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치마불교’란 주제어가 강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폐기처분해버려도 좋은 ‘치마불교’가 창립기념 학술토론회에 주제가 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그 말은 이 사회에서 어떤 힘을 가지고 누군가를 핍박한다는 말인가 싶어 흥미가 발동했다. 조은수 소장의 제안에 따라 두서가 없지만 토론회에 참석한 소감을 적어보았다.

좀 늦게 도착한 바람에 첫 번째 발표자 조승미(서강대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박사의 ‘치마는 없다; 젠더화된 기복신앙과 한국불교가족주의 비판’을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주의라는 개념으로 여성의 신앙행태와 나아가 한국불교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시도는 흥미로웠다. 가족은 소중하지만 가족주의는 옆과 밖을 살피지 못하는 높은 장막을 자신에게 쌓아 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니 진지하게 살펴야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라 받아들였다.

두 번째 발표자 명법(조계종 교수 아사리)스님의 ‘여성불교의 관점에서 본 기복불교’는 기복불교를 비판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살피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기복불교의 주 계층인 여성불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처럼 기복불교 비판 담론은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남성들의 불교와 기복 중심의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여성불교를 구별하고, 근대적 남성의 종교성을 주체화시키기 위하여 전통적인 여성의 신행을 타자화하였”으며, 모든 종교현상의 기본양상이라 할 수 있는 ‘복을 비는 행위’인 ‘기복’에 대한 정의를 살피고, 여성들이 불교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하여 신행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순서였다.

세 번째 발표자인 한주영(불교여성개발원) 사무처장은 ‘치마불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라는 제목 아래 뚜렷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불자들에 대한 현황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실은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불자들 가운데 여성들이 상당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의 제목 자체가 ‘치마불교, 무엇이 문제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는 주목할 만하다. 여성들의 신행활동에 문제는 없으며, 그것을 ‘치마불교’라는 용어로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지운 스님(조계종 단일계단위원 및 교수사)과 일미 스님(미국 듀크대 종교학과 교수), 그리고 고려대학교 학생인 이윤선씨의 발언도 각각의 입장에서 여성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운스님은 명법스님의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천수다라니의 염송과 기도는 그 속에 예배, 찬탄, 발원, 참회, 주력, 칭명 등 모든 수행법이 집대성되어 있기 때문에 불교수행으로 이해될 수 있다”(25쪽)는 주장에 대하여 “신앙과 신심은 다르며, 수행과 기도는 다르다. 기도는 절대로 수행이 될 수 없다. 참회도 수행이 아니다”고 지적하였다.

이 지적을 듣고, 그리고 스님의 계속되는 발언을 듣고 몇 가지 문제점을 정리해보았다.

21세기 페미니즘 시대 여성 신행 재조명 세미나 장면.

첫째, 수행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 재가여성불자의 ‘바른’ 신행생활(기복이 그토록 수준이 낮다면)을 위해서라도 스님들의 용어 정리가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과 신심이 다르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하는 말인지? 앙굿따라니까야를 읽어보면 “믿음, 제부끄러움(慙), 남부끄러움(愧), 정진, 지혜의 다섯 가지 법은 수행자에게 아주 유익한 법”이라는 구절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으며, 이때 ‘믿음’은 여래에게 열 가지 명호가 있음을 알고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믿음은 신앙일까, 신심일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신앙과 신심에 금을 긋는 것인지, 객관적이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지운스님의 주장은 학술토론회 자리에서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기도와 수행의 범주 문제이다. 대부분의 여성불자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배우자와 자식들,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제 그들은 기도를 달리하거나, 자원봉사, 사경, 염불, 참선, 다라니염송, 경전공부 등등의 다양한 신앙생활로 나아간다. 자기만을 위한 기도에서 이제는 그 틀을 깨고 폭넓게 자신을 통찰하는, 소위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수행, 수행기도니 하는 말도 쉽게 쓰인다. 일선에서 수많은 스님들은 그것을 '수행'이라고 규정하고 불자들을 그리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것도 수행이 아니고, 저것도 수행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결국 이 여성불자들의 신행은 여전히 낮은 단계인 ‘기복’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여성불자들의 그와 같은 신앙생활이 사찰의 스님들의 안내와 인도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스님들의 용어 통일, 개념정립이 확고하게 서야 재가여성불자의 삶도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신행’과 ‘수행’도 다르다고 한다. 재가자는 수행이 아니라 신행이라고 하는 분들도 자주 만난다. 믿음이 그토록 단계가 낮단 말인지…. 이처럼 수행과 기도, 수행과 신행, 믿음의 단계, 신앙과 신심 등등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정의가 먼저 내려지지 않으면 재가불자들 특히 여성불자들은 무얼 하더라도 ‘치마불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기복과 작복으로 가르는 것도 의아하다. 둘 다 행복을 바라는 것일진대 누가 어떤 근거로 이런 것은 ‘기복(祈福)’이고, 저런 것은 ‘작복(作福)’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일까? 혹시라도 이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공짜로 행복을 바라는 불자들은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네들은 스님이 “이렇게 저렇게 기도하시오”라는 인도를 받고 그러면 그게 최선인 줄 알고 절에 나와서 기도했을 뿐이고, 기도 덕분인지 바라던 일이 잘 이루어지면 그들은 절에 시주를 한다. 그네들은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회향하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스님이 좋은 곳에 써주세요"라며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물을 임시로 맡은 스님들이 어떻게 회향하느냐에 따라 저들의 행위가 '(수준 낮은) 기복'에서 '(바람직한) 작복'이 된다는 말이다.

