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사는 본래 7세기 전반기에 동향으로 세워진 절이었다. 그러나 언제인가 폐사되어 건물은 허물어져 집터만 남았고 그 터전에 홀로 남은 돌부처가 옛 그대로 동쪽을 향해 쓸쓸한 모습으로 외롭게 앉아있었다. 무성한 잡관목과 넝쿨 속에 묻히어 그 자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밤이 되면 이따금 무엇인가 호소하듯 신비한 빛을 내뿜었다.

이렇게 수백 년을 살아온 돌부처가 10세기 초에 이르러 이곳에 와서 초막을 짓고 사는 한 늙은 스님의 꿈속에 찾아와 간절한 부탁을 하고 갔다.

“내일 새 임금님이 저 남쪽 언덕을 넘어올 터이니 나를 움직여 남쪽을 향하도록 하여 임금을 반겨 맞는 모습으로 되게 하라.”

놀라 꿈에서 깨어난 노스님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절터를 찾아 잡관목과 무성한 넝쿨더미를 헤치고 살피니 과연 돌부처가 있었다. 그래서 스님은 꿈에 부탁받은 대로 불상의 방향을 바꾸어 남쪽을 향하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고려국을 세운 태조 왕건이 금강산을 찾아 돌부처가 향하고 있는 남쪽고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선 왕건은 절터를 살피면서 “법기보살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보여야 내 산을 내려 찾아가겠노라.”고 하였다.

왕건의 말이 끝난 지 얼마 있지 않아 정말 법기보살이 황금빛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빛이 누리를 비치어 천지가 환히 밝아졌다.

왕건은 거느리고 온 여러 신하들과 함께 법기보살을 우러르며 엎드려 큰절을 하였다. 이때부터 정양사 남쪽 고개를 절고개(배정 또는 배재령)라고 불렀다.

절터에 이른 고려태조 왕건에게 노스님은 지난밤에 있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태조 왕건은 신기롭게 생각하며 돌부처가 앉아있는 곳을 ‘방광대’(빛을 뿌리는 곳이라는 뜻)라 이름 짓고 거기에 정양사를 남향으로 다시 지었다. 그리고는 법기보살의 금상을 만들어 반야전에 봉안하고 그 위에 6각전을 지어 법기보살을 보호케 하였다. 이리하여 정양사는 그 향을 바꾸게 되었고 고려태조 왕건과 연관된 연기설화를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벽록》권2 정양사기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