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도 제위에게 드리는 글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오며,

존경하는 조계종 종도여러분!

조계종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좇아 의롭게 살고자 했던 이들은 비록 일부라 하나 권력의 상층부에서 벌어진, 차마 믿을 수 없는 온갖 추문과 비리, 사건, 사고로 인해 세상에 얼굴을 내놓지 못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돼버린 시국을 한탄합니다. 각목이 난립했던 90년대 종단 사태 때보다 더 혼란스럽고 부패한 상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조계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체성과 가치관 정립에 종종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었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각종 제도는 고루하고 비종교적이란 비판에 직면하곤 하였습니다. 외형은 자못 확대되고 화려해지는 듯 하였지만, 빈약한 내실은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세속 정치논리에 끌려가며 무능과 무기력의 늪에서 허덕였습니다.

잊을 만하며 터져 나오는 고위급의 비리, 종헌과 종법을 망각한 현안의 대처와 편협성은 사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반목과 불화만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불미스런 일일수록 종단 지도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종교집단으로서의 품격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종단의 모든 행위는 종헌과 종법에 의하고, 권한을 위임받은 합법적기구나 인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단지 조직 내에서 그 위상이 인정될만하다는 또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는 이유로 특정 개인에게 종단의 주요 사안에 대한 처결을 위임하거나 앞장서게 한다면, 무법천지가 조성되는 단초를 제공함이니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속언에 “나쁜 놈이 잘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폭력과 습관적으로 범계를 저지르며 약자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무리지어 다니면서 전체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나쁜 놈”이 큰 절의 주지를 하거나 풍족하게 산다는 소식이 들려서는 안 됩니다. “나쁜 놈들”이 잘사는 것은 뉘우침과 죄책감이 없기 때문이며, 피해를 입고 아파하며 억울해 하는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이들이 지도층을 형성한 종교집단이 있다면, 그 종교집단은 필연코 붕괴되고 해체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간혹 사람들은 축재하고자 때로는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이 항상 보이지 않는 심연 저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나쁜 선택을 하면 그 스스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하고 마음의 고통으로 늘 괴로워합니다. 그러하기에 착한 이들은 어지간해서 나쁜 선택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만일 승려가 종단재산을 사유화하고, 편을 갈라 패거리를 지으면서 종단 재정과 인사권을 쥐락펴락하거나 그러한 이들의 수하에서 함께 권력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 영향 아래 놓여 있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승가도 뭣도 아니요, ‘괴물’에 의해 관리되고 지배 받는 이상한 집단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돈과 폭력, 비리를 수반하며 발생했던 온갖 대소 분규의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 종권장악이었습니다. 이 구조를 해체하고 종교인으로서의 무한책임을 각성하여 새로운 의식과 철학으로 한국불교를 힘 있게 앞으로 밀고 나아가고자 주창했던 것이 이른바 ‘자성과 쇄신’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조계종의 자정과 혁신은 끊임없이 답보의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맸습니다.

사회의 지도층이 불교에 등 돌리고 있습니다. 사회에 신뢰와 감동은커녕 믿지 못할 집단이라는 인식만 키워왔습니다. 구세대비는 말 그대로 “구두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달라질까, 하는 희망마저 사라지게 하는 현실입니다.

존경하는 종도여러분!

종단과 범어사가 주최 및 주관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9월 27일 ‘자비구현 인류화합 한반도평화대회’를 끝으로 무탈하게 회향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일 년여 동안 약 15회의 대소행사를 치러온 장정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소납이 처음 이 평화대회의 구체적 안을 범어사에서 설명하였을 당시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회의적인 의견을 내셨습니다. 이후로도 난관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종단은 서로 협력하여 무엇인가 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된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향후 중장기 계획과 후속조치에 따라 성과를 달리할 것이나, 종단 내외의 긍정적 성과가 지대함은 사실이며, 33대 집행부의 성과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대형 행사에 아쉬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가능성의 이면은 쓸쓸하고 허탈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불자와 시민, 승려, 각계 인사가 드넓은 경기장을 채웠으나, 정작 종단 고위층 사이에선 무관심과 외면, 서로를 의식한 반목의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선 청량한 초가을 바람마저도 무겁고 찐득하게 불어옵니다. 거기 어디에 중생의 안락과 평화를 위한 원력이 자리하고 있겠습니까? 정법당간을 세울 힘이 있겠습니까?

