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도피안사에 주석하며 일요법회와 문서포교에 힘쓰고 있는 송암지원 스님이 작금의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수행자의 고뇌가 담긴 옥고를 보내왔다. 송암지원 스님은 한국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法)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거종단 차원의 전도선언을 발표하고 각 절마다 일요법회를 개설, 절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바람이 일어나야 제반의 모든 사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분이다. 세월호 참사와 참사에 대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어설픈 대응에 대한 스님의 일갈 ‘꼴값 제대로 못한 과조’라는 제목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꼴값 제대로 못한 과보
- 꼴값하는 세상을 향하여 -

1. ‘꼴값’이라는 말
‘꼴’은 사물의 생김새나 인간의 됨됨이를 일컫고, ‘꼴값’은 사람의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못난 행동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새를 말할 때는 겉모양도 있고 속모양도 있다. 또 꼴값이란 보이는 얼굴값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질값까지 포함해서 두 가지를 통으로 부른다.
분명한 건 신체 중에서 얼굴의 꼴값만은 수시로 자기가 짓고 만든다. 화내고 기뻐하고, 탐욕부리고 남 무시하고, 교만 떨고…, 내지 온갖 형태를 자기가 짓고 만든다. 결국 순간순간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얼굴에 박힌다. 해서,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곧 겉모양과 속모양의 꼴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부터 인간의 일생을 떠도는 나그네에 비유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인생길을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인생여행을 하는 데 나그네가 지닌 (인생)지도는 자기얼굴이다. 자신의 얼굴대로 길을 가게 되고, 또 간 길은 그 지도[얼굴]에 고스란히 입력된다. 한 푼 에누리조차 없어 자못 각박할 정도다.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얼굴[꼴]에는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궤적이 들어있고 나타난다. 그만큼 얼굴은 거짓 없이 그 값을 지닌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값을 가지고 있다. 언필칭 얼굴값이다. 해서, “꼴값한다. 꼴값 떤다”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꼴값이란 크게 두 가지다. 삼독심(三毒心: 貪慾·瞋?·愚癡) 같은 차마 눈뜨고 못 볼 꼴볼견의 꼴값과 본래부터 지닌 불성인간(佛性人間)의 꼴값이다. 후자의 꼴값을 말하고 싶다. 후자는 인간 내면의 진실을 발견하고 드러내야 나타나는 진정한 겉모양 속모양이고, 그 둘의 일치, 표리일양(表裏一樣)을 말한다. 따라서 너와 나, 우리 국민 모두가 이 후자의 꼴값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다.
해서, ‘꼴값’이란 좋게 말한다면 인간의 도리(道理), 당사자의 마음가짐이다. 따라서 의당 누구나 꼴값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린 이 꼴값을 제대로 못했기에 인재(人災)가 빚어낸 참극으로 5천만 국민이 졸지에 발가벗고 70억 인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꼴값’이란 우리가 그동안 써온 어감으로 보면 사뭇 부정적이고 점잖지 못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이 말을 굳이 끌어온 것은 온 국민이 졸지에 죄인이 된 오늘의 무서운 참극을 당하여 차마 몸 둘 바를 모를 죄책감에서다. 꼴값이라는 말마저도 과분하지 않겠는가. 우린 저, 생대[生竹] 같은 아이들을 수장(水葬)시키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뻔뻔한 주제들이니까.
너무나 어이없는 몰지각의 행동으로 생목숨을 빼앗은 이 참극 앞에서 우리 모두 백 천만 번의 간뇌도지(肝腦塗地)의 참회로도 태부족하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사람의 꼴값, 우리의 꼴값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영영 없도록.

2. 진정한 꼴값이 필요한 세상
사람에게는 ‘꼴[얼굴·신체]’이 있고, 그 꼴이 벌이는 행위의 ‘가치[값]’가 있다. 누구나 나름의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三業]를 통틀어 한 마디로 꼴값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를 갖춘 진정한 꼴값을 드러내기 위해선 먼저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또 하나의 자기가 이 세 가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허투루 하지 않고 살피는 것은 결국 생각의 힘이다. 불교는 사람에게 생각의 힘을 키워주어 스스로 바른 삶을 깨닫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이다. 해서, 불교에선 자기구제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불교가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어언 2천년이다. 하많은 세월임에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백성들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게, 70억 인류가 나서서 지탄하는 주인공이 이 땅의 자손이라는 게, 역사에 부끄럽고 오늘의 인류에게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불자(佛子)된 사람으로서 말이다. 성인(聖人)중의 성인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렇게 간절하건만, 대자대비가 그렇게도 심금을 울리고 있건만―.
그렇다. 우리 불자들은 지금껏 살아온 이 땅의 백성들이 벌인 모든 잘못을 대신하여 낱낱이 참회하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생각의 힘을 키워 이 땅의 백성들이 진정한 꼴값을 하도록 전법교화에 분발해야 한다. 누구나 꼴값을 제대로 해 성공적인 삶이 되도록,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가 되도록, 불교가 큰 책임을 자담(自擔)하고 우리 백성들을, 나아가 전 인류를 깨우쳐 나가야 한다. 어딜 가든 서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 불국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해서, 이 땅의 백성들은 각자 자기의 분수와 직분에 맞는 꼴값을 찾아 제대로 살아야 한다. 각성(覺性)의 인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다함께 만들어 나가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은 『황홀한 영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위대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러나 범인(凡人)들은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면서 할 수 없는 일만 바란다.” 또 “인간의 불행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며, 사회의 불행은 사회의 구성원이 각자 할 일을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꼴값을 못하고 있다는 뜻의 점잖은 말이다.

