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寒山)이라고 하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그와 세트로 따라다니는 습득을 더해 한산습득이라고 하면, 언젠가 들어본 이들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한산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감춘 은자이므로 그의 실명이 무엇인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의 삶의 흔적은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한산시집>에 남긴 서문에서 약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여구윤의 서문을 통해 한산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자.

“무릇 한산이라는 살마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랜 늙은이들이 보아온 이래 모두 가난한 미치광이라고 말했다. 천태산 당흥현 서쪽 칠십리 한암이라고 부르는 곳에 은거했다. 매번 이곳에 있다가 때로 국청사에 오곤 했다. 절에는 습득이 있어 식당을 맡고 있었는데 늘 남은 밥이나 반찬을 대나무 통에 모았다가 한산이 오면 짊어지고 갔다. 한산은 긴 회랑을 천천히 걸으면서 유쾌한 듯 소리 지르기도 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웃곤 했다. 때로는 중들에게 잡혀서 욕을 듣고 쫓겨나면 가만히 서서 손뼉을 치며 껄껄 크게 웃다가 잠시 뒤에 돌아갔다. 또한 모습이 거지와 같고 용모가 마르고 초췌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이치에 합당하고 깊게 생각해 보면 은근히 도의 마음이 비유되고 있었다.”

어쨌든 한산은 시의 극성기이자 불교의 전성기였던 당나라 중엽에 절강성 천태산 국청사 근처에 살았던 은자다. 그가 남긴 시집으로 『한산시집』이 있는데, 여기에는 한산의 시 312수, 습득이 남긴 시 54수, 풍간이 남긴 시 2수가 실려 있다.

한산시는 부분적으로 도교와 유교의 사상도 나타나지만 불교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백화체에 가까운 평이한 어투로 불교의 교리를 쉽게 설명하거나 불교적 인생관으로 사람들을 깨우치려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한산시는 정통시단에서는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민간과 불교계에서는 꽤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당나라 시대에 이미 한산시를 언급한 선사들이 등장하고, 후대에 이르러 한산과 습득이 고승열전에 수록되면서 그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한산시는 하이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일본의 마쓰오 바쇼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주로 일본의 선승과 선학자들에 의해 연구돼 영어로 번역되어 서구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 한산시 중에서 특히 빼어난 명시 65수를 엄선, 상명대 박석 교수가 해제와 함께 최근 펴냈다. 책의 이름은 『한산시선(寒山詩選)』(지만지고전천즐)이다.

층층 바위 내 사는 곳

새 다니는 길에 인적은 끊어졌네.

정원 가에는 무엇이 있는가?

흰 구름이 그윽한 돌 안고 있네.

여기 머문 지 무릇 몇 해인가?

봄 겨울 바뀌는 것 누차 보았네.

부귀한 사람들에게 말하노라.

헛된 명성이란 실로 아무런 이익 없네.

<한산시, ‘층층 바위 내 사는 곳’ 전문>

박석 교수는 한산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시는 여타 산수시와는 다른 독특한 풍모가 있다. 속기라고는 전혀 없이 탁 트인 야인의 성정도 그렇지만, 다른 시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선적 깨달음이 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석 교수는 이 책에서 한산시를 총 6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1부는 자연을 노래한 작품들이고, 2부는 한산 자신의 깨달음을 노래한 선시의 특징이 잘 드러난 시들을 묶었다. 3부에서는 불교의 철리나 선사상을 평이한 언어로 노래한 시들을 모았고, 4부에서는 인생의 무상을 노래한 작품들을 골라 엮었다. 5부는 세상 사람들을 꾸짖고 깨우치려는 작품들이고, 마지막 6부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있거나 불교적 인생관과는 조금 다른 시각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모았다.

시골집에서 더위를 피하는데

한 말 술이 있으니 누구와 즐길까.

이런저런 산과일 펼쳐놓고

듬성듬성 술잔을 놓았어라.

거친 갈대로 자리를 대신하고

파초의 잎으로 그릇을 삼았네.

취한 다음에 턱을 괴고 앉으니

수미산이 탄환보다 작구나.

<한산시, ‘시골집에서 더위를 피하는데’ 전문>

명상수련가이자 중국문학가이며 또 노래하는 음유시인인 상명대 박석 교수의 해박한 한문시 해석과 학문과 풍류를 겸비한 데서 나오는 탁월한 해제가 한산시를 21세기에 펄펄 살아 날뛰게 하는 고수처럼 빛난다.

가을은 시를 읽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박석 교수는 말한다. “지나친 경쟁과 스트레스, 그리고 불안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행복과는 더욱 멀어진 것은 아닌지, 깊은 산 맑은 계곡에서 마음의 참 평화를 노래하는 한산의 시는 오염에 찌든 대도시에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