절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뒤늦게야 한글을 배워서 경전을 직접 읽게 되었다고 기쁨에 겨워하는 보살을 만날 수 있고, 평생 자식과 가족을 위한 기도만 할 줄 알았는데 이제야 내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머리가 하얀 노보살님을 자주 만난다. 대체 누가 이들의 신앙행위를 ‘기복’이었고, ‘수행’은 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결국 ‘치마불교’의 문제는 여성들의 신심과 신행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나아가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회향하지 못한 쪽에 있는 것이 아닐까?

셋째, 지운스님은 나아가 ‘팔경계’를 언급하실 때, 마하파자파티에게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여인에게는 84가지 번뇌가 있다는 <대애도비구니경>을 말씀하셨다. 깜짝 놀랐다. 4아함과 5부 니까야조차도 부처님의 원음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믿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대애도비구니경>은 팔리본이나 산스크리트어본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고, 심지어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사람조차 명기되어 있지 않은 경이다. 마하파자파티의 출가 당시의 모습은 아함경 등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므로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 경의 끝부분에 84가지 여인의 자태를 설명하는 부분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 84가지 자태란 다름이 아니라 웃음을 머금는다거나 몸을 장식한다거나 남자가 보고 싶을 때 한 번 더 본다거나 다닐 때 머리와 몸을 살랑살랑 흔든다거나 빌려간 것은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이를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저는 잘났다고 한다거나 독약을 사람에게 먹이게 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낙태를 하게 한다거나 등등의 자태를 지니고 있어 깨달음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남자에게는 없는가? 남자는 보고 싶은 여성을 한 번 더 보려고 고개를 든 적이 없는가? 남자는 남을 헐뜯고 자기를 높인 적이 없는가? 독약을 남에게 먹인 사람은 여자가 많을까, 남자가 많을까? 이런 비교는 우습기까지 하다.

그런데 지운스님께서 학술토론회 자리에서 이 84가지 번뇌를 언급하신 것은 대체 그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여자는 가볍다”라고 언급하셨는데, 그렇다면 남자는 무거운가? 어떤 남자는 신중하고 어떤 남자는 경망스럽다. 그와 똑같이 어떤 여자는 경망스럽지만 어떤 여자는 신중하기 짝이 없거늘, 여성불자들의 신행생활을 살피며 자긍심을 갖고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하는 자리에서 굳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조금도 알려지지 않은 경을 언급하며 마치 여자는 당연히 그렇다는 뉘앙스를 둔 것에 매우 가슴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이따금 불교계의 토론회에서 "본래 그 뜻은 이렇다. 그렇게 보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발언들이 종종 들린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본래적으로 그 뜻을 적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본래 문제 없다"라는 생각이 문제라는 것.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는지, 그게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못하면 토론회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다. 아닌가.

토론회를 지켜보고 ‘자유발언’을 한 나로서는 뜻하지 않게 분위기를 감정적으로 몰아가는 악역을 맡고 말았다. 하지만 그 자리를 통해 여성뿐 만이 아닌 재가불자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모두 쏟아졌다고 본다. 또한 여성불자들의 신행을 언급한다는 것은 출재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무엇보다 재가불자들을 이끄는 스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토론자 중 한분이셨던 일미스님의 말씀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신행생활에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얼마나 중요한가. 모쪼록 불교여성연구소가 한 걸음 한 걸음 단정하고 단단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미령/ 책칼럼리스트, 불교여성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