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 도무지 봄 같지가 않다.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항으로 가고 있던 세월호가 진도 앞 바다에서 뒤집혀 침몰했다. 배의 선장[이준석]과 선원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 꼴값을 제대로 못해서 일어난 대 참극이다. 하늘과 땅, 전 인류가 분노할 천인공노(天人共怒)의 일이 너무나 어이없게도 남의 일처럼 태연히 벌어졌던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꼴값을 못한 정신의 해이, 어리석음의 극치인 무지(無知)와 몰지각이 빚어낸 일대 비극이다. 숱한 생명들의 가엾은 희생. 그것도 나이든 인간들이 어린 생명들을 탈취한 꼴이 됐으니 꼴값이란 말조차도 아깝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뒤틀린 정신 상태, 탐욕스런 먹이사슬이 뒤엉켜 빚어낸 참극임이 밝혀지고 있다. 몇몇 사람을 떠나 우리 한국인들 모두가 공범자가 되어가고 있다. 삶의 원칙과 책임을 저버렸고, 과정을 소홀히 여겨 결과에만 탐닉한 공범자들이다. 천인공노의 참극 앞에 참담하고 혹심한 죄인의 심정을 우리 한국인 누구도 피해 갈수 없게 되었다.
세월호의 선장이나 선원들, 내지 중생은 어리석다. 이번 사건을 통해 속속 들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어리석음과 탐욕의 치부가 그걸 너무나도 잘 말해준다. 그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가관이란, 이 땅에 숨 쉬고 사는 사람들끼리도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으니. 얽히고설킨 비리가 도처에 먹이사슬로 묶여져 있고, 도덕적인 해이와 직무에 대한 기강이 마구 풀어헤쳐져 봉두난발임에랴.
특히, 세월호의 선주를 비롯한 부유층과 기득권들의 아집과 끝 모를 탐욕은 독버섯처럼 엉켜 있고, 무책임과 이기주의가 득세하고, 무엇보다 종교인들의 도덕성 마비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 파고(波高)에 밀려 땀 흘려 노력하여 얻는 대가를 추구하는 보통사람의 건강한 정신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가 도처에서 판치고 있는 오늘의 세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진정한 꼴값을 저버린 우리 사회의 무지막지한 군상들이 총 합세하여 일대 참극을 벌인 것이다. 꽃피어보지도 못한 앳된 생명을 수장시킨 일에 우리 모두 인간의 탈을 쓰고 흉악한 살인범들이 되고 말았으니, 온당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봄이 봄이겠는가?

4. 우리의 진정한 꼴값을 찾아서
그동안 우린 좀 부지런히 사는가했더니, 무역 강대국이라는 소리를 듣는가했고,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문화의 자긍심을 느끼는가싶더니, 하루아침에 정신부재의 나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우리 내부에서 치명적인 독소가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자만과 아집, 독선과 탐욕이 독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번 참극으로 우리 내부에 번지고 있는 독도(毒圖)의 전모가 드러났다.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인 해이와 직무에 대한 무책임과 이기심은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었고, 기득권 세력들이 관장하는 국가시스템은 마비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뚤어진 사고와 잘못된 생각은 마치 독극물처럼 모든 걸 녹여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자초(自招)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죄지은 사람들은 일벌백계로 엄히 징치해야 하지만, 그런다고 삐뚤어진 정신이 금방 새로워지는 건 아니다. 물론, 시스템을 고칠 건 고쳐야 하되, 동시에 거국적으로 일대 국민 의식의 개조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참극은 총체적 난맥으로 인한 사회적인 원칙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이 일에 대해 분명한 건 너나 할 것 없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국민으로서 진정한 꼴값을 제대로 못해 벌어진 일이다. 매체에선 우리에겐 왜, ‘버큰헤드 정신’이 없는가? 묻고 있다. 그런 삶의 원칙, 정신적인 근거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개인도 사회도 진정한 꼴값의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1852년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 바다에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했다. 승객은 영국 73보병연대 소속 군인 472명과 가족 162명. 구명보트는 3대뿐으로 180명만 탈 수 있었다. 탑승자들이 서로 먼저 보트를 타겠다고 몰려들자 누군가 북을 울렸다. 버큰헤드 승조원인 해군과 승객인 육군 병사들이 갑판에 모였다. 함장 세튼 대령이 외쳤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희생해 온 가족들을 이제 우리가 지킬 때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탈출시켜라.” 아이와 여성들이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명보트로 옮겨 탔다. 마지막 세 번째 보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아직 자리가 남아 있으니 군인들도 타세요.” 한 장교가 나섰다.
“우리가 저 보트로 몰려가면 큰 혼란이 일어나고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 함장을 비롯한 군인 470여명은 구명보트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영국은 그 후로 크든 적든 배사고가 날 때마다 승객들이 귓속말로 “버큰헤드를 기억합시다”라고 해서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건져냈다. 우린 이제, 서글프지만 “세월호의 비극을 기억하자”고 큰소리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5. 사람의 진정한 꼴값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꼴값이 있다. 나이의 꼴값도 있고 역할의 꼴값도 있고, 성(性)이 주는 남녀의 꼴값도 있고 신분이 주는 꼴값도 있다. 부모의 꼴값, 어른의 꼴값이 있고, 종교인의 꼴값, 공무원의 꼴값, 국회의원의 꼴값, 장차관의 꼴값, 군인의 꼴값, 학자나 교육자의 꼴값, 법조인들의 꼴값과 언론인들의 꼴값도 있으며, 등등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꼴값이 있으며, 누구나 제각각의 꼴값을 지녀야 종내 밥 먹고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각자 어떤 꼴값으로 살아가든지, 사람의 본분은 남 돕기 위해 태어났다. 그럼으로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태어나서 죽어야 하는가?’ 묻지 말아야 한다. 도무지 부질없는 질문이다. 살아있는 현상, 존재의 실상은 ‘남 돕는’, 그것으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삶의 이유를 그 삶에게 다시 물으면 그 삶을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불경(不敬)이 된다. 이런 절대적인 삶을 불교에서는 존재의 불성본분(佛性本分)이라고 말한다.
불성본분은 깨달음으로 그 전모가 드러난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정신작용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아니, 깨달음의 현현(顯現)이다. 깨달음은 배워서 알거나 체험하는 것보다 가르침을 받아들여 행하면 저절로 알게 되고 체험이 된다. 남 돕는 일이다.

