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 내가 산책을 하다가 진달래가 우거진 꽃밭을 보았어. 지금 와서 한번 보렴.”

“스님, 오늘은 일이 많아서 가기 어려운데 내일이면 좋겠습니다.”

“내일이면 늦으리! 오늘이어야 해”

내일이면 꽃이 진다고 재촉하던 스승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쟁쟁한데, 그 스승이 이생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스승님은 온화하고 부드러우셨습니다. 때로는 변덕이 심해서 고변덕이라고 불리시기도 했지요. 변덕은 무아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변덕입니다. 스승님은 자신의 견해가 절대적임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더 좋은 견해를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를 하셨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어제 좋아 결정했지만 오늘 더 나은 방안이 나오면 자존심보다는 바름(正)을 위해 마음을 바꾸시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스승을 추억하는 송암 스님의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그의 스승 광덕 스님. 1956년 대각회를 창립해 새로운 불자운동인 불광운동을 펼치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불광회 등을 창립해 불교를 통한 구국운동의 원력을 세운 인물이다. 또한 잠실에 불광사를 건립해 도심포교의 새 장을 열었으며 1974년 월간 불광을 창간하는 등 문서포교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그가 입적한 후 10년간 그의 제자 송암 스님은 전국 방방곡곡에 스승의 이야기가 서린 인연처를 찾아다녔다.

올해 11월 송암 스님은 광덕 스님과 인연을 맺은 138명의 이야기를 묶어 『광덕스님시봉일기』전 11권을 완간하고 16일 봉헌법회를 봉행했다.

송암 스님은 “스승님께서는 생전에 ‘나는 다시 태어날거야’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며 “스승님의 유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 100명보다는 스님 한분이 더욱 필요함을 알기에 환생하실 날을 기다리며 스승님의 서원에 조력하고자 시봉일기를 펴냈다”고 발간사를 전했다.

“광덕 스님을 모시던 기간 저는 스승님의 감시자였습니다. 스승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눈에 들지 않는 점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스승님은 바름 그 자체였습니다. 부처님에게서 찾은 바름이었습니다.”

송암 스님의 목소리는 스승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찼다. 스승에 대한 믿음인 동시에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일에 대한 뒤늦은 참회이기도 했다.

책 1권에 등장하는 “병든 스님의 나약함을 돕지 못한 나의 이 못남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 아프다고 아기처럼 나를 바라보며 호소하던 스님의 눈빛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머리를 짓찧어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는 대목을 보면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한탄이 얼마나 깊은 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스승님은 또한 정중동(靜中動)이면서 동중정(動中靜)인 삶을 사셨습니다. 저도 스승이라는 산을 넘어보고자 노력했지만 아직은 힘들고 거대한 산입니다. 제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오실 스승님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일입니다. 스승님께서 환생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스승님은 환생하시어 이 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굳이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아실 테지만 조금이나마 수고를 덜어드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송암 스님은 연인을 흠모하는 사랑처럼, 때로는 부모를 대하는 효심인양, 또 부처를 향하는 공경의 목소리로 광덕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환하게 웃기도 했고 그리움에 목이 메이기도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불교에서 부부는 7000겁, 부모는 8000겁, 형제는 9000겁의 전생의 인연으로 만난다고 한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일만겁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한다.

제자의 땀과 눈물로 엮어진 열 한권의 시봉일기를 마주한다면, 마치 무지개처럼 이곳과 저곳 사이에 펼쳐져 있는 듯한 일만겁의 인연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날 봉헌법회에는 원로의원 정무 스님, 연꽃마을 이사장 각현 스님, 상도선원 미산 스님, 전 서울대 이시우 교수, 동방대 김재영 교수 등 2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광덕 스님의 공덕을 기리며 책의 완간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