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중국불교, 일본불교와 한국불교가 다른 점은 어떤 것인가? 도대체 어떤 점을 한국불교만의 특징으로 내세울 것인가?
사실 이에 대해 똑 부러지게 답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불교의 아류, 중국불교의 변방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불교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쉽지 않았고, 별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가리는 것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동아시아 불교에 있어서 한국불교’를 주제로 10월 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3년도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제6차 불교학술대회는 교계의 관심을 모았다. 불광사가 절을 확장해 짓고 주최한 세미나와 일정이 겹쳤지만 중앙승가대 대학원 세미나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발제자의 논문내용은 물론 평자의 토론도 전에 없이 매서웠다. 그만큼 주제 자체가 생소한 시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주제의 세미나를 종립대학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교학계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첫 발제에 나선 학자는 동국대 불교대학 고영섭 교수였다. 불교사를 전공한 고 교수는 ‘한국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주제로 ‘물리적 비빔’과 ‘화학적 달임’이라는 다소 생경한,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프리즘으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갔다.
10월 19일 열린 중앙승가대 대학원이 주최한 불교학술대회에서 고영섭 교수(동국대)가 '한국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인은 곡차와 간장과 된장 등을 발효시켜 내듯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를 받아들인 뒤 이를 점차 발효시켜 나갔다. 그 결과 인도불교의 교학체계와 중국불교의 종학체계의 '물리적 비빔'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인은 탕약과 김치와 고추장을 숙성시켜 내듯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를 받아들인 뒤 이를 점차 숙성시켜 나갔다. 그 결과 인도불교의 공유(空有)체계와 중국불교의 이사(理事)체계의 '화학적 달임'의 상태로 드러났다.”
고 교수는 범주가 너무 방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막연하기 이를데 없는 주제를 갈래치고 큰 줄기 안에서 묶어내는 놀라운 내공을 보여주었다. 고 교수는 ‘인도와 중국불교의 원용과 변용’ 장에서 불교의 중국화에 대한 스케치를 한 후 삼국시대 불교의 수용과정에 대한 관점을 정리했다. 이어 이 논문의 본문격인 제3장 ‘공유와 이사의 종합적 인식’과 제4장 ‘성상과 선교의 통합적 이해’에서는 ‘삼론’ ‘유식법상’ ‘지론 섭론 기신’을 중심으로 승랑과 원측과 원효의 사상을 ‘공유와 이사의 종합적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했다. 또한 ‘법화천태’ ‘화엄’ ‘정토와 선’을 ‘성상과 선교의 통합적 이해’라는 관점에 의해서 하나의 맥락으로 묶는 시도를 보여줬다. 제5장 ‘한국불교의 무종파성과 통불교성’에서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한국불교는 중국불교 및 일본불교와 달리 종파성이 없으며 있어도 매우 엷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의 기질이 대승불교와 잘 어울린다는 견해, 원측과 원효의 예를 들며 한국불교인들은 부분적인 종파성을 지양하고 전체적인 통합성을 선호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국불교사상가들의 이러한 관점은 해당 명제에 대한 논의의 양 극단을 넘어서서 전체를 종합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자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평에 나선 학자는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석길암 교수였다. 석 교수는 ‘한국불교가 종파성이 없다’는 고 교수의 주장에 대해 “이미 8세기 중반이 되면 의상계 화엄종이나 진표계 법상종은 확고한 종파성을 보이고 있고, 고려시대에 각종 교선의 종파가 분립하는 극성기를 보이고 있다”며 “오히려 조선기에 접어들면서 국가정책에 의해 종파가 강제 통합되면서 종파성을 말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근대기에 들어 경허선사에 의해 선종의 전통이 강화되는 것 등으로 볼 수 있다”며 이견을 드러냈다. ‘한국인의 기질 때문인지 대승불교가 최종적으로 남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석 교수는 “중국불교는 5세기 초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승화의 경향을 보이며, 이후의 상황은 중국과 한국을 막론하고 부파불교 혹은 부파불교 사상이 의미성을 가지고 전파된 흔적은 미미하다”며 대승불교가 한국불교만의 특성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석 교수는 이어 “특정 경론을 중심으로 하는 종파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국의 불교사상가 중에 자종(自宗)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통합을 주장하지 않은 사상가가 오히려 드물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석 교수는 또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말해지는 회통성이나 화쟁성은 사실은 불교의 기본적인 지향이자 공통성이라는 점에서 회통·화쟁성을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정의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석길암 교수의 예리한 논평에 대해 고영섭 교수는 특유의 논리로 응수했다.
‘모든 종파는 종합적 지향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고 교수는 “역으로 물어보자. 그렇다면 중국불교의 특징은 뭐냐? 일본불교의 특징은 뭐냐? 그들의 불교는 각론에 충실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진리에는 국경이 없으나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국적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부분을 강조하다보면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국불교에 종파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반론에 대해서도 고 교수는 “종파에 대한 언급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서 제기된 것으로 안다”며 “조계종 하면 선종이기는 하지만 종합성을 갖고 있다. 하나 안에 다른 것이 다 들어 있다. 일즉다, 다즉일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국불교에 비해 종파성이 약하다”고 응수했다.
한국인의 기질로 인해 대승불교만이 남았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 고 교수는 “다소 비약적인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고 교수와 석 교수는 혜균의 <대승사론현의기>에 등장하는 지명 등을 통해 혜균의 국적논란을 놓고서도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고 교수가 ‘혜균이 살았던 8~7세기 전후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혜균은 요서백제인으로 본다“는 주장을 펼친데 대해 석 교수가 “관점의 차이다. 혜균이 요서백제인이라고 했는데, 길장의 연대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는데, 혜균은 길장의 문하가 아니며, 요서백제가 주로 산동성이라고 보면 혜균을 요서백제인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자, 고 교수는 중국의 지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혜균을 요서백제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이른 시일내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겠다”고 맞섰다.
‘물리적 비빔’과 ‘화학적 달임’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불교의 회통성과 화쟁성에 주목한 고영섭 교수의 한국불교의 사상적 특성에 대한 고찰은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체로 성과라로 평가할 수 있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