문: 불자(佛子)들이 왜 근검절약으로 살아야 하는가?
답: 남 돕기 위해서다.
문: 불교의 남 돕는 이유는 뭔가?
답: 마음의 본래모습, 불성본분이다.
문: 마음의 본래모습을 말해 달라?
답: 남 돕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남 돕는 일은 인간의 숙명이며, 하늘의 뜻, 천도(天道)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려나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은 오로지 이 한 가지, 남 돕는 일임에랴. 이 사실을 깨닫거나 감수(甘受)하면 행복한 삶이고, 그렇지 못하면 허위허위 지지리 고생스런 못난 삶이 된다. 이른바 힐링이나 웰빙의 가장 좋은 방법은 남 돕는 일이다. 자연, 웰다잉도 염려할 필요 없다.
남 도우는 그곳엔 사람의 보이지 않는 꼴값, 마음의 작용인 씀씀이가 바탕하고 있다. ‘관계와 협력’을 통한 마음 계발(啓發)이다. 또한 일심(一心)의 현현(顯現)이다. 다만, 어떤 뜻으로 어떻게 ‘관계와 협력’의 마음을 써 나가느냐만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남 돕는 일을 즐겁게 하면 마음계발이 순조롭고, 남 돕는 일을 마지못해 하면 마음계발이 더디거나 멈춘다. 심지어는 퇴보하거나 역행(逆行)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남 돕는 일을 위해 평생 제각각 꼴값 떨며 꼴값 다해서 살아간다. 겉보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결국 일심을 계발하는 것이고, 온갖 고생을 자초하는 사람도 남는 것은 마음 계발이고, 출가하여 고행난행을 겪는 사람도 남 돕기 위한 일심 계발을 도모한다.

“일심은 뭔가?”
“자기 마음[無我]이다.”

자기 마음을 계발한다거나 쓴다고 하는 건 일상(日常)에서의 마음가짐을 말하고, 마음 씀씀이를 말한다. 밝게 쓰든 어둡게 쓰든 분명한 건 마음을 쓰고, 마음에 의해 산다는 사실이다.

6. 마음이 밝아야 꼴값이 올라간다
다만, 마음을 쓰되 밝게 써야 한다는 거다. 어둡게 쓰면 일심 계발이 더디거나 정체되고 퇴보한다. 일의 종류나 당사자의 학식이나 지위, 종교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마음을 밝게 써야 일심 계발이 순조롭고 진정한 자신의 가치[꼴값]가 드러난다. (여기선 종속적인 환경은 말하지 않기로 하고 주체적인 마음만 거론한다.)
마음을 밝게 쓰는 건, 먼저 ‘인간이 남 돕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깊이 아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다고 말해도 좋다. 이 사실을 불교에서는 깨달음[緣起·中道]이나 신앙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이 사실에 계합하거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신앙[信受奉行]하면 된다. 단순하기 그지없다. 뭔가 신비하여 대단하고 무지 어려운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다.
대개의 일들이 알고 보면 쉽듯이, 인간이 남 돕고 살아야 함도 어이가 없고 허무할 정도로 쉽다. 지근이고 지척이며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다.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그렇지만 이런 단순하기 그지없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서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했고, 또 때로는 한 생의 삶이 아닌 몇 생의 삶을 걸고 도 닦는다고 애를 써야했다. 생각의 힘이 약해서다. 해서, 많은 세월을 허송했고 글자랑 아는 자랑으로, 신비스런 허구에 노닐며 남 돕는 일을 대신했다. 결국, 꼴값 잘하고 살기 위해선 데―, 남 돕고 살기 위한 원리를 받아들이거나 깨닫기 위해선 데. 아뿔싸! 엉뚱한 길에서 마냥 서성거리며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송했다. 본의 아니게 자신과 남을 동시에 속인 어두운 일이 되고 말았다.
흔한 말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사람에게 차별이 없다는 건, 생명대의(生命大義)이다. 남 돕는 게 각자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다. 이 대의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왕후장상에서 장삼이사까지 일체 차별이 없다. 인간에게 최후까지 남는 것, 얻을 것이 있다면 ‘남 돕는다는 사실!’, 그 일을 통해서 성취하는 일심뿐이다.

