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비구니 원로 묘엄당 세주 명사의 영결식 및 다비식이 12월 6일 경기 수원 광교산 봉녕사에서 3천여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엄수됐다.
진명스님(조계종 문화부장)의 스님의 사회로 명종(5타)과 함께 시작된 이날 영결식은 묘엄 스님의 덕화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대중의 안타까움 속에 시종 여법하게 진행됐다.
묘엄당 세주 명사 스님의 다비식이 봉녕사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조계종 제공
영결식 전경. 3천여 사부대중이 묘엄 명사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지난 12월 2일 생의 끈을 놓는 순간까지도 후학을 위해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며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는 임종게를 머리에 되새기며 영결식에 동참한 대중들은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봤다.
조계종 어산 원명 스님의 영결법요에 이어 성일 스님(화성 신흥사 주지)은 묘엄 스님의 행장을 “세속의 때를 벗고 승가의 가풍을 익히느라 수행의 향기가 가득한 도량, 소중한 스승이 계셔서 더욱 청정한 도량, 광교산 봉녕사 승가대학의 학장이자 금강율원의 율주로서 후학 양성에 전념해 오셨던 대강백이자 청정율사”라고 찬탄했다.
추도입정에 이어 묘엄 명사의 생전 영상법문이 장내에 상영되자 참석 대중들은 더 이상 스님의 고구정녕한 법문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듯 깊은 슬픔에 잠겼다.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이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신 이 장엄한 봉녕사 도량에서, 저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스님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며 “그러나 스님! 도제양성과 지계청정, 그리고 중생제도의 서원을 잊지 마시고, 학처럼 높은 기상과 우아한 자태로 속히 돌아와 달라”고 애절한 추모의 뜻을 전했다.
다비장으로 향하는 만장 행렬.
조계종 종정 법전 대종사는 원로의원 진제 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이제 근진(根塵)을 벗어났으니 가는 곳 마다 원통자재(圓通自在)하셨던 그 주인옹(主人翁)으로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소식(消息)을 일기일경(一機一境)으로 한 번 나투시라”고 말했다.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조계종 전계대화상 고산 스님의 추도사가 있었고, 현응 스님(교육원장), 정호 스님(용주사 주지), 명성 스님(운문사 승가대학장), 지형 스님(청암사 승가대학·율원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본각 스님(작사) 강영화(작곡)의 조가를 니르바나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봉녕사 우담화 합창단이 부르는 가운데,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대표의 헌화와 문도대표의 인사말로 영결식은 마무리 됐다.
영결식 직후 연꽃 상여로 장식된 스님의 법구는 대불광전에서 마지막 3배를 올린 뒤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마지막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새끼줄과 장작더미로 마련된 연화대에 법구가 들어가자 도열해있던 문도스님들과 불자들은 일제히 “큰스님”을 외치며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꼈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거화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거화봉에 불이 붙여지고 거화와 함께 “큰스님 불들어갑니다” 합창과 함께 연화대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올랐다. 조계종단의 산증인이자 한국불교의 큰어른이었던 세주당 묘엄(世主堂 妙嚴) 명사는 이렇게 사바세계와 작별을 고했다.
한편 봉녕사는 묘엄 스님의 사리를 고유한 승가 전통에 따라 별도로 수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님의 7*7재는 8일 초재를 시작으로 15일, 22일, 29일, 1월 5일, 12일, 19일 봉녕사에서 봉행된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법어와 영결사, 추도사, 조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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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語(종정 법전 대종사)
겨울 삭풍이 하루 종일 뜰 앞을 지나가더니/ 자연自然은 본체를 드러내어 회귀回歸의 문을 열고/ 하늘에 별들이 빛을 거두어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지난밤에는 무서리가 뜰 앞에 내렸습니다.
이 세상世上에 생멸生滅의 거듭함을 피하고 무너지고 소멸消滅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사明師의 입적入寂은 본처本處로 환귀還歸함이요, 본분本分의 참모습을 나툰 것입니다.
그러나 명사明師가 이룩한 적멸寂滅속에는 생사生死를 따르지 않고 오고 감이 없는 일점영명一點靈明이 있습니다./ 이 일점영명一點靈明은 중생衆生과 부처의 근본根本이요, 명사明師의 본분本分입니다.
일점영명一點靈明이 인연因緣 따라 형상形象을 의지하면 묘엄명사妙嚴明師요/ 견문각지見聞覺知를 거두면 공적空寂하고 응연凝然할 뿐입니다.
