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봉은사 수륙재는 국가제전의 성격보다는 왕실구성원의 천도재 성격이 강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수륙재를 재현할 때는 조선의 대표적인 왕실사찰이었던 봉은사만의 전통과 문화가 반영돼야 한다.”

서울의 대표적 도심사찰 봉은사에서 설행돼온 수륙재의 역사적 전통을 규명하고 이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날에 재현하자는 주장이 탁효정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사진)에 의해 제기됐다.

탁 전임연구원은 8월 14일 강남 봉은사에서 열린 ‘수륙재의 향연’ 학술세미나에서 ‘봉은사의 기원과 수륙재의 설행’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봉은사의 전신 견성암에서부터 조선후기에 이르는 수륙재의 역사를 고찰하고 이 같이 주장했다.

탁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봉은사의 전신인 견성사는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 부인 신씨가 남편의 원당으로 중창한 사찰이다. 광평대군이 죽은 후 견성암을 묘사(墓寺)로 삼은 신씨는 1466년경 견성암을 중창해 견성사를 세웠다.

연산군 즉위 이후 선릉 안에 위치한 견성사를 철폐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당시 대비였던 정현왕후가 견성사를 능역 밖으로 옮겨 마침내 봉은사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탁 전임연구원은 “봉은사는 조선왕조로부터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된 적이 없는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전시기에 걸쳐 국가적인 수륙재를 설행한 능침사찰로 꼽힌다”며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가 봉은사의 전신 견성사에서 발간되는 등 봉은사의 역사와 수륙재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탁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견성사에서 봉은사에 이르기까지 봉은사 수륙재의 형태는 ▲광평대군과 세종, 소헌왕후의 극락왕생과 사부대중의 안녕 기원 ▲선정릉 능침사로써 왕의 천도재와 기신재 설행 ▲순회세자 원당 ▲병자호란 이후 희생자들을 위한 극락왕생 기원 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삼화사나 상원사, 진관사가 새 왕조의 구성원을 규합하기 위한 국가제전의 성격으로 설행한 수륙재와는 성격이 다름을 의미한다. 봉은사 수륙재는 광평대군, 성종, 중종, 순회세자 등 왕실 구성원을 위한 천도재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탁 전임연구원은 “봉은사 수륙재를 오늘에 재현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차이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조선의 대표적인 왕실사찰 봉은사만의 전통과 문화를 재조명해 특색 있는 수륙재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14일 봉은사 보우당에서 열린 '수륙재의 향연' 학술세미나에 참가한 사부대중이 탁효정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한편 한국 수륙재를 현대적으로 복원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조계종 포교원과 봉은사가 주최한 ‘수륙재의 향연’ 학술 세미나에서는 ▲수륙재의 연원과 그 구조적 의미(홍윤식 한국불교민속학회장) ▲수륙재의 콘텐츠 가치와 전망(윤소희 동국대 외래교수) ▲전통문화 수륙재 복원을 위한 고찰(이성운 정우서적 대표)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