7. 진정한 꼴값의 바탕은 무아(無我)이고 일심(一心)이다
따라서 인간 삶은 어떤 방법으로 무엇으로 꼴값을 떨든지 일심을 현전(現前)하는 것이고 쓰는 것이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는 일이 중요하고,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의 권리가 존엄한 것이다.
남 도울 불성권리(佛性權利)를 말하고, 이는 자신의 일심에 근거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이른바 천부적인 것, 본래적인 것, 생명적인 것이다. 해서, 지구와 우주의 존재를 생명으로 부른다. 우주대생명, 우주대광명이다. 그것들의 상호관계엔 법칙이 있기에 법계(法界)라고 부른다. 그 법칙은 연기중도(緣起·中道)이고, 매우 순수한 상호관계와 양질의 협력을 말한다. 한마디로 ‘관계와 협력’이고, 그 속성은 무아(無我)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존재와 생명은 서로 돕는다. 큰 별이 작은 별을 붙잡아두듯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말해주듯이 존재는 태생적으로 ‘관계와 협력’을 지니게 된다. 철저하게 물리적 정신적 상호작용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남 돕는 일은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점에서 인간세상은 심지어 천인(天人)들이 사는 천국보다 수승(殊勝)하다. 하늘나라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이 땅은 남 돕는 일이 더 열렬하여 성불(成佛)의 땅, 무한 가능성의 땅이기 때문이다. 성인들조차 외면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되레 애정을 가지고 이 사바세계에 오고 또 온다.
결국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종 남 돕는 일, 그걸 마음 계발이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무아(無我)의 실현, 존재의 본분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사람의 꼴값, 그 바탕은 일심(一心)이나 무아라는 거다.
그런 마음 계발이나 무아의 삶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인생을 열심히 살고도 부족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컷 좋은 일 하고도 부족해 하거나 되레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이 무아의 삶이다. 분수를 지키고 직분을 잘 수행하는 삶이 무아의 삶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원칙을 준수하고 사는 삶이 무아의 삶이다.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고 상식적이고 온당하고 평화롭게 사는 삶이 무아의 삶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소통하는 자비의 삶이 무아의 삶이다. 우정과 의리, 따듯함과 인정스러운 삶이 무아의 삶이다. 내지 남 돕는 것, 모두 무아의 실천, 일심의 삶이다. 3박자인 ‘뜻과 말과 행[身口意]’을 온전히 하여 남 돕는 일을 짓는 것이 무아의 삶이며, 일심의 현현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음의 무집착(無執着)이 무아와 일심의 삶이다.

8. 방치된 자신의 꼴값을 되찾기 위해서
문제는 있다. 인간이 자신의 꼴값, 그 바탕이 일심이나 무아라고 하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해서, 이점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난제(難題) 중의 난제다.
남 돕는 게 자신의 근본임에도 철저하게 방치되어 있어서다. 깨닫지 못해서고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그러므로 자연 남 돕고 사는 자신의 삶에서 얻게 되는 진정한 묘미(妙味:解脫樂)를 알지 못하여, 자신의 본분을 모른 채 산다. 마지못해 남 돕는 것으로 인생을 삼는다.
원인이 분명하다. 감각에 사로잡혀서다. 기분, 쾌락 등의 얕은 말초작용이다. 더 쉽게 말하면 뜻을 놓친 상태다. 말하고 행동하고 사유하는 삼업(三業) 속에 뜻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사람은 금방 감각적인 말초 인간이 되고 만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접촉으로 느끼는 것과, 이 다섯 가지를 판별하는 의식을 합해 모두 여섯 가지다. 이 여섯 가지의 정신[六識]작용을 주관할 수 있는 것이 뜻이다. 뜻을 위해선 감각을 제어하거나 조절하기 때문이다.
뜻은 남 돕는 일이다. 사람에겐 이 뜻이 있어야 비로소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원효성사의 말씀처럼 “일체에 걸림 없는 사람은 한길로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고 한다. 불교에서는 도(道)라고 말한다. 이 도에 대한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제자인 사공본정(司空本淨)의 시는 사뭇 명쾌하다.

