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원 교수의 '성철 읽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글 이상호(선학 전공자, hanego@naver.com)

1. 시작하며

1980년대 이야기다. 10.27법난 사건 이후, 대불련의 반독재 투쟁이 활발했던 시기에 강남 근처 허름한 G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종회의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J스님은 당시 법당에서 저녁예불을 마치고 학생들을 향해 삼배를 하며 말씀하셨다. “앞으로 한국불교의 운명은 학생 여러분들의 어깨 위에 달려 있어요.”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이라도 대불련 학생들 앞에서 삼배를 하고 한국불교의 미래를 맡기는 스님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그때의 상황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그런 말을 듣는다 해도 그때처럼 시대적 사명감으로 비장한 기분에 젖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당시에는 시국의 혼란 상황에서 삼배를 통하여 간절한 진심을 전달한 스님이나 그 절절함에 눈시울을 붉히던 학생들이나 다 함께 이심전심의 공감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말 서강대 서명원 교수(이하 서명원)가 성철 스님(1912~1993, 이하 성철)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 – 퇴옹성철, 이 뭣고?》라는 책을 출간했다. 성철이 활동하던 시기의 국가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실존적 존재로서의 존재방식과 그 결단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는 이 책은 한편으로는 성철과 그분의 수행론에 대한 절대적 이상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제3부에 실린 영어로 된 논문 1편(<퇴옹성철 선사의 유산: 한국돈점논쟁에 반영된 정치적 배경에 대한 고찰>)의 내용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명원은 해석학적 순환의 세 가지 요소인 맥락, 전통, 해석의 패러다임을 연구방법으로 사용하여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전통을 그 시대에 맞게끔 해석하고자, ‘구조적 공진점’을 통해서 국가정치와 성철의 활동 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Structural Resonance between the Way of the State and Soﬞngch’oﬞl’s Way’). 이를 두고 불교계에서는 “성철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과 교류했거나 그와 관련된 자료는 전혀 없는 상황인데… 서 신부에 의해 독재정치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로 탈바꿈된 것” “성철을 보신주의와 세속에 영합했던 정치승으로 간주”(<법보신문> 1229호) 또는 “독재정치와 가까웠던 인물로 표현”(<불교신문> 2980호), “성철이 독재국가체제와 연관이 있었다는 서명원 신부의 주장”(같은 신문, 3015호) 등의 의미로 읽고 해석하여 여러 불교계 언론을 통해 ‘언어폭력’에 가까운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서명원은 그간 신부로서, 불교학자로서, 종교 간 대화에 일조를 해왔으나, 그의 진정성까지 도전받는 지경에 내몰리게 되었다.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국가의 정치․사회적 역학관계로 인하여 수차례나 짓밟혔던 법난에 투쟁해온 역사를 기억하는 불자들에게는 성철이 독재국가의 수반과 궤를 같이한다는 말 자체만 보더라도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몇몇 주요 용어들에 대하여 각자 나름대로 대체하여 해석하고 판단함으로써 논문의 전체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전문 분야의 의미를 그대로 차용한 ‘공진’이라는 용어가 논문 전체의 향방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어라는 사실에 대해 불교계는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자 간의 ‘구조적 공진점’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해석하였다.

