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스님의 삶과 사상이 재조명되고, 계승 발전되길 바라며”.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이자 원당암 감원, 해인사 유나인 원각 스님의 ‘인사말씀’ 제목처럼, 20년 전 ‘종단개혁의 견인차’ 혜암성관 대선사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고 계승·발전시킬 것을 다짐하는 학술행사가 열렸다.

1994년 개혁 당시 원로의장으로서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의 3선을 묵인한 종회결의 무효와 총무원장 즉각 사퇴, 전국승려대회 소집을 결의했던 조계종 10대 종정 혜암 스님(1920~2001)을 추모하는 첫 학술행사가 혜암선사문화진흥회(회장 성법 스님) 주관으로 4월 16일 오후 2시부터 동국대 중강당에서 개최된 것이다.

1,000여 사부대중이 대거 동참한 이날 학술행사에서는 혜암 선사의 상좌인 여연 스님(강진 백련사 주지)이 ‘혜암 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고, 종호 스님(동국대)이 ‘혜암 선사의 선사상과 수행방법’, 조기룡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가 ‘불교리더십 형성과 하화중생’을 발제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호계원장 일면 스님,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과 성법, 원각, 대오 스님 등 혜암 스님 문도, 원당암 재가선원 수행자와 신도 등이 참석했다.







4월 16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혜암선사 조명 세미나 장면.

여연 스님은 기조발제 ‘가야산의 대쪽, 혜암성관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에서 “21세기는 불교의 시대이지만 한국불교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이는 우리 시대를 책임질 본분종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혜암 스님을 추모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혜암 선사의 유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연 스님은 혜암 스님의 수행을 ▷45년 동안 일종식 ▷오후불식 ▷장좌불와 ▷용맹정진 참선수행으로 정리했다. 출가에서 열반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용맹정진을 했기에 근현대불교에서 대종사 수행력은 모든 출가수행자의 전범이 됐다고도 했다. 여연 스님은 이어 “혜암 스님에게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종단개혁”이라며 “혜암 선사는 수좌로서는 드물게 이사를 겸비한 본분종사였으며, 은둔형 수행자가 아니라 적극적·개혁적인 수행자로서 종단개혁의 깃발을 손수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회고했다.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여연스님.

여연 스님은 이어 “혜암 스님의 올곧음과 개혁성이 오늘의 조계종단을 반석에 올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종단이 누란의 위기에 빠질 때마다 단호한 결정과 실천력으로 종단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해낸 우리시대를 이끌어준 guru(스승·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여연 스님은 특히 종단개혁을 이끈 혜암 선사에 대해 “가야산의 정진불, 가야산 대쪽으로 불렸던 불퇴전의 수행력과 청빈한 계율을 바탕으로 한 대중교화의 길은 그 어느 누구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며 “스승이라도 그르면 따를 수 없다는 배사자립(背師自立)의 정신으로 종단개혁의 선봉에 섰던 대종사의 분골쇄신 역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고 회고했다. 여연 스님은 “그런 대종사의 법행을 옆에서 지켜봤던 해인총림 법전 방장스님께서는 ‘찰나와 영겁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만나게 해주었다’고 추모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종호 스님(동국대 교수)은 혜암 선사를 ‘말·글 아닌 체험 강조한 선지식’이라고 정의했다. 종호 스님은 ‘혜암 선사의 선사상과 수행법’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span>혜암대종사법어집> 내용을 근거로 “혜암 스님의 선사상은 정통 조사선에 입각해 있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직입과 경절의 방법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종호 스님은 “혜암 스님은 (법어에서)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한 중도실상을 밝히면서 무엇보다 실제 체득을 강조했다. 선이 문자 이해나 분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증함에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선사는 법신에 관한 이론과 법신 자체는 다르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종호 스님은 “혜암 스님은 마음이 부처라는 도리를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부처님을 깨닫는 체험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며 “혜암 스님은 돈오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종호 스님은 이어 “혜암 스님은 돈오라는 한 문에 의지해 진여자성을 바로 깨쳐야 진정한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구경각은 무념·무소득이라고 했다”며 “삽삼조사를 비롯해 선종 정맥의 모든 조사가 구경각을 돈오라고 했지 중간 해오를 돈오라고 한 분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혜암선사의 선사상과 수행법을 주제발표하고 있는 동국대 교수 종호스님

종호 스님은 “혜암 선사의 사상은 그야말로 정통 조사선에 입각해 있으며, 방법론에 있어서도 직입과 경절의 방법을 들었다”며 “혜암 선사는 철저히 조사선자의 입장에 있었던 선사”라고 결론지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조기룡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는 ‘혜암 선사의 수행 리더십 형성과 하화중생’에서 혜암선사의 리더십을 수행의 관점에서 규명하고, 그 리더십이 최종적으로 화화중생으로 실천되는 과정을 살폈다.