見聞覺知無障碍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데 걸림이 없어,
聲香味觸常三昧 소리 냄새 맛 감촉이 그대로 삼매로다.
如鳥空中只?飛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단지 날아갈 뿐이듯,
無取無捨無憎愛 취함도 버림도 없고 사랑도 미움도 없네.
若會應處本無心 만약 대하는 곳마다 본래 무심하면,
方得名爲觀自在 비로소 이름하여 관자재라 부르리라.

돌이켜 자신을 곰곰 살펴보면 남 돕는 게 자신을 돕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고, 진정한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도 닦아야 하는 이유고, 너와 나는 둘이 아닌[不二] 진리인생인 까닭이다. 해서, 남 돕기 위해서 인간이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게 부처님을 위시한 인류가 배출한 뭇 성인들일 것이다. 방법은 각각 달라도.
그럼에도 남 돕는다는 게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한사코 모르고 사는 무지(無知)가 판을 치고 주류를 이룬다. 결국, 우린 무지의 먹구름을 피하지 못해 오늘의 재앙을 자초(自招)하고 말았다. 인간의 무지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거다. 성인의 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걸 멀리해서다.

9. 이타자리의 세계, 인간학의 최종 결론
인간 자신의 진정한 꼴값이 지닌 가치를 상실하면 본능인간이 되어 약육강식의 본능사회로 간다. 반면, 남 돕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견(知見)을 가지면 지성인간이 되어 협력을 낳고 지성사회로 간다. 또한 전 생태계의 생명구조가 ‘관계와 협력’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으면 불성인간이 되어 대립을 초월하는 평화의 이상향인 공존사회로 간다.
불교의 핵심인 연기중도(緣起·中道)는 세계의 구조가 이타자리(利他自利)로 구성되어 있음을 선언하고 의당 남 돕는 삶으로 살아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언급했듯이 물리적 생물적 모든 현상을 통틀어 이를 무아(無我)라고 말하며, 인간과 우주의 본성섭리(本性攝理)라고 한다. 인간은 남을 돕고, 큰 별은 작은 별을 붙잡고, 먹이사슬이 촘촘하듯이 무아의 삶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불국토(佛國土)다. 자기의 진정한 꼴값 실현을 통해 남 돕고 사는 진리사회를 말한다. 천국이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튼 인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겉모양도 속모양도 변해간다. 따라서 세상에는 영원한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다. 누구도 규정하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을 뿐이다. 인간이나 만물의 자성은 항상 변[無常]하기 때문이다.
해서, 남 돕는 게 삶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오늘 모르면 내일 알고, 젊어서 모르면 늙어서 알고, 여기서 모르면 다른 곳에서 알며, 살아 있을 때 모르면 죽을 때라도 알고, 금생에 모르면 다음 생에서라도 알게 된다. 결국, 알게 된다. 존재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이어서다.
다만, 교육이 필요하고 학습이 중요하다. 인간의 속성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 능력으로 변하는 바탕인 무아를 깨닫기 위해서다. 무아를 알면 자연 남 돕게 된다. 아니, 남 돕게 되면 저절로 무아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된다. 남 돕는 무한한 힘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까닭이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인간학의 최종결론이다.
누누이 말했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본성은 무아라는 사실이다. 본래성불(本來成佛), 본래부터 남 돕기 위해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이라는 말은, 모두가 남 돕고 산다는 사실의 천명(闡明)이다. 이게 만고의 진리다. 해서, 사람의 진정한 꼴값이나 밥값은 무아다. 인간이 위대한 건 남 돕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지구상에선 인간밖에 없다.

10. 남 돕는 건 불교의 궁극적 신앙
사람은 누구나 꼴값으로 살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생긴 대로 분수대로, 가는 길대로 마음먹은 대로 묵묵히 꼴값하며 살아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하고 인간을 알아야 함도 앞에서 말했다.
유리거울에 자기 몸을 비춰보듯이 진리거울에 자기 마음을 비춰봐야 남 돕는 자기, 무아를 체득한다. 거기서 무아행이 나온다. 꼴값 제대로 해야 자신의 면모를 이룬다는 뜻이다. 바로,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원만구족행(圓滿具足行)이다. 남 돕는 원리가 곧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본능이라고 말해도 좋다. 생존본능만이 아닌 또 다른 본능이 숨어있다. 바로, 남 돕기 위한 욕구본능이다. 사실, 이 일은 먹는 일보다 한 차원 높은 또 다른 생존본능이다. 먹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생존의 원리인 지혜(智慧)이기 때문이다. 이 욕구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기에 삶의 바탕이 된다. ‘관계와 협력’으로서 말이다. 다만, 자신 안에 있고, 고요하지 않으면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에 자신마저도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이 욕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은밀하지만 어김없이 발휘된다. 때로는 약간 포장되거나 굴절된 파장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보이는 것의 이면(裏面), 속을 들여다보면 악(惡)이 악이 아닌 것이다. 악에도 뜻이 들어 있어서다.
흔한 예를 보자면 인간에겐 질투가 있다. 질투는 남 돕기 위한 욕구의 안전발판이다. 여자의 질투는 미적 다툼이 아닌 생존욕구의 발로이고, 남자의 질투는 책임을 수행하려는 소유욕구의 발로다. 출가자의 질투는 진리욕구다. 다른 사람은 진리의 주인공이 되는 데 자신은 뭔가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분발심(奮發心)이고, 자신이 못 미치는 것에 대한 내면을 향한 분한 마음[忿心]이다.
그러니까 악도 악이 아닌 또 다른 남 돕는 일, 남을 깨닫게 하는 교훈이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모든 행위는 철저하게 남 돕는 걸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 돕는 걸 선행이라고 말하며, 종교에서는 진리라고 말한다. 남 돕는 건 말이나 지어먹은 생각이전의 엄연한 사실인 여실지견(如實知見)인데―. 남과 자신은 한 몸, 왼팔이 남이라면 오른팔은 자기다. 불교신앙이다.

