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금강 발연동부근에 제석불상을 새긴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를 예로부터 ‘쌀바위’, ‘재미암’이라고 불러온다. 거기에는 우둔하고 인정 없는 노(老)스님과 영리하고 꾀 많은 어린 상좌에 대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옛날 한 노스님이 어린 상좌를 데리고 이 바위 곁에서 살고 있었다. 인적 없는 산중이라 공양미를 구하기도 힘들었고 불공을 드리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고생중의 상고생이었고 걱정중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스님과 어린 상좌는 뜻밖에 자신들이 의지하고 사는 큰 바위 밑의 조그마한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신비하게도 꼭 두사람이 하루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양이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이 바위를 쌀바위라 부르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쌀을 먹고 걱정 없이 살면서 정성들여 불공을 드리었다.
그런데 얼마 후 노스님은 그곳을 떠나 송림골의 부처바위 밑에 가서 참선하게 되었다. 당시 발연소골의 쌀바위에서 송림골의 부처바위로 가자면 반드시 효양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거리가 20리는 잘되었다. 어린 상좌는 매일같이 그 쌀바위에서 쌀을 받아 효양고개를 넘어 부처바위까지 날라다가 노스님의 끼니를 해결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정에 없는 눈이 많이 내려 산길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어린 상좌는 노장의 분부를 어길 수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던 어린 상좌는 한꺼번에 며칠분의 쌀을 받아가지고 가리라 마음먹고 바위 밑 쌀 나오는 구멍을 좀 넓게 뚫어놓았다. 그러자 한 알 씩 나오던 쌀마저 뚝 끊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쌀은 나오지 않았다. 겁에 질린 어린 상좌는 울상이 되어 노스님을 찾아 부처바위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어린 상좌는 공포와 걱정속에 생눈길을 헤치며 찾아갔지만 노장은 무사태평하게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만 부르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혹한의 눈판을 헤치고 온 상좌는 너무나 냉랭하고 몰인정한 노장의 거동에 슬그머니 화가 동하였다. 고약한 노장을 한번 골려주고 화풀이를 하리라 마음먹은 어린 상좌는 다급한 소리로 “스님!”하고 불렀다. 그렇지만 스님은 돌아보지도 않고 “왜?” 하고는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상좌는 더 큰소리로 “스님, 스님”하고 거듭 불렀다. 이번에도 스님은 “왜, 왜” 할 뿐이었다. 상좌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스님, 스님, 스님.....”하고 격한 심정으로 스님을 자꾸 불러댔다. 그때야 노장은 짜증이 났던지 상좌를 쏘아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좌는 주춤거리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치면서 계속 “스님, 스님, 스님…”하고 소리쳤다. 노장은 격분하여 목탁을 집어던지고 상좌를 좇아 나섰다.
이때 어린 상좌는 갑자기 노스님을 향하여 공손히 절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스님께서는 ‘스님’하고 열 번도 채 부르기 전에 이렇게 골을 내는데 아무 대답도 없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몇 해를 두고 날마다 부르니 보살님들이 성이 나서 쌀바위의 쌀도 못 나오게 하였사옵니다.”
그간에 있은 일을 알 리 없는 노장은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다. 쌀바위에서 쌀이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불공을 잘하지 못한 탓이로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고는 다시 부처바위로 발을 옮기려 하였다. 이때 상좌는 “스님” 하고는 “저는 ‘억만 관세음보살’. ‘억만 지장보살’ 이렇게 한꺼번에 부처를 불러 참선공부를 마치었으니 이젠 스님을 하직하렵니다”라고 말한 후 노장과 작별하고 어디론가 떠나갔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때 늙은 중과 헤어진 어린 상좌가 그 후 발연소골의 쌀바위 밑에 다시 와서 발연사를 세우고 훌륭한 도사인 진표율사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