필자는 그 책의 출간이나 이를 둘러싼 논란과는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울산대 박태원 교수(철학과)가 󰡔불교평론󰡕 58호(2014년 여름호)를 통하여 서명원의 ‘성철 읽기’를 심도 있게 고찰한 논문을 접하면서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서명원과 박태원, 두 학자와 오래된 친분 관계에 있었으므로 한국불교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고민할 수 있었고, 서명원의 ‘성철 읽기’에 대한 새로운 읽기의 필요성이 느껴졌기에 자의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 공진의 의미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그네의 운동, 라디오 주파수나 TV 채널을 바꾸는 것,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를 통해 건강을 체크하는 것 등 전혀 상관없는 활동들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의 관점에서 모든 물체는 고유 진동수를 가지는데,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주기를 가진 진동수의 외력이 만나면 진폭이 크게 증가한다. 이렇게 진폭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공명(共鳴, resonance)이라 하며, 위 세 가지 활동에는 이 공명현상의 원리가 적용된다. 특히 전기․공학적 진동계에서의 공명은 공진(共振)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해협(Tacoma Narrows)에서 190km/h의 강풍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현수교다리(840m)가 그보다 약한 바람(70km/h)에도 붕괴된 것은 고유 진동수의 주기가 일치하는 공진현상 때문이었다. 이처럼 공진은 주파수의 선택적 특성을 가지는 현상으로써, 그 주기가 서로 일치하면 작은 힘의 작용에도 큰 진폭 및 에너지가 발생될 수 있다.

계량측정이 가능한 전기․공학 분야와 달리 인문사회 분야에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공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명백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점은 있다. 그러나 의도적이거나 주종적이고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굳이 ‘공진’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필자를 비롯한 대불련 학생들과 J스님 간에는 상호간 의도적인 만남과 삼배를 통해 절실함을 드러낸 J스님이 학생들의 공감대를 유도하는 주도적인 작용 및 학생들이 그 영향을 종속적으로 받아들인 직접적인 인과 혹은 사실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교류’ 또는 ‘연관’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각각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작용이 서로 직접적인 교류 혹은 연관관계나 의도 없이 우연히 일치하여 나타나는 현상에는 ‘공진’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3. 공진현상과 연기법

서명원의 논문에서 성철의 활동과 정치사회적 상황 간의 관계 분석에 있어서 ‘구조적 공진’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은 양자 간에 어떠한 의도성이나 주도성을 가지고 발생하는 주종적 혹은 직접적 인과관계에 의한 교류가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부정하려는 것은 성철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국제적 학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서명원에 대하여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다. 성철이 세속과의 관계를 극도로 멀리한 수행자의 표상으로 전해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에 영합했던 정치승’, ‘독재정치와 가까웠다거나 연관이 있었다’는 등의 단순 사실관계를 서명원이 혼동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철이 독재정치국가라는 상황에서 돈오점수설을 극단적으로 배격하고 돈오돈수설을 선양하였다는 주장은, 공진으로 인해 불교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진폭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보다 훨씬 더 크게 증폭하여 영향 끼쳤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으며, 실제 당시 불교계를 풍미하던 돈오점수설이 돈오돈수설로 급격히 기운 데서도 그 여파가 잘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오돈수론이 그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정치를 실현하게 되었으므로, 민주주의 시대에 공진할 수 있도록 돈오점수를 포함한 다양한 수행법과 간화선 수행의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자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같은 시공간의 국가․사회와 아무런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회적 존재의 필연적 현상을 전제로 한다. 즉 공진을 통한 연기론적 담론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만약 이 논문의 공진에 대한 성립근거를 부정한다면 불교의 진리인 연기법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4. 돈점론의 진의(眞意)를 드러내는 수행풍토와 연구

