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이같은 유시는 그동안 이른바 아쇼카 선언이 초안 발표 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 되는 등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교계 전반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사추진본부가 쫓기듯 성급하게 추진해온데 대한 강력한 제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어를 내리고 있는 조계종 종정 법전 대종사. 미디어붓다 자료사진

아쇼카 선언은 그동안 교계 일부 언론을 비롯해 인터넷 상의 다수의 재가불자 등으로부터 불교의 근간을 훼손하는 열린 진리관, 사실상 전법포기 선언으로 해석되는 전법에 대한 왜곡된 정의 등으로 인해 거센 비판과 반발에 부딪혀 왔다.

그러나 결사추진본부는 형식적인 대중공사와 교구본사주지회의나 원로회의 등 종헌상의 기구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아쇼카 선언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지 추인을 받는 형식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여왔다.

종정 법전 스님의 수정 및 발표 연기 유시는 이같은 결사추진본부와 조계종 집행부의 행보에 대한 교계 전반의 우려와 함께 아쇼카 선언문의 내용의 문제, 그리고 절차상의 문제 등을 고려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종정 법전 스님의 유시에 따라 그동안 결사추진본부가 추진해온 아쇼카 선언은 사실상 폐기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종정 법전 스님의 유시는 종교평화선언의 취지에 한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을 뿐, 그 내용이나 절차 등에 대해서는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법전 스님의 유시와 관련 결사추진본부는 25일 저녁 ‘종교평화선언 관련 종정예하의 뜻을 받들며’라는 발표문을 통해 29일 예정된 발표식 행사를 부득이 연기한다고 밝혔다.

결사추진본부는 본부장 도법 스님 명의의 발표문에서 “오늘(25일) 종정예하께서 종교평화선언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주셨다. 종정예하께서는 종교평화 선언의 취지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해주셨다”며 “그러나 더 널리 의견을 구하고 발표 시기도 검토하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으셨다. 이에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는 종정예하의 뜻을 최대한 받들어 진행할 것이다. 29일 예정된 발표식 행사는 부득이 연기하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결사추진본부는 또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내부 절차를 거쳐 알려드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결사추진본부는 그러나 종정 법전 스님의 유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유시내용을 감추는 것은 소통을 강조하는 조계종 33대 집행부의 ‘소총무원’ 답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계 일부 언론에 ‘종정 법전스님 유시’가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사추진본부가 유시 내용을 떳떳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공연한 오해와 불필요한 추측만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며 밝힌 종정 법전 스님의 유시 내용은 “종정으로서 불조혜명과 종지를 지키는 것이 나의 본분사다. 아쇼카선언의 취지는 긍정한다. 만인이 공감하는 선언의 내용을 위해 부득이 지적한다. 서두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할 수 있다. 대중의 공의가 충분치 않다. 좀 더 지혜와 공의를 모아 새로운 어른이 새롭게 완성해서 더욱 빛나도록 하라”이다.

이 보도가 종정유시 내용과 일치할 경우, 종정 스님은 사실상 결사추진본부의 아쇼카 선언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거부 이유를 현재의 아쇼카 선언을 거부하지 않을 경우 종정으로서 불조 혜명과 종지를 지켜야 하는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다고 단호히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평화를 추진하겠다는 취지에는 긍정하지만, 현재의 선언문은 만인이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므로 부득이 지적한다는 내용, 서두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언급, 대중의 공의가 충분하지 않으니 좀 더 지혜와 공의를 모으라는 지적, 그리고 종교평화선언문을 새로운 어른이 새롭게 완성해서 더욱 빛나게 하라는 것은 지금 종교평화선언문을 추진해온 인물들을 바꿔서 추진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종정 법전 스님의 유시가 상상보다 단호하고, 사실상 이를 추진해온 결사추진본부에 대한 불인정으로 얼마든지 해석될 수 있음에 따라 곧이어 결사추진본부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 일을 앞장서 추진해온 책임 있는 결사추진본부 핵심 관계자의 경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종정 스님의 유시를 받들어 새로운 선언문을 작성할 학자나 불교전문가들의 전면적인 교체 여론도 뒤따를 전망이다.

한편 결사추진본부가 작성한 아쇼카 선언이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종교평화 선언문 발표를 함께 하자고 조계종에 요청했던 천태, 진각종 등 주요 종단들의 사려 깊지 못한 ‘묻어가기’ 행보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