11. 출가자의 진정한 꼴값, 대의(大義)다
이처럼 남 돕는 불교신앙은 인격(人格)이 되고, 신격(神格)이 되며, 보살격(菩薩格)이나 불격(佛格)이 되어야 한다. 인격은 보이고 들리는 것을 갖추고, 신격은 보이지 않는 것이나 들리지 않는 것마저도 갖추고, 보살격·불격은 그 대(對)인 둘마저도 초월한 일체를 갖춘 것이다.
불교의 지향점은 인간 모두는 본래부터 불격이라는 거다. 남 돕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전심전력을 기울여 체득하고자 집을 나선 사람들이 출가자다.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체험은 불변의 신념이 되고, 그걸 사방에 퍼뜨리기 위해 출가집단이 형성됐다. 이른바 불교의 승단이다.
익히, 다 아는바와 같이 출가자는 혈육의 의(義)를 버리고, 진리의 의를 짊어지려고 작심한 사람들이다. 혈육의 작은 가정을 버려, 진리의 큰 가정을 자담(自擔)했으니 말이다. 해서, 출가정신(出家精神)은 대의(大義)다. 대자대비이다.
그럼으로 출가자는 의당 아무런 대가없이 남 돕기 위해서 살아야 하고, 남 도우면서 살아야 평생의 소원성취가 된다. 물론, 기쁘다. 요즘 말로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는 거다. 따라서 남 돕기 위해 겸손해야 하고, 사치하지 말아야 하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 도우는 불성본분을 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서, 출가와 가출은 엄연히 다르다. 막무가내 집을 버리는 것이 가출(家出)이라면, 남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와 대의를 위해 죽겠다는 차디찬 결심은 출가(出家)다. 출가는 대의를 위해 가정을 버린 것이다. 세간의 은혜를 칼로 자르듯 과감하게 버린 것은 출세간의 진정한 은혜로 보답하기 위해서다. 사생자부(四生慈父)께서 일체중생을 위해 집을 나선 길을 출가자들도 따라 나선 것이다. 혈육의 가정을 떠나, 사해동포와 사생(四生)을 가정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해서, 승단은 백번 생각해도 언제나 대의의 집단이다.
더욱이나 여성의 출가는 한층 숭엄하다. 앞에서 말한 대로 사람은 남 돕기 위해서 태어났고, 여성은 목숨 걸고 남 돕는 사람들이다. 이점에서 남성들보다 한층 높은 정신의 광폭(廣幅)자들이다. 바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다. 이 일은 예나 지금이나 목숨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남 돕는 일, 이타(利他)의 꽃이다. 여성은 본래부터 남 돕는 공덕신(功德身)을 지녔다.
여성들이 그런 지고의 역할을 뒤로한 채 출가했다면 의당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분명, 세간에 있을 때보다 더 남 돕는 위대한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니승(尼僧)들은 모두 마더 테레사 이상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여성의 출가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은 숨은 이유가 이점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출가가 지닌 진정한 꼴값은 한량이 없어서, 미처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래서 대의를 위해 가정을 버리는 출가의 꼴값을 사회는 용인해 주었고 기대해 주었다. 이제 출가는 시공을 넘어서 본연의 꼴값인 대의를 따라 살아야 한다. 출가는 대의를 위해서고, 출가자는 대의를 구현하는 의인들이다.
그 의인들이 우리 사회를 다시 구제해야 한다. 일대 국민각성운동의 중심에 서야한다. 삶의 원칙을 지키는 국민 의식을 새롭게 하는 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부처님의 지엄하신 부촉임을 다시 대오각성해야 하리라.