이렇게 소소昭昭하고 영명靈明한 이 자리에 누가 생사生死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명사明師는 적멸寂滅을 통通해 해탈解脫의 자유自由를 얻어 임운자재任運自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안락安樂을 누리니 얼마나 즐거우시고/ 태어남의 고통도 소멸消滅의 슬픔도 없이 오고감이 없는 적정寂靜을 누리시니 얼마나 평화平和스럽습니까.
이제 근진根塵을 벗어났으니 가는 곳 마다 원통자재圓通自在 하셨던 그 주인옹主人翁으로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소식消息을 일기일경一機一境으로 한 번 나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격외시적格外示跡을 한 번 보이십시오.
이 가운데 명사明師의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원음圓音이 있으니 이 자리에 모인 대중大衆은 듣고 있는가? 창천蒼天, 창천蒼天이도다.
永 訣 辭(전국비구니회 회장 명우 스님)
먼저 비구니 원로 세주당 묘엄 명사 각령 전에 분향 삼배 올립니다.
스님! 스님! 정말 이대로 정녕 뿌리치고 가시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세연이 다하여 떠나시던 날, 스님께서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한국 불교계에는 큰 별이 하나 떨어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10대 천진한 동진으로 출가하신 이래, 계율은 자운큰스님, 참선은 성철큰스님, 경전은 운허큰스님을 스승으로 하여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경봉큰스님과 운허큰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아 백파긍선, 석전 박한영스님의 강맥을 이어서 경·율·론 삼장을 터득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불교 정화 이후에는 처음으로 비구니스님에게 강석을 열고, 1974년에는 봉녕사에서 강원을 개원하셨으며, 입적하시기 며칠 전까지도 강을 놓지 않으시고, 고구정녕 후학에게 일러주시던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편 한국 불교계에 처음으로 시행된 단일계단의 비구니 전계사 니화상을 역임하시고, 비구니의 위상을 크게 높이셨을 때, 고고하셨던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앞에 선합니다.
몇 해 전 행사장에서 뵈었을 때, 스님께서 키우신 강사스님들을 앞세우시며, "이제는 이 스님들이 주불이야, 나는 이제 후불탱화 할 거야!" 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박혀 마구 가슴을 울립니다.
이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신 이 장엄한 봉녕사 도량에서, 저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스님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님 ! 도제양성과 지계청정, 그리고 중생제도의 서원을 잊지 마시고, 학처럼 높은 기상과 우아한 자태로 속히 돌아오소서!
추도사(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세주(世主)당 묘엄 명사님!
우리 종단 비구니 스님들의 자애로운 어머니이신 스님께서 이렇게 원적에 드시니 동짓달은 바람이 더욱 차고, 밤은 더욱 길기만 합니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이 모든 세간을 맡은 이[世主]들이 저마다 환희한 마음을 내어, 헤아릴 수 없는 공양거리로 모든 세계해(世界海)를 미묘하게 장엄(妙嚴)하니, 중생들에게 대광명의 빛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법은 이 모든 세간을 장엄하는 수많은 성중(聖衆)들 즉, 세주들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는 말이니, 묘엄스님께서는 이름 그대로 세간의 주인들을 길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이 세계를 미묘하게 장엄하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묘엄 명사님!
일찍이 청담스님을 인연으로 탁태하심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숙세의 서원이요, 성철스님을 스승으로 수법하심은 의단(疑團)을 일으켜 근본 무명을 타파하기 위함이었으니 어찌 다겁생의 인연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또한 스님의 일생은 비구니 승가를 바로 세우기 위한 원력의 실천이었기에 엄격한 수행자의 표상으로 충분하였음에도, 도심견고(道心堅固)하여 수요견성(須要見性)을 위한 구도행을 멈추지 않았으니, 주석한 곳곳은 명실 공히 승가교육의 요람이 아닐 수 없으며, 오늘날 우리 종문의 수많은 비구니를 길러내신 진정으로 이 세간을 맡으신 분[世主]이며, 수행과 교육으로 불회상을 장엄하신 이 시대의 ‘대애도 고타미(大愛道 瞿曇彌)’이십니다.
세주당 묘엄 명사님!
80평생 스님께서 얻으신 최고의 영예는 너무도 많지만, 가장 큰 족적은 바로 이 땅에 비구니 승가를 올바로 세우신 것이라 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고 가르침을 남겨주신 진정 우리들의 사표이며 생사에 자재하셨던 선지식이십니다.
스님께서 떠나시니 스님께서 일구신 이 대가람은 적막하고 가르침으로 빛나던 이곳 광교산(光敎山)은 자연의 빛마저 흔들리며 애상에 잠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력 여의지 않았으니 스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대웅전 앞 800년 향나무는 스님의 향훈을 잊지 않고 기뻐하며 맞을 것입니다. 하루빨리 우리 곁에 다시 오셔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주옵소서.
