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명의 아픔에 공감합시다”
문수 스님 3주기 추모 문화제 현장

뉘엿뉘엿 지는 햇살이 조계사를 둘러싼 고층빌딩 유리창에 반사돼 부서졌다. 조계사 앞마당 허공을 수놓은 수천 개의 오색연등과 흰 영가 등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부산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단상에는 ‘함께 삽시다! 평화의 한반도에서!’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대웅전에서는 다른 세계의 소리인 양 저녁예불을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상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결연하기도, 비통하기도, 슬픈 얼굴이기도 했다. 5월 31일 오후 7시. 생명평화를 염원하며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3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린 서울 조계사의 풍경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와주셨어요. 진짜 실천할 사람들, 끝까지 기억할 사람들이 이 자리에 와주신 것 같습니다. 다들 일당백이시죠?”

추모문화제 대화마당의 사회를 맡은 여성운동가 오한숙희 씨가 말했다. 2010년 7월 문수 스님의 49재를 하루 앞두고 서울광장에 모인 1만여 명의 시민들에 비할 수 없는 인원이기야 했다. 하지만 객석에 자리한 70여 명의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로 화답했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과 최근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을 제작한 전 내원사 산감 지율 스님,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 성원 스님이 대화마당의 이야기 손님으로 등장했다.



문수 스님 3주기를 기념해 열린 추모문화제. 대화마당이 마련된 단상 위로 영가 등(燈)이 불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오한숙희, 도법, 지율, 성원 스님.

먼저 성원 스님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가장 소중한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공양함으로써 중생에게 가르침을 편 것”이라고 정의하고, 문수 스님의 유지를 선양하기 위한 조계종 사회부의 활동방향을 설명했다.

성원 스님에 따르면 첫 번째 문수 스님의 유지인 ‘생명존중’을 위해 조계종 사회부는 환경위원회 활동을 강화하고, 두 번째 ‘정의 실현’을 위해서 결사추진본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마지막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복지활동에 매진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생명평화운동의 대명사인 도법 스님은 “문수 스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려가려면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3년이 지난 오늘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뭘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라는 상을 내려놓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는 도법 스님의 언변에 참가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최근 사대강 사업에 따른 강의 변화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지율 스님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미덕을 강조했다. 내성천의 아픔을 알리고 잊어버린 심성을 돌아보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소개한 지율 스님은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고 보살핀 것처럼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아픔은 나누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교훈 삼을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른 생명의 아픔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자수도자장상연합회 생명환경분과 엘리사벳 수녀는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간 문수 스님을 생각하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생각난다"며 추모사를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님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설핏 고인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이야기 손님으로 나선 스님들의 한결같은 지적처럼 화염 속에 타오르던 문수 스님의 유지대로 이뤄진 것이 없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조촐하게 시작한 문화제도 끝을 향해가고, 어느새 현수막에 걸린 문수 스님의 영정 사진 위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잊히는 것은 죽은 자의 탓이 아니다. 남은 과제는 산 자들의 몫이라는 것. 추모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만큼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도반들 함께한 문수 스님 추모 다례제

한편 같은 날 오전 11시에는 조계사 대웅전에서 문수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다례제가 봉행됐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한 무명용사를 위한 묘비명을 빌어 “문수 스님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면서 “여전히 부정이 횡횡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처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해야겠다”고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중앙승가대학 총동문회장 범해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뭇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소신한 문수 스님을 추모하며 중앙승가대학 동문들은 문수 스님의 뜻을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추모다례제에 참석한 스님들이 문수 스님의 영단 앞에 앉아있다.

다례제에는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법광 스님,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중앙승가대학 총동문회장 범해 스님과 중앙승가대학 동문 스님들을 비롯한 1백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헌화와 헌향을 하며 문수 스님 열반 3주기를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