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사상의학(四象醫學)의 만남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지나 3월 31일 동국대 불교학술원 세미나실에서 ‘인간이해의 새로운 접점을 찾아서’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열렸다.
불교학자와 한의학자, 심리학자 등이 참가한 이날 세미나에서는 불교의학과 사상의학의 통섭 가능성을 고찰하고, 사상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 하듯이 불교 수행법도 일괄적용보다는 인간의 유형, 즉 각자의 근기에 맞춰 다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는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인간유형 연구’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인간은 육체적인 면에서는 그 구성에 차이를 지니지 않으나 정신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된다”며 “특히 이런 부분은 수행자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수행을 진행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31일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불교와 사상의학의 만남 세미나. 이날 세미나에서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대거 발표됐다.
“붓다는 여러 경전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유형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제한 정 교수는 “이러한 연구는 현재 불교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수행법이 수행처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될 것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처럼 인간의 유형을 구분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가르침을 찾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다”고 강조했다.
‘한국불교사와 동양의학사에서 인간론 변용 비교’를 주제로 발표한 박서연 동국대 한의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는 의상과 설잠(김시습)의 인간론을 비교하고 <황제내경>과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고찰했다.
박 교수는 “의상은 불교의 두 인간 유형, 즉 ‘중생’과 ‘부처’에 대한 법성의 현현으로서의 무분별 중도의 관점에서 인간론을 파악했으며, 설잠은 인간에 대한 긍정의 자세로 인간의 유형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의상과 설잠, 두 사람은 ‘중생’과 ‘부처’를 우열의 관점이 아닌 중도의 평등한 존재로 파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어 동양의학사에서의 인간론을 <황제내경>과 <동의수세보원>을 중심으로 살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황제내경>에서는 인간이 자연계와 상호작용한다고 보고 음양의 부조화가 질병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체 장부의 대소를 결정하며, 질병발생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고 박 교수는 밝혔다. 즉 이제마의 인간론은 <황제내경>에 비해 인간의 정신적·내면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불교와 사상의학의 의(醫) 개념’을 천태 지관서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 나타난 치병론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기운 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는 불교와 의학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불교에서 비교적 의학적 주장이 뚜렷한 천태의 의학론과 사상의학을 제창한 이제마의 의학론을 찬찬히 살폈다.
이기운 교수는 “천태는 연기론에 의해 자신의 선악의 업보가 신체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주고, 이제마는 희로애락의 성정이 작용하여 사상의 체질형성에 영향을 주어 오장의 손상을 가져와 사상에 병인이 배태되어 있고, 이는 곧 성인과 중인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한 점에 주목했다. 즉 인체의 형성에 천태와 이제마는 동양의 고유사상인 음양오행설이 장부의 형성에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체 병인의 형성에서 보면 불교에서는 사대 부조화, 음식 조절 실패, 업보, 좌선불순, 귀신이나 마(魔)라는 내적 변화와 외적 변화의 구체성이 있지만, 심리적 변화에는 다소 미흡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제마는 희로애락의 심정의 변화가 어떻게 장부의 병인에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양가(兩家)의 의학론을 잘 융섭함으로써 인간 병인의 예방과 치유에 어떤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이어 ‘종밀의 원인론(原人論)과 동무 이제마의 원인(原人)편에 나타난 인간론’을 고찰한 박성식 교수(동국대 분당병원 사상체질과)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기존의 한의학과는 다르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의학적인 견해와 소통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성식 교수는 “종밀은 불교를, 이제마는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으나, 사유구조에서는 유사성이 있다”며 “개체의 특성과 경향성을 주장하는 사상체질과 불교는 소통될 여지가 있으며 이제마는 장수를 추구하는 방법이나 병적 치유와 같은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불교의 수양법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와 사상의학은 소통의 접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불·도(儒佛道) 사상의 심신치유적 적용을 위한 심(心)의 연구’라는 제목의 주제를 발표한 김근우 교수(동국대 분당병원 신경정신과)는 “신체질환 중심의 서양의학에 비교해 한의학, 불교학, 사상의학에서 가장 공통된 분모”라며,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한 논점이 동양 의학의 핵심이며 여기에는 심(心)이 있다는 점을 집중 분석했다.
김근우 교수는 또 “초기불교와 유식사상, 유학, 그리고 도가사상의 원류가 된 <황제내경>은 불교의학, 사상의학, 한의학에서의 심(心)에 대한 기초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이필원 교수(동국대 한의학연구소 연구초빙)는 ‘사대요소설과 명상수행, 그리고 수행의 효과’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맛지마니까야 제62편인 ‘라훌라에 대한 커다란 훈계의 경’(이하 MR-s)에서 초기불교에서의 인체에 대한 분석, 관찰과 다양한 명상주제를 고찰했다.
이필원 교수는 “MR-s는 바른 수행이란 육체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제어하고 분별심을 가능한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