추모사(전계화상 고산 스님)
비구니 전계화상이신 묘엄스님!
삭풍이 부는 초동에 신선한 도량에서 스님께서 사바 인연 마치고 홀연히 세연을 거두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청정한 모습으로 구족계 계단에서 비구니 전계 니화상으로 출가자들에게 지계청정을 보이셨는데... 이렇게 원적에 드셨으니 참으로 제행이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스님께서는 부친이셨던 청담조사를 따라 출가하여 삼장을 두루 섭렵하셨고, 이부승 단일계단이 정형화되면서부터 비구니 승가의 교수사로서 또 계단의 일인자로 살아 오셨습니다.
또한 이계위사以戒爲師의 부처님의 유훈을 받들어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을 개원함으로써, 지계정신이 점점 엷어져 가는 이 시대에 한국 승가의 수행 풍토 진작을 위해 새로운 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계율정신의 연구와 실천을 위해 제자들에게 그 신심과 원력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율장정신의 회복과 전승, 그리고 한국 승가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고무적인 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전적을 찾아 볼 수 없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60여 성상의 아낌 없으셨던 그 원력은 수많은 출가자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스님께서 평생 교육도량으로 일구신 이곳 봉녕사에서 스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모여 법향을 피워가며 스님을 애도 합니다.
속환사바하셔서 광도중생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사(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세주당 묘엄 명사스님!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초겨울의 차가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오늘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봉녕사 도량에는 조계종 원로비구니이신 세주당 묘엄 명사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는 사부대중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묘엄 명사스님의 영결법회 자리에서 스님께서 이룩하신 승가교육의 업적을 기리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머물다 가신 사바세계의 한 평생 인연은 격동의 20세기 한국역사와 함께 한 세월이었으며, 특히 한국불교는 세계불교사에서 유래가 없는 승단 자율적인 단일교단을 이룩하여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1700년 이래 가장 큰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습니다.
묘엄 명사스님께서는 이러한 종단의 불교중흥의 현장에서 비구니스님들을 지도하는 교육자로서 평생을 헌신적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959년 동학사 비구니강원에서 강의를 시작한 시절부터 운문사 초대강주를 거쳐 이곳 광교산 봉녕사 도량에서 승가대학과 율학승가대학원을 설립하여 불법을 펼치고, 비구니 스님들을 위해 교육불사에 매진해 오셨던 오늘까지 반 세기 세월인 50년이 넘는 기간을 오로지 비구니스님들을 위한 승가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으며 종단발전과 불교중흥에 이바지해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종단은 21세기를 맞아 자성과 쇄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불교중흥을 대대적으로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승단 구성원의 절반에 이르는 비구니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묘엄 명사스님께서 평생토록 노력하셨던 비구니스님들에 대한 교육불사는 오늘날 비구니스님들이 현대사회에 필요한 온갖 전법교화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낼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대중들에게 자비로우신 귀의처이셨고 전국의 비구니스님들에게는 존경받는 최고의 어른이셨던 세주당 묘엄 명사스님!
이제 스님께서 이곳 광교산 봉녕사 도량에 주석하시며 불자대중을 향해 펼치셨던 자애로운 가르침과 비구니교육에 쏟았던 원력과 정성은 비구니승가와 우리 종단이 계속 이어나가 더욱 발전시킬 것입니다.
승가교육을 통해 불교중흥과 종단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스님의 업적에 대해 한국의 불교계와 종단은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스님의 영결법단에 향을 사루며 극락왕생을 빕니다.
조사(용주사 주지 정호 스님)
세주 묘엄 큰스님 !
오늘 이렇게 스님의 영전에 조사를 드리게 되니 어느 누구도 생사의 고리에서 비껴가지 못한다는 무상의 법리가 너무나 실감으로 다가옵니다.
금년 들어 우리 제2교구에서는 정락 율주스님을 정월에 보내었고, 또 정무 원로스님도 원적에 드시어 49재를 바로 동안거 결제직전에 지냈는데, 정무스님 열반 때에도 직접 문상까지 오셨던 스님을 이렇게 또 보내게 되었습니다.
세주 묘엄 학장스님 !