12. 부모의 꼴값― 남[자식] 돕는 양질의 헌신이다
사람에게 진화나 성숙과 발전의 토대는 누구에게 태어나느냐에 달렸다.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사람은 어느 집에 사느냐보다 누구랑 사느냐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부모 노릇, 부모의 꼴값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무한한 가능체로서 모든 걸 학습해야 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학습하느냐의 초기학습이 일생을 좌우하는 까닭이다.
인간은 가능성이 큰 만큼 학습의 기간도 길고 내용도 중요하다. 전 동물계를 둘러보아도 인간만큼 긴 학습기간을 갖는 건 없다. 이에 이르러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부모역할, 부모노릇, 부모꼴값을 지속적으로 엄청 잘 해야 한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자식이기 전에 남 도울 대상의 엄연한 한 인생이고, 외경스럽기 그지없는 인간생명이다.
그런 한 인생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일이다. 한 인간의 미래를 좌지우지해서다. 그러므로 당연히 도 닦아서, 자신을 극복하고 조절해서 자식을 대해야 한다. 자식은 소유가 아닌 독립적인 숭고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런 독자적인 한 인격에 잘못된 버릇이 생겨 습관으로 굳어지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평생을 두고 씨름해도 떼어내기가 어렵다. 그럼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뭘 보여주는가는 혹심할 정도로 결정적이다. 부모의 꼴값이 자식에겐 지고의 인생값이 되기에 말이다. 반면, 좋은 건 그만큼 오래 가고 파장도 크다는 말이 된다.
요즘 친구 같은 아버지가 유행이란다. (道의 입장에서 보기엔) 좀 웃긴다. 부족한 생각들을 덩달아 흉내 내는 일들, 유행의 흐름을 바라보면 우스꽝스럽다. 물론, 부모가 친구가 될 부문이 따로 있을 것이다. 무조건 친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어린 자식이 은연중 보고 듣게 되는 부모의 꼴값이 실종되어서다. 사람에겐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걸 오늘의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이 점에서 흔쾌히 자식에게 내놓을 부모의 답은 선배가 되어야 한다. 인생선배 말이다. 부모의 꼴값을 따라 흉내 낼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의 선배, 어진 길잡이가 되고 갈림길의 이정표 같은 고마운 선배, 은연중 존경할 수 있는 선배가 되어야 한다. 자식이 보기에 그런 선배를 친구 같다고 해야 하리라.
부디, 인생 선배로서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자. 결코, 친구 같은 엄마·아빠의 꼴값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는 걸, 부족하다는 걸, 자각하자. 자식에겐 부모가 인생의 모델인 걸 뼈아프도록 알자[痛覺].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진정한 부모의 꼴값임을 우리 모두 다시 알자. 그리고 부모가 된 사람이 일차적으로 남 돕는 일은 자식을 잘 키워 사회에 내놓는 일임도 알자. 그 자식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와 나라는 한층 밝아질 테니까.

13. 어른의 꼴값
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없는 것과 같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사회의 변화로 탓을 돌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유행을 따른다고 핑계대면 비겁하다. 문명이나 유행보다 더 우선적인 게 인간의 마음작용, 곧 마음 씀씀이인 용심(用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마음은 문명의 산실이 아닌가? 따라서 용심은 문명에 우선한다. 그런 인간의 용심은 인생을 좀 살아보아야 얻게 되는 체험이고 보물이다. 비록, 어른이 문명의 기기(器機)에 둔감하고 유행에 서툴러도 역시 어른이다. 어른의 진정한 꼴값은 이 용심에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문명의 기기를 잘 다뤄도 용심에 있어서는 어른들에게 배워야 한다. 젊은이들 탓이 아니다. 우스꽝스럽게도 나이 든 어른들은 젊게 산다는 감각적 유행에 정신을 빼앗겨, 너도나도 철없는 짓을 앞장서서 경쟁적으로 저지르고 있다. 어른의 꼴값을 스스로 내동댕이친 것이다. 젊은이들이 용심을 배울 곳이 없게 만들었다. 지혜로운 용심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위기이고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나이 든다는 건 예로부터 지혜로운 용심을 얻게 되고, 그걸 써야하는 책임과 역할이 따른다. 밥값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젊게 산다는, 오래 살고 싶은 헛된 욕심에 빠져 지혜로운 용심을 써야하고 보여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아예 방치하거나 버렸다. 이기적이고 못난 짓이고 부족한 생각이리라.
누구나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탓한다. 마땅히 그들의 소행은 징치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의 소행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피고 가다듬어야 한다. 그동안 어른노릇을 제대로 못한 사회적인 책임 때문이다. 젊은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으로서 책임을 상실했고, 세상을 오래 살았으면서도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장차 염라대왕의 밥값 추궁 앞에서 무슨 말을 어찌하려는 지, 서둘러야 하리라!