자석에 달라붙는 쇳가루처럼, 권력을 향한 제어되지 않는 마음은 필연코 무리수를 불러옵니다. 당연히 이 무리수가 거듭될수록 한국불교의 추락은 가속도가 붙게 될 것입니다.

2. 존경하는 원로의장 스님과 원로의원 대종사님께 건의합니다.

첫째, 조계종은 종헌과 종법, 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으로서의 종교집단입니다. 종헌과 제도의 틀을 벗어난 행위는 제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해도 불법의 행위입니다. 제34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권한과 자격이 없는 승려들이 선거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것은 명백하게 종헌을 위배한 것이며, 종단 질서를 문란케 한 행위입니다.

둘째, 사미의 신분이라 하나 한 출가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총무원청사 지하 조사실로 무참히 끌려가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만큼 폭행을 당했으며, 그 피해상황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강제로 환속제적원에 서명까지 했다고 주장합니다. 설혹, 그 사미가 살인의 죄를 저질렀다 해도 신체에 폭행을 가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생명존중 불살생을 제일 계율로 하는 불교와 그 소속원이 할 행위가 아닙니다.

종도가 잘못을 했으면 종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되고, 사회법을 위배했으며 상응한 조치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종교집단이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으로 징치를 한다면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집단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이며, 사회의 법질서와 인권마저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종단권력의 핵심부에서 일어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종헌종법 질서가 심각할 정도로 붕괴되고 있는 데도 원로스님들의 지속되는 침묵을 소납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권리와 의무에 충실히 할 때 그 조직이 바로 서게 됩니다.

존경하는 원로의장 스님과 원로의원 대종사님!

부디, 오늘의 조계종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십시오!

3. 총무원장 스님께

켜켜이 누적되어 내려온 종단의 문제를 총무원장스님이 다 책임지고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고자 제대로 된 처방을 내려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책무는 있습니다.

그러나 적광사미에 가한 폭력행위에 관한 사안만큼은 총무원장스님이 우선적 현안으로 해결을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집행부 청사에서 종무기관원들에 의해 발생한 일입니다.

기억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건발생 당일 바로 그 시각 즈음하여 우연케도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고, 좋지 않은 예감과 불안, 무언가 사단이 심각하게 전개될 것을 우려하여 즉시 총무원장 스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통화가 되어 “적광스님이 강제로 끌려간 것 같은데 신체에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렸고, 이에 스님께서는 분명히 “알아보겠다”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6주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적광사미에 대한 일련의 폭력사태와 잘못된 처결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처결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늦으나마 조직과 당사자들을 바르게 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누군가 연대 책임을 져야할 일이 있다면 마땅히 연대 책임을 져야만 종단의 미래가 밝다, 할 것입니다.

종단에 법과 엄격한 절차보다 주먹이 난무한다면, 끝내 출가자의 심중에서 자비와 연민의 싹을 지워버린다면, 종단은 마침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최소한의 근거마저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끝으로 종도여러분!

한국불교와 조계종의 아름다운 역사를 더욱 아름답게, 현재를 책임지며 미래의 희망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출가자는 출가자대로 재가자는 재가자대로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고 키워가는 일에 주저하지 맙시다.

상처입고 실망하며 고통스러워하기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매의 눈으로 오늘을 보며, 주체적인 의식과 원력으로 정법당간을 세워나갑시다.

불기2557(2013)년 10월 4일

불교사회정책연구소
法應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