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돌아오는 남북 안보 위기설, 꾸준히 제기되는 이산가족상봉의 필요성,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종북’ 논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남북 관계는 국가나 정치라는 거대담론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삶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곳곳에서 통일에 대한 찬반, 통일의 방법론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평화통일불교실천기획단(상임대표 진관 스님)은 5월 23일 오후 2시 오대산 월정사에서 ‘통일한국의 정체성’을 논하는 특별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에 나선 네 명의 토론자는 통일한국의 정체성이 남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적 경제체제로 귀결돼야 하는데 궤를 같이 하면서도 통일의 방법론과 주변국과의 관계설정에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세균 교수 “비동맹 중립국가…종북몰이 극복 필요”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사진)는 진보적 입장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남북협력 및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의 대상으로 삼되, 남한이 통일과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평화통일 여부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달려있다”며 “통일국가는 모든 정체세력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체제여야 하고, 통일국가의 경제 체제는 기본적으로 남한 식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남한의 사회·경제체제가 어떤 체제로 변화·발전할 것인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통일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관련국가에 대한 관계를 ‘비동맹 중립국가’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주한미군은 대북군사력이 아니라 대중군사력으로 변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통화통일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한경제 발전에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종북몰이’의 극복을 주문하며 “종북세력은 남한사회에서 더 이상 유의미한 정치사회세력이 아니며, 오늘날 보수세력이 자신 이외의 모두를 종북세력으로 모는 것은 보수세력의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진 위원 “한미동맹 강화…불교는 왜 중생구제 나서지 않나?”

김 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사진)은 보수적 입장에서 평화적인 흡수통일을 주장했다. 김 위원은 “통일한국은 무력통일을 피하며 자유민주체제 통일이어야 한다”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4조대로라면 남한이 북한을 평화적으로 흡수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정치군사적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장했다. 김 위원은 “한반도에게 중립화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이익의 문제”라며 “정치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교류하는 것이 중국의 위협과 일본의 패권주의적 재기에 대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또 남북관계에 대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촉구했다. 김 위원은 “2500만 북한중생이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폐쇄적이고 탄압받는 시스템에서 신음하고 있다”며 “불교의 핵심 가치가 중생의 구제라면, 불교가 왜 북한인권문제에 나서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북한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해서 김정은 정권에게 개혁개방해서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정상화에 들어서지 않으면 정권교체운동에 남한의 종교단체가 앞장서겠다는 선택지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통일에 있어서 중국이란?

김 교수는 “독일의 경우 급변사태가 났지만 이미 이전에 서독의 동방정책을 통한 민간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동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으며,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가 있었다”며 “현재 북한의 급변사태에 한국이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화통일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김 위원은 “독일 통일의 소련의 역할과 한반도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을 다르다”고 분석했다. 전범국인 독일에 대한 분할점령과 전쟁피해국(한반도)에 대한 관리라는 분단의 성격 차이와, 중국은 북한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한용 실장 “역사적으로 통일론 진보해와…이명박 정권서 실종”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사진)은 분단 이후 꾸준히 전개돼 온 통일론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완전히 실종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권의 통일정책, 박정희 정권의 7.4남북 공동성명, 노태우 정권의 7.7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12.13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남북공동선언 등 우리 역사상 통일론은 수구·보수·진보가 교체해 권력을 잡더라도 큰 틀에서는 전진하고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에 와서 북한의 핵무장 논의로 통일론은 아예 실종됐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 6.15, 10.4선언은 사실상 폐기됐으며, 박근혜 정부 역시 공교육에서 반공을 제도화하고 일체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광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단일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역사적 정당성을 가지며 동북아시아의 평화 유지와 한반도 주민의 안정된 생존을 위해서도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통일한국의 희망으로 6.15선언을 첫 남북관계로 만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꼽았다.

송 복 교수 “통일은 자연(自然)…‘가치국가’ 건설해야”

송 복 연세대 명예교수(사진)는 통일은 ‘자연’이고 ‘천리’인 만큼 북한의 세습세력을 자극하지 않되 통일의 기저를 형성하기 위한 물자교류에 집중해야 한다며 “세습집단의 수명이 길어지게 한 햇볕정책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서 성급하게 북쪽의 세습집단을 제거하려거나 무너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쌀과 비료, 냉장고, 세탁기, 밥솥 등 물자에는 이념이나 민족이라는 레테르가 붙지 않아도 된다”며 “물자이동, 인간이동, 정보이동의 3통(三通)이 이뤄지면 김정은 세습집단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교수는 통일국가의 정체성으로 ‘가치국가’를 제시했다. 송 교수는 “‘가치’는 세계 어디든 통하는, 오직 북한만 통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로, 자유, 평등, 인권, 법치의 가치를 살리는 것이 상생이고 화쟁”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실장은 가치국가 건설에 대한 송 교수의 의견에 동감하면서도 이른바 3통이 북한정권 불인정론으로 흐른다면 대상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정권을 배제한 물자교류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한편 이번 토론회를 공동주관한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화엄적 사상과 화쟁의 원리에 입각한 통일론이 제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념 스님은 “세월호 참사도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본다면 남과 북의 대립 속에서 빚어지는 한국사회의 과도한 이념적 대립, 정치적 대립, 나와 타자라는 분리된 자아의식의 폐단적 상황이 있을 것”이라며 “이 시대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통일에 대한 담론이 많이 펼쳐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