제가 스님을 뵈온 것은 용주사 주지 소임을 맡고 난 후 여러 행사를 통해서였습니다만, 스님을 뵈올 때마다 스님이야말로 우리 시대 출가사문의 표본이고 우리 제2교구 본사의 자랑이며 우리 불교의 자랑이라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단아하고 고우시면서, 항상 흐트러짐이 없는 정돈된 모습과 조용하시면서도 또박또박 분명하게 하시는 말씀, 그런 가운데에도 늘 깨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자애로우시며 기품이 있는 자태 등은 우리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또한 너무나 잘 가꾸어 놓은 봉녕사 도량을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스님 모습과 닮아 있는지, 일과 사람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새롭게 체감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또 지난 번 병원으로 문병 갔을 때 뵌 모습과 2011년 제3차 사찰문화 대향연 회향식 때 바로 옆에 앉아서 뵌 모습이 평소에 뵐 때의 모습 그대로여서 아직은 한동안 잘 계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스님과 영결을 하게 되었아오니, 어차피 누구든지 인연이 다하면 이승과 작별을 하게 되어 있지만, 유독 스님께서만은 좀 더 오래 계시면서 불법 인연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 가시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너무나 큽니다.
세주 묘엄 큰스님 !
부디 남아 있는 후인들의 염원을 받으시고 속히 사바로 다시 오시어 부처님 말씀을 깨우치시고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을 우리와 함께 하시옵기를 기원하옵니다.
조사(운문사승가대학장 명성 스님)
평생 수하던 가사자락에 향기만 남기고 홀연히 世緣을 거두어 諸行無常을 보이신 世主堂 妙嚴 明師 스님! 솔가지에 걸린 달빛 차가운데 옛 둥지에 천년의 학은 보이지 않는 이 큰 슬픔을 달래고 스님을 흠모하는 향을 올립니다.
스님께서는 80여 년을 사바에 머무시면서 비구니 수행과 교육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비구니 明師로서, 봉녕사 승가대학 學長으로서 한국 비구니 교단과 교육계를 이끌었으며 비구니 傳戒和尙으로서 후학들에게 淸淨修行의 表象이셨습니다. 스님은 敎의 바다에서는 지혜의 돛대요, 禪林에서는 무명을 깨우치는 목탁이셨습니다. 그런데 無言의 本分만 보이시니 비구니계의 큰 별이 떨어진 것입니다.
통도사 보타암과 진주 도솔암에서 耘虛스님께 경학을 배우던 도반스님, 함께 동고동락하였던 과거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항상 부드러운 유머와 자애로움으로 주위를 편안케 해주셨던 스님은 노모를 봉양함에도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語黙과 動靜이 항상 법다웠던 스님을 그리워하는 눈물은 나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雲去雲來天本靜이요 花開花落樹常閑이라
구름이 떠다니지만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이 피었다 지지만 나무는 항상 한가하다는 말이 있듯이 스님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묘엄스님!
오늘 모인 저 많은 사부대중의 흐느낌을 저버리지 마시고 속히 사바에 돌아오시어 在在處處에서 迷惑한 중생을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조사(청암사승가대학 율원장 의정지형 스님)
스님! 스님께서는 한국불교의 대덕스님들께 가르침을 전수받으시고, 봉녕사 승가대학과 율원을 세워 후학 양성의 도량을 가꾸신 한국 비구니계의 주춧돌이셨습니다. 또한 50여 년간의 깊은 학문과 실천수행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존경을 받은 분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다운 스승 한 분을 잃었습니다.
<화엄경> ‘십회향품’에서는 ‘여러 불자들이여, 보살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서원이 법계에 충만하여,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한다.’ 라고 설하십니다. 스님께서도 한평생 지극한 서원으로 배우고 수행하셨으며 또한 당신의 모든 것을 오직 중생을 위해 회향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얼마 전 병석에 계시던 스님을 찾아가 뵈었을 때, 이미 20여 년 전 열반하신 저의 노스님(安光毫스님) 말씀을 하시며 “나는 너의 노스님이 참 좋더라. 항상 걸림없이 쾌활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구나!”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한데, 위독하시다는 연락과 곧 원적에 드셨다는 말씀은 너무나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눈앞에서 빛나는 보석이 깊은 물속에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보는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이 점점 멀어져감을 보는 안타까움이 저희가 스님을 떠나보내는 마음보다 더하겠습니까? 스님은 저희들에게 구도의 길을 보여주신 참다운 수행자요, 중생에게 법향을 전하는 자비로운 대보살이셨습니다.
스님께서 남기신 ‘자기를 단속해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는 유훈을 가슴에 새기며 이제 맑은 향 한 가지를 사루고자 합니다.
스님! 스님의 말씀을 따르고 배워가는 이 후학들을 어이 두고 가십니까? 하루 속히 다시 오셔서 드넓은 강석을 펼쳐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