“혜암 스님은 장좌불와와 일일일식 등 용맹정진하는 수행가풍으로 리더십을 형성했다”고 분석한 조 교수는 “간화선 수행자로서 혜암 스님의 일생은 산문 안에서 순일하게 수행 자체에 정진한 삶과 종단의 누란지위를 구하고자 산문 밖을 나선 삶, 재가불자선원·달마선원을 개원해 재가신도들에게 간화선을 지도한 삶으로 요약된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혜암선사의 초인적 수행력이력을 귀인이론의 관점에서, 이뭣고 참구는 변환적 리더십 이론에서, 종정 직위 자체는 웨버의 ‘권위의 정당성과 일상화된 카리스마에 대한 연구’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조 교수는 “혜암 선사가 산문을 나와 개혁종단을 이끈 것은 적정한처와 시끄러운 곳의 분별없이 일상이 그대로 공부요, 공부가 그대로 일상인 생활선의 실천으로 일체처와 일체시를 막론하고 보리를 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종호 스님의 발제에 대해 논평에 나선 신규탁 교수는 “종호 스님의 발표문은 혜암 선사의 선사상과 수행에 관한 선학자의 손에 의한 첫 보고서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보고서는 법어집 외의 문헌자료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고 내용 대부분이 법어의 상당법어만을 요약정리한 것으로 소위 논문의 형식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한국 근현대불교사를 바라보는 발제자의 입장이 제시되어야 하고, 혜암 선사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서적 내지 인물, 시절인연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하며, 보조지눌에 대한 혜암선사의 비평에 대한 발제자의 견해가 제시되었어야 했다”며 “더 나아가 성철 선사와의 관계, (성철스님과) 해인사라는 동일수행 공간에서 혜암 선사만의 독특한 선 수행이나 사상이 과연 가능했는지, 그랬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규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기룡 교수의 발제에 대해 논평에 나선 미디어붓다 이학종 대표는 “혜암 스님은 94·98년 종단개혁 과정에서 본의든 아니든 서암 종정과 월하 종정 등 두 분의 종정스님을 물러나게 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 점은 혜암 선사 일생에서 아쉬웠던 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며 “이 부분에 대한 논자의 견해는 어떤가?”라고 물었다.

한편 본격적인 주제발표에 앞서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영상 법어를 통해 “혜암 대선사는 종문의 눈 푸른 대종장으로서 일생토록 바른 참선법을 선양하셨다. 후학들은 마땅히 그 유훈을 받드는 데 혼신의 정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94개혁 후 제28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지구촌공생회 회주)도 영상 격려사를 통해 “혜암 스님은 94년 종단개혁 당시에는 원로의장으로서 사부대중을 독려하며 부패한 구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스님의 일생은 정법을 향한 수행과 정법을 현실에 펼치기 위한 실천으로 점철된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해인사 서당 수좌 대원 스님(학림사 오등선원 조실)은 축사에서 “혜암 스님의 깡그리 마른 몸체는 흰 학이 높은 언덕 소나무 위에 외발로 서 있는 것 같고, 사(邪)와 정(正)을 모조리 끊는 위풍은 깎아지른 철벽과도 같았다”고 추모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은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존재한다는 부처님 연기론은 종단의 지난 20년 행적이 오늘의 결과라는 가르침”이라며 “다시 한 번 개혁불사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법구현, 종단의 민주화, 불교의 자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대사회적 역할 증대를 다짐했던 그때의 호소는 오늘도 유효한 의제”라고 축사했다.

이에 앞서 혜암대종사문도회장 성법 스님(혜암선사문화진흥회장)은 개회사에서 “혜암대종사문도회는 ‘혜암선사문화진흥회’라는 단체를 설립해 포교 교육 승가복지 사회복지 장학사업 다문화지원사업 등을 통해 혜암 선사의 숭고한 정신과 얼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발전시켜 가고자 한다”며 “오늘 학술세미나는 스님의 업적과 사상을 학술적으로 체계화해 홍법의 기초로 삼고자 마련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