서명원은 ‘성철의 돈오돈수’가 아닌 ‘돈오돈수 그 자체’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고,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상호보완적인 통합적 관점 및 간화선의 정통성 계승에 대한 새로운 방법적 모색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직언하고 있다. “즉 돈오돈수를 완전히 배격하지 않으며 (성철스님의) 통시적 시간관과 귀납적 사고방식을 수용하는 가운데 그분(성철스님)이 상기시키는 돈오돈수의 핵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 한국불교의 돈점논쟁은 미완인 상태이며, 더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돈점논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수와 점수로써 그 앞의 돈오의 성격을 결정짓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오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같이 인간의 속성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써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돈오는 사람에 따라 있는 것이지 수행법에 따라 달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엄불교나 혹은 선불교와 같이 어느 특정 수행법에 따라 돈오의 성격이 다르다고 정의한다면, 다양한 불교종파들은 서로 상대적으로 모두 부정되는 모순과 함께 특정 수행법의 절대주의를 낳게 된다. 실제로 현재 한국불교계 내에서조차 수행법 절대주의의 산물인 ‘간화선 절대주의’ ‘깨달음 지상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과연 이 실존적 현상계 안에서 절대적 돈오돈수에 입각하여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스스로 소리치고 나올 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결국 많은 수행자들이 절대적 수행론의 장막에 가려서 오도가도 못 한 채 갇혀버리고, 대중들과 함께 아파하고 같이 성장하면서 서로 상생해 나가야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 결과 간화선 수행은 많은 스님에 의해서조차 외면당하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더 이상 ‘절대적 수행론’ 혹은 ‘궁극의 깨달음’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 가는 향상일로의 과정에서 모든 중생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이 시대에 알맞은 수행풍토의 토착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성철이 돈오돈수를 역설한 이유 중 하나도 당시 돈오점수를 빙자한 사이비 돈오가 성행한다고 판단하여 그 시대적 폐해를 척결하고자 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명원이 국가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현대 한국불교에서 돈점론의 태생적 조건을 비교 분석한 것도 돈점론의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내주는, 새로운 시각의 연구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학문적인 차원에서 주의 깊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의 돈점논쟁은 비단 전통적인 맥락에만 국한시키기보다는 과학적 학문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관점을 개척하여 돈점론의 실체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법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자아초월심리학의 최근 분파인 통합심리학을 주도하는 켄 윌버(Ken Wilber, 1949~)는 과학적 학문으로 분류되는 심리학에 영성과 깨달음을 포함시키고, 그 전체를 의식의 발달과정으로 간주한다. 그는 깨달음의 돈오적 현상을 의식의 변성 상태로 분류시키며, 수행론에 있어서는 돈수보다 점수적 입장을 강조한다. 또 다른 뇌과학 분야에서는 종교적 체험을 뇌(전두엽)의 신경세포 작용에 의한 생리적 현상으로 보고, 돈오를 단순히 뇌의 작용이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초기단계의 연구결과인 데다 물질환원주의라는 비판도 받고 있어 아직까지는 완전한 결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차 뇌과학이 더욱 발달한다면, 이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기대된다.

5. 종교학적 관점의 종교교육의 필요성

끝으로 이번 논란과 관계없이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요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특정 종교단체들과 관련된 사회적 물의를 두고 본다면, 종교단체가 거대한 자본과 인원이 결합될 때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한 국가적 사회대통합을 위해서라도 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각 종파의 신자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종교적 본능을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부터 선행되어야 하는데, 종교학의 입장은 바로 모든 종교문화의 근본적인 기반을 ‘인간’이라는 공통적인 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종교학은 최근에 성립된 학문 분야로서, 처음에는 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적 관점으로 종교문화에 접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후 인류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 심지어 경제학 등 매우 다양한 학문 분야와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발전하고 있다.

종교학적 종교교육은 연령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이행되어야 효과가 있다. 각 종교단체는 어린아이에게도 각 종파적 교의를 가르치기에 급급하고, 초․중․고교의 종교교육도 마찬가지로 도덕윤리 과목에 포함되어 불교, 기독교, 유교 등 종교단체의 각 종파별 교육이 주류를 이루는 까닭에,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보편적인 종교교육이 어린아이 때부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불교는 본래부터 인간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종교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종교학적 학문의 객관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한국 불교계에서도 구체적인 종교학적 이론체계 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6. 마무리하며

불교의 승가제도에서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화합은 평등의 관계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 어떤 독재적 권위나 힘에 의한 굴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대등한 토론과 소통 그리고 겸허히 내려놓음으로써 서로 다르지 않은 진리를 향해 가는 것이 화합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번 논란도 단순히 비난이나 편견이 아닌 학문적 소통과 화합으로 이어져 한국불교계의 발전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