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른 스님이 돌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일배, 이배, 삼배… 합장한 스님은 허리를 아주 깊이 숙여 오랫동안 반배를 했다.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전문병원인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을 일궈낸 능행 스님은 객석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을 향해 삼배를 하는 것으로 15년의 소회를 전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스님에게서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사부대중들은 그러나 뜨거운 박수로 스님의 ‘인사말’에 화답했다.
6월 15일,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이사장 능행 스님)는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개원식을 개최했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산기슭에 위치한 자재요양병원에는 3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여들었다.
병원의 번창과 자비사상의 전파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색색깔 풍선이 청명한 하늘로 날아가는 순간 능행 스님을 비롯한 내빈들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라 적힌 병원 현판을 힘차게 제막했다. 1998년 불교봉사단체 ‘자비회’로 시작해 15년간 15,000여 명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가 동참한 대작불사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울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은 15일 개원식을 거행했다.
자재요양병원은 ‘Healing is Loving’을 모토로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지원하는 한편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질이 평등하고 존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승가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승가병동도 마련됐다. 병원은 9,000여 평의 부지에 지하1층, 지상 3층 연면적 약 2,887㎡(약 870평) 규모로 건립됐으며, 완화의료병동과 재활병동, 요양병동, 승가병동을 수용하는 108병상에서 양·한방 의료와 힐링푸드, 대체의학센터 등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능행 스님은 개원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스님은 행사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병원을 지으면 모든 소임을 마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새로운 시작인 것을 알았다. 병고에 시달리는 환우들을 위한 과제가 남았다. 자재요양병원을 건립한 취지와 목적을 잊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운영하겠다”면서 “병원 개원은 후원자 등 모든 분들의 공덕으로 이루어졌다. 그분들의 염원이 이루어지도록 힘쓰겠다. 앞으로 극복해야 할 일들이 많다. 격려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같은 자재요양병원의 탄생에 불교계 내·외부 인사들의 찬사와 격려가 쏟아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사진)은 치사를 통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개원을 축하하며 이곳이 고통 받는 중생들의 안식처이자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참뜻을 실천하는 터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자승 스님은 “평생 불자로 살아 왔음에도 삶의 마지막에는 본인의 뜻과 다르게 불교와의 인연을 놓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자주 목도하기에 종단적으로 간병, 호스피스, 병원 포교의 활성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오늘을 계기로 불교계의 실천 활동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포교활동 역시 또 한 번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격려사에 나선 조계종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교계 언론을 통해 능행 스님의 모습을 접해왔고 오늘 개원식에는 초대보다도 스스로 왔다”며 “격려가 아니라 경하드린다”는 말로 자재요양병원 설립을 축하했다.
밀운 스님은 “산과 같이 물과 같이 해와 같이 달과 같이 살 것 같으면 자연적으로 이타행이고 부처인데, 바로 그 행동을 능행 스님이 하고 있다. 부처님보다 존경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우리가 다 같이 능행 스님처럼 목숨이 다해가는 환자들을 보살펴준다면 이 우주가 평화로울 것이고 자재병원에 다녀가는 환자들은 생사 없는 도를 깨칠 것치며 극락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은 이 자리에서 자재요양병원의 후발주자로 불교계 요양병원 건립에 나서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원산 스님은 “종단에서도 못하고 본사에서도 못 하는 병원불사인데 능행 비구니 스님께서 거대한 불사를 하셨다. 선두주자 능행 스님이 앞서가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로 나서겠다”며 “통도사 본사에서도 6월 21일 관음제일날 통도사 노인요양병원 기공식을 한다”고 밝혔다. 원산 스님은 “각 본사마다 병원불사가 이뤄져서 생로병사의 근원을 해결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 비구니회 회장이자 운문사 회주인 명성 스님은 호스피스를 통한 포교 활성화를 기대했다. 명성 스님은 “불교는 그동안 천도재나 49재 활동은 활발한 편이었지만 정작 임종을 앞둔 이들을 위로하는 일들은 이웃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해 많은 불자들이 임종을 앞두고 개종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며 “이런 측면에서 자재요양병원의 개원은 임종을 앞둔 불자들과 일반인 환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포교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 지현 스님은 축사를 통해 “부처님의 본신이신 사부대중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모여 뜻 깊은 병원 개원을 축하해주심은 분명 영산회상이 재현되는 일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지현 스님은 “정토는 고통이 전혀 없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곳이다. 뜨거운 사랑이 있으면 모든 고통이 행복으로 변화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부처님을 부처님으로 대하는 마음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한다면 이 땅에 분명 정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CPE협회 학술부장인 정무근 신부는 “능행 스님이 크게 삼배를 하셨다. 절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일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도 모르게 스님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과 고뇌의 마음일 것”이라며 “도망가고 싶고 힘들고 어렵게 위대한 이 병원을 개원한 스님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능행 스님이 비구 스님과의 약속을 이뤘듯 앞으로 만나게 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약속도 계속 지켜주시길 부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호스피스의료학회 이창걸 이사장은 “기공식에 참석했을 때에는 언제 완공될까 걱정스러웠는데 오늘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완공된 걸 보니까 좋다. 임종 순간에 부처님의 자비를 보면서 임종할 수 있는 따뜻한 병원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며 “아시아태평양 학회 등 외국에 비해 한국의 불교호스피스 활동이 늦었지만 한국호스피스의료학회가 자재병원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원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한 3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한편 개원식에 앞서 아름다운동행 이사장 자승 스님이 정토마을에 자비나눔기금 1,000만 원을 전달했으며, 능행 스님은 연기자 김혜옥 등 15명에게 감사패와 공로패를 전달했다.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밀운 스님, 원로의원 혜승 스님, 총무원장 자승 스님,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비구니 원로 명성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정문 스님,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원경 스님, 아름다운동행 사무총장 자공 스님, 통도사 문수원 수안 스님, 석남사 선원장 법희 스님,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 등 스님 100여명과 강길부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복만 울산시교육감, 신장열 울주군수, 이창걸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 문영조 후원자 대표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