14.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사회적인 책임을 맡은 사람들, 정치인이나 교육자, 법조인과 언론인 등등, 모든 분야의 책임자들도 어른의 진정한 꼴값을 버린 것 같다. 모두가 인기몰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얘들처럼 허장성세를 내세우고, 젊어 보인다고 하면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마냥 좋아한다. 철없다는 생각은 아예 못한다. 해서, 성형이라도 서슴지 않는 만용을 부린다. 허긴, 청와대 부부까지 성형을 하고 TV에 나왔었으니―.
어쩌면 우리 사회 모두가 나이나 역할에 관계없이 그렇게도 판박이 돈키호테가 되어 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도무지 안정감이 없다. 아무리 남 도울 줄 모르고, 제 잘난 멋에 사는 막된 세상이라고 해도 유분수지, 지도자들마저도 체면이나 염치마저 저버린 채.
결국 헛것을 용심 앞에 세워서다. 여기서 묻고 싶다. 어른의 진정한 꼴값, 사회 지도자의 진정한 꼴값은 어디에 있는가? 왜, 나이 든 사람들의 비뚤어진 생각 때문에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망가져가야 하는가? 세월호의 침몰, 이 어찌 청천 백일하에 나이든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정신부재의 치명상을 입고 해외여행은 어떻게 가려는가? 도대체 사회적인 직분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에 있고, 어른의 꼴값은 어디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가?
물론, 말로는 너도나도 어른이다. 온갖 꼴값에 앞장선다. 실천이 없는 생색의 꼴값, 너나 없는 일색으로 가관이다. 사회지도층일수록 그렇다. 그들이 무슨 변명을 해도 숨길 수 없는 건 자식을 보면 안다. 말과 실천, 안팎이 다르다는 부동의 증거다. 원인은 어른이라는 부모라는 자각과 책임이 없어서다. 진정한 꼴값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돼 있지 않다는 거다. 스스로 절제와 조절이 안 된다는 거다. 수준 이하라는 거고, 그러면서 세상에 나와서 거드름을 피운다. 자기를 모르니까. 그런 결과들이 모인 게 오늘의 참극,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생각이나 할까.
어른으로서 진정한 꼴값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결정적인 때 주저하거나 용기를 내지 못한다. 실천이 약해지거나 없게 된다. 비겁해지고 이기적이 된다. 그건 남 돕는 진정한 꼴값이 인격화 되지 않아서다.
알지 못하는가? 실천이 없는 생각은 번뇌라는 걸. 번뇌는 생각과 행이 일치되지 않는 것, 일치시키지 못하는 걸 말하고, 꼴값을 못하는 걸 말한다. 그러므로 악행은 나쁜 일[惡業]은 될지언정 번뇌는 아니다.

15. 국가 개조, 민족 개조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 개조론’을 편다. 분명한 건 개조는 특정한 어느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상시(常時)로 늘 해야 하는 일이다. 인간의 생각을 다잡고 바꾸는 일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온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 개조를 해야 한다. 혁명이나 혁신이 아닌 아예 나라를 새로 만드는 일과 같다. 이런 국가 개조에는 국민 의식 개조와 사회 시스템 개조와 자연 환경보존이 있을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나 자연 환경보존은 정부에서 주도하여 민간과 같이 하면 될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국민 의식을 통한 민족 개조는 삶의 철학을 확립해야 하는 일이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전문적인 인력도 있어야 한다. 이글의 결론으로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회 시스템을 아무리 바꿔도 그걸 운영하는 건 인간이므로 건강한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활한 운영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의식 개조가 우선되고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걸 종교에 맡기자는 거다. 물론, 종교에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큰 걸 보자.
우리나라는 종교백화점이다. 다양한 종교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어서다. 각 종교의 공통점은 인간의 내면을 살핀다. 따라서 어떤 가르침이라도 바르게 신앙하면, 종교사상에 의해 사람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오늘의 어처구니없는 범부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각 종교는 본분에 충실하면 된다. 새로운 기법이나 처방 따윈 필요 없다. 가르침은 현상을 초월해 있어서다.
결국, 인간의 정신작용은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고, 종교는 그걸 일깨워준다. 올바른 정신작용을 통해 바르게 살자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은 형태는 달리해도 깨달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의 행은 깨달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인간의 본분이고 생명실상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이런 종교의 가르침은 이미 사상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가르침이고, 거기엔 시류에 따라 변하지 않는 우뚝한 교리본령이 있다. 해서, 의식 개조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교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회분위기를 바꿔서 종교 활동을 측면에서 돕는다.
예를 들어 결혼이나 축하행사를 평일 저녁에 하도록 사회적인 합의나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일이다. 사람들이 쉬는 토요일에는 개인이나 가정의 일에, 일요일에는 종교생활을 오롯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다. 그밖에도 방법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국민 의식을 개조하는데 따로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아도 되고,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가능하며, 공무원의 손발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민간의 힘으로 가능하게 된다. 국가에 부담 없이 해 나갈 수 있는 국가적인 사업, 항구적인 국책이 될 수 있다고도 본다. 해서, 기왕의 종교를 원용하여 국민 의식을 개조하자는 거다. 전군(全軍) 신자화(信者化)하듯이, 전 국민에게 각기 종교를 갖게 한다면…. 미루지 말고.
부디,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민들 각자 번뇌를 떨치고 바람직한 꼴값을 하자. 불성(佛性)의 꼴값을 하며 사는 게 이 생을 살아가는 한 가지 소원이 되도록 하자. 이제, 무고한 희생 앞에 석고대죄의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대 국민각성의 의식 개조운동을 벌여 나가자. 제2, 제3의 비극을 막을 수 있도록 하자.
이일이 가엾은 어린 생명들에게 지은 죄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아아, 착하디착한 어린 생명들! 영문도 모른 채 수장(水葬) 당해 구천(九泉)을 헤매고 있을 저 불쌍한 원혼(?魂)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5천만이 하나로 나서서 구해내야하지 않겠는가? 나무아미타불!

안성 도피안사 묘향대에서
松菴至元 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