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 담판한(擔板漢)이란 말이 있다. 담판한의 문자적 뜻은 판자(板)를 어깨에 둘러멘(擔) 남자(漢)다. 그 의미는 한쪽만 보기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를 일컫는다. 좌우 중 어느 한쪽은 판대기로 가려졌으니 그 쪽에서 들리는 소리나 광경은 알 수가 없다. 자연히 가려지지 않은 쪽의 귀와 눈만 열리게 되니, 이런 이는 두루 세상이치를 살피는 안목과 지혜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담판한이란 말은 역대의 선사들도 자주 언급하곤 했다.

담판한은 중국의 저명한 선사인 목주 스님이 한 스님을 불러 이르기를, “대덕아.”라고 했는데, 그 스님이 머리를 돌렸고, 이에 목주 스님이 “(네가) 담판한이로구나.”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목주 선사는 이 대목에서 게송을 읊었는데, 이렇다.

“장령송운 뇌 뒤에 하나의 송곳을 주니/ 머리머리가 구덩이로 떨어지고/ 바로 불러 돌아보지 않더라도/ 이는 빈 판대기를 멘 것이니라.”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도 지난해(2007년) 발표한 동안거 해제법어에서 “결제는 앉아서 몸을 담판한으로 만드는 것이요, 해제는 서서 마음을 담판한으로 만드는 일”이라며 “몸과 마음이 함께 담판한이 되어 도반과 선지식으로부터 정말 담판한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담판한을 벗어나는 도리가 참으로 그 속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되새겨 볼수록 깊은 의미의 가르침이 담긴 말씀이다. 선문(禪門)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살펴보면 담판한이 꽤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컨대 돈을 벌겠다는 욕망에 휘둘려 부동산 투기를 일삼다가 파산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이들을 들 수 있겠다. 투기 거품을 믿고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제 돈도 없이 은행 빚을 얻어 덜컥 집이나 건물을 사들여 낭패를 본 이들은 ‘담판한’이라는 조롱을 들어 마땅하다.

언젠가부터 우리 불교계에 ‘열린’이라는 수식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열린 불교, 열린 선원, 열린 아카데미, 열린 절, 열린 세상 등등. 이는 아마도 불교가 그동안 어느 부분에서든 닫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테다. 세상의 고통을 바로 보지 못했거나, 외면하는 담판한으로 한국불교가 비춰져 왔다는 반성의 의미가 이 단어에는 담겨 있다.

부처님의 10대 명호 중에 세간해(世間解)가 있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상을 향해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겠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어쩌면 불교가 환경문제라든지 복지분야에 전에 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흐름에 기인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터넷 시대다. 웹 2.0세대가 주역으로 급부상한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시대는 모든 것이 중중무진의 네트워크로 구성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부처님께서 언급한 인다라망의 세상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담판한은 살아남을 수 없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노하우(Know How)나 노왓(Know What)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대신 혼자서는 안 되는 노웨어(Know Where)와 노후(Know Who)의 세상이 급부상하고 있다. 요즘 최고로 유행하는 소통(疏通)이라는 단어도 말, 정신, 정보의 네트워크 부재를 꼬집는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조계사가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대대적으로 벌인다는 것에 대해 ‘조계사가 그래선 안 된다’고 간곡히 지적한 바 있다. 한국불교총본산이라는 상징성, 불교 1번지라는 상징성이 있는 절에서 연일 천도재가 이어지고 구병시식 의식이 벌어지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본질이 아닌 것이 성행하면 끝내 본질이 망가지는 것을 익히 보아왔던 터라 더욱 그렇다.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불교의 1번지 조계사가 영혼에 집착하고, 돈에 집착하고, 귀신병 치유에 집착해서야 되겠는가.

많은 독자들이 나의 이런 칼럼에 동의를 보내왔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칼럼을 클릭하는 네티즌 불자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인터넷 미디어에서는 드문 현상이다. 그만큼 걱정과 우려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조계사에 가보면 곳곳에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알리는 현수막과 깃발이 꽂혀 있다. 비판이든 지적이든 간에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누가 뭐라고 하든 천도재와 구병시식으로 조계사의 빚을 갚고 사찰 재정을 튼실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뭐, 어쩌겠는가. 그리 꼭 해야겠다면, 또 그런 일에 신도들도 흔쾌히 동참하고 있다면 그럴밖에.

나는 요즘 조계사 경내를 들르거나, 지나칠 때마다 자주 담판한이란 용어를 떠올린다. 그 담판한이 제발 법전 종정스님의 말씀처럼 ‘담판한을 벗어나는 도리로서의 담판한’이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망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