나갈 것이니 내쫓듯이 내보내려 들지 말라. 결국 현장 스님의 뜻은 다수의 회원들이 지혜를 모아 자신을 명예롭게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주고, 또 맑고 향기롭게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 호소문에 대한 이런저런 댓글을 읽으면서, 맑고 향기롭게의 현 사태는 각자가 다 참회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회복하지 않는 한, 특히 재가는 승가를 존경하고 승가는 재가를 존중하는 마음이 깃들지 않는 한, 어쩌면 법정 스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해도 해결이 난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작금의 맑고 향기롭게에서 참회하는 마음과 예의를 지키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대신에 상대에 대한 공격과 적개심,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은 탐욕의 썩은 냄새만이 펄펄 날아다니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시비비는 잘 보이지 않고 오직 상대를 파멸시키려는 다툼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적어도 ‘맑고 향기롭게’라는 숭고한 이름아래에서 펼쳐져서는 안 되는 일들이 제어 없이 횡행하고 있었다. 무소유는커녕 소유를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군상들의 모습이 더 많았다.

이즈음에서 맑고 향기롭게를 구성하고 있는 각 주체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먼저, 스님과 재가불자 사이에 존경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을 회복했으면 한다. 이 같은 대전제 아래, 이사장 현장 스님은 정관에 의거해 합법적인 절차로 이사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으면 좋겠다. 또 현장 스님을 반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가능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현장 스님이 이사장직을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 지역본부의 대표자들과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시급히 한 자리에 모여서 대중공의를 통해 벼랑 끝에 놓인 맑고 향기롭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정했으면 좋겠다.

혹자는 이 글을 맑고 향기롭게 내부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부사정을 잘 안다고 해서 먹칠을 하고 있는 맑고 향기롭게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게 없다는 점이다.

한 때는 불교의 자랑이었던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계승하고 확산시켜야 마땅할 이 소중한 단체에서 이유를 막론하고 ‘탁하고 구린’ 냄새가 풀풀 나서야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