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교계의 흐름을 보면 도무지 기준과 원칙이 사라진 듯하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빈발한다. 사라진 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므로 사라졌다는 표현도 그리 적확해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중대한 사안에는 마땅히 중앙의 종단 집행부가 나서야 하지만 그저 지역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듯하다.

다 알다시피, 최근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을 상대로 지역 불교계가 거센 항의를 하고 있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대구 팔공산 공원조성이 불교를 위한 공원이라는 지역 기독교계의 반발로 물거품이 되자 대구 불교계가 들고 일어선 것이 그 첫째이고, KTX 울산역사에 ‘(통도사)’를 병기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기독교계의 요구로 무산되자 통도사 교구 스님들과 신도들이 역사를 항의 방문한 것이 그 둘째다.

대구불교계와 통도사를 중심으로 한 경남 불교계가 보여주는 반발의 강도는 생각보다 거센 것으로 보인다. 그럴만한 명분도 있고, 이제 불교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영남에서도 불교가 개신교에 밀리는 조짐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안을 놓고 지역 불교계가 들고 일어나는 것은 명분과 당위가 충분하다.

그러나 이 일의 심각성을 헤아려야 할 총무원은 조용하다. 정부나 정당의 실력자들이 간단없이 조계종 총무원 청사를 드나들고 있지만, 이 문제를 총무원장이 정색을 하고 거론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 삼지 않은 게 사실이면 직무유기다.

혹시 이런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르겠다. “모든 사안에 대해 총무원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런 이야기는 4대강 사업 문제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다. 물론 이 말에 일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안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마지막 보루인 영남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신교 쪽의 조직적이고도 음험한 조짐을 총무원장은 마땅히 읽었어야 했다. 총무원장 자리는 법통과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만 종무행정의 수반이라는 것을 헛갈리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는 무게나 잡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팔공산 테마파크 문제와 울산역사의 이야기는 지역 문제이니 총무원 차원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백제 능사에서 협시보살상을 잘못 조성해 불상을 잘라 바꿔 붙인 전대미문의 불상 절단 사건에, 그리고 4대강 사업 낙단보 구간에서 발견된 고려초기 마애보살좌상에 폭파용 구멍이 뚫린 훼불 사건<<STRONG>사진>에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불상이 조계종의 산하 사찰이나 기관에서 관리하던 불상이 아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한 꼭 총무원만이 지적을 받을 대상은 아니다. 이런저런 일에도 성명을 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삼던 불교계의 여러 단체들이 정부에 의해 자행된 불상훼손에 침묵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개신교계와 맞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는 영남 불교계도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쁜 줄 알지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런 일에 침묵했던 불교계가 앞으로 어떤 일에 훼불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지난 10월 12일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가 만해스님 불교유신론 집필 100년을 기념해 주최한 ‘불교유신을 다시 생각하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21세기 신불교유신론’에 대해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 전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종회해산, 문화재관람료 폐지 촉구 등의 말 그대로 종단의 근간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충격적 내용이 즐비하지만,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놀라운 일이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 흥분해야 할 때 흥분하지 않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한, 빙하기의 공룡을 보는 듯한 21세기 초입의 한국불교 현주소가 참으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