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지난 3월 조계종 총무원은 사회부장 명의의 공문으로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의 세리머니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조계종총무원은 대한축구협회에 보낸 공문을 통해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자신이 믿는 종교(개신교)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자제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공문에서 조계종은 “선수들의 종교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지만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선수들이 자기의 종교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잘못”이라며 “사전 교육을 통해 골 세리머니에 종교적 행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불교계의 이러한 요구에 개신교계는 당연히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는 철저히 개인의 신앙에 따른 것이므로 세리머니를 막는 것은 신앙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개신교 측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계가 이제 스포츠 선수까지 관리하려 한다”면서 “이건 너무 과한 행위”라고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축구협회는 불교계의 요구에 대해 검토를 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실상 선수들의 종교 세리머니를 제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개신교계 매체는 물론이고, 오마이뉴스 등 일부 매체들도 불교계의 이런 요청에 대해 불교계가 오버했다는 비판 기사를 실었다. 불교계에서 종교 세리머니를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를 국가대표로서의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으로 봐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 오마이뉴스가 불교계를 나무란 근거였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국가대표라는 이유로 자신의 종교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오마이뉴스는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또 '불교야말로 도량 넓은 종교가 아니냐'며 '속 좁게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사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이 있듯이 어느 한 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듣노라면 그럴 듯 하고 다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FIFA(국제축구연맹)의 제프 블레터 회장이 월드컵 개막식 전날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기도 세리머니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보도가 축구전문 사이트 ‘크로노풋’에 게재(6월 10일자)됐다. 블레터 회장의 지적은 브라질 등 국교가 가톨릭인 나라의 대표선수들 중 골을 넣은 후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 보도는 기도 세리머니에 대한 논란이 꼭 다종교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종교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전 세계 상황에서 가장 순수해야할 스포츠까지 어떤 동기로든 종교로 얼룩지지 않아야 한다는 블레터 회장의 뜻이었을 것이다. 이는 성숙한 종교적 표현을 요구하는 불교계의 주장이 결코 속 좁거나, 오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알려준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월드컵에서 특정종교를 드러내는 행위는 골을 넣은 직후에 벌이는 세리머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차범근 씨가 국가대표 감독을 했을 당시에도 감독의 지나친 종교적 행위가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차 감독을 향해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로 일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경기가 승리로 끝난 후 개신교를 믿는 선수들끼리 무릎을 꿇고 둘러 앉아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월드컵 축구는 선수들과 코치진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펼치는 단체경기라는 점에서, 또 결코 특정종교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종교를 믿는 선수끼리 모여 기도를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을 확정 지은 23일 새벽 대 나이지리아 전에서 개신교 신자 국가대표선수들이 보인 모습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모습이었다. 개신교를 신앙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는 매우 볼썽사납게 비쳐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주영 선수의 기도 세리머니는 물론, 경기가 끝난 후 개신교 신자 선수들이 운동장에 무릎을 꿇고 둘러앉아 기도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평소 하나님을 위해 축구를 한다’는 대표적인 개신교 신자 이영표 선수가 역시 개신교 신자인 김동진 선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걸어 나오며 하늘을 우러러 ‘주여, 주여’를 연신 외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클로즈업 되어 방영됐을 때의 느낌은 난감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이야말로 감동보다는 뭔가 이질적이고,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왜 개신교 신자 국가대표들의 종교를 드러내는 행위에 대해 많은 비판이 나오는가에 대해 이제는 그들도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자신들을 응원하는 국민들 중에 훨씬 더 많은 국민이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축구는 개인 경기가 아닌 단체경기라는 점을, 또 개인자격이 아닌 국가대표 자격이라는 것을 이제는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처럼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지나치게 드러내는 방법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성장한 작금의 상황에서 고집해야 할 온당한 행위는 아닐 듯싶다. 그런 일이 늘어날수록 개신교를 믿지 않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온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할 월드컵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당혹스럽다.
골을 넣고 누구나 공감할만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세리머니를 펼치면, 골을 넣은 고마움을 함께 경기장에서 뛴 동료와, 응원해준 관중, 국민들과 함께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골을 넣은 선수들이 제각각 종교를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감사기도를 하고, 경기에서 이긴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며 이 선수는 ‘주여’를, 저 선수는 ‘부처님이여’를, 또 다른 선수는 ‘알라여’를 외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좀 더 성숙하고, 겸손하며,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보일 때, 진정한 국가대표요, 국가를 빛낸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선교를 목적으로 한 축구단의 대표가 아님을 명심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