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조 이후 오가칠종의 종파선만으로 선종을 보려는 조계종 선류들의 눈은 법통적 시각에 가려 반야선사를 보지 못한다. 사물은 아는 만큼 보일 뿐 아니라 아는 만큼 가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만이라 생각한 법통의 절대성을 놓아버릴 때 불심인(佛心印)을 전한 무수한 선사와 조사, 티끌수의 선지식을 만날 수 있으며 인도불교의 높은 존자 아비달마 논사들을 만날 것이며, 마하카샤파를 넘어 아라한을 이룬 붇다 당시 현전상가의 현성들을 친견할 것이다.”
‘조계종지의 현대적 구현’을 주제로 지난 11월 23일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언회가 주최한 11월 불교중흥대토론회에서 학담 스님(대승사 주지)이 ‘조계종의 연기론적 해체와 건설’이라는 제목의 기조발제를 통해 조계종의 종명이 갖는 한계와 종지종통에 대한 융회적 포괄적 입장을 갖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금처럼 닫힌 자세로는 천년 명산대찰의 주인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며, 미래사회 문명사의 조류를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따끔한 질책이었다.

11월 23일 열린 조계종 불교중흥대토론회 장면.
학담 스님은 “중국불교의 법통주의, 종파불교, 중국화된 수행론의 긍정성은 긍정하되, 그 안에 붙어 있는 그 비연기론적 실체주의, 관념적 신비주의, 교조주의를 철저히 비판함으로써만 철저히 오교양종이 회통되어 내려온 전통승단의 실천적 가치들을 총화하여 새롭게 반야와 보디에 회향하고, 시대의 요구를 따라 중생과 역사에 회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담 스님은 이어 “불법이라는 이름 밑에 우리 스스로 붇다의 법에 붙은 바깥길(불법외도)을 걷고 있지는 않는가. 최상승의 이름 밑에 우리 스스로 히나야나(소승)의 오솔길을 걷도 있지는 안는가”라고 묻고 “철저히 묻는 자(대의정)에 공안타파의 새 길이 열릴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금까지의 토론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밀도높은 토론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에 없이 종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조계종의 내부적 폐단들과 외부의 요청을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들을 지적하고, 한국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다 담고 대표할 수 있는 조계종단이 되려면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대답을 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못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도법 스님은 “회통불교로서의 조계종이든, 종파적으로서의 조계종이든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불교의 내용”이라며 “회통이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종명도 폐기처분해야 하지 않겠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모습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빠짐없이 청중으로 참여하고 있는 테라와다승인 해피 스님은 조계종의 종지가 부처님의 근본교설인 무아와 배치되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피 스님은 “종지와 관련해서 말씀하실 때, 즉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 불성이 아트만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한 토론자 스님이 말씀하셨는데, 부처의 자리, 아라한의 자리, 존재를 소멸한 자리라고 하는 것은 탐진치를 소멸해서 오취온으로서의 자리가 소멸되어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모순이 생기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해피 스님은 “조계종지에 관한 토론을 하고 계시니까, 아무리 어른스님들이 불성을 아트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 보는 불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불성이 아트만이 아니고 존재의 소멸을 말한다는 설명이 들어가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조계종은 아트만을 지향하는 종단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설우 스님(진불선원장)은 “불성이라는 말, 연기중도라는 말, 직지인심은 실체성이 없다는 것이며, 연생연멸의 연기법이 압축되어 있는 말”이라고 부연했다. 설우 스님은 이어 “참다운 덕성, 불성은 무엇이라고 논리적으로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아라한이라고 하더라도 불성을 보지 못한다고 열반경에 나와 있다. 아라한도 볼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성은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개념적으로 정리될 수 없다고 어록에 나와 있다. 이것은 부처님처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성은 오로지 증득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경전과 어록에 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법성은 깨침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설우 스님은 이어 “중생들이 잘 모른다고 해서 진리를 중생 쪽으로 내릴 수는 없는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인스탄트 식품에 입맛이 길들여졌다고 해서, 우리 고유의 음식을 인스탄트에 맞출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가 많은 교법과 학문적인 것을 많이 갖추고 공부하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깨침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사회를 본 인경 스님(동방대학원대 교수)도 “남방스님들이 자북방에 와서 북방불교는 아트만이 아니냐 라고 자꾸 묻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발제를 한 학담 스님이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학담 스님은 “열반적정인데 말하는 자는 누구고 듣는 자는 누군가? 연생연멸인데 불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는 “부처님은 온처계(蘊處界)로 불교를 설한 것이다. 초기불교의 해석이 다 온처계로 설명이 되어 있다. 나중에 조사선에 오면서 복잡한 교상을 심과 성으로 보여준 탁월성이 있다. 그러나 불교적 중도에서 이탈한 면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종광 스님(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이 종명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우리 종단이 조계종이라는 종명을 사용한 것이 50여년이라고 하는데, 50년은 그만두고 최근 2, 30년 동안이라도 시대가 아파하는 것에 함께 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되지 않으면 조계종의 종지 구현은 어렵지 않겠나”고 물은 종광 스님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아픔에 어떻게 대처하고, 치유하고, 함께 할 것이냐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종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반성해야 한다. 스님들의 가르침을 듣노라면 불교를 마치 승가만이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웃과 함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선과 바라밀의 병행 문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화랑 스님(동국대 경주 정각원장)은 토론을 통해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에 바라밀행 실천이 부족한 것은 문제라며 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에 대해 학담 스님은 선과 바라밀행을 통일되는 것이며, 선을 하는데 바라밀행을 왜 안하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담 스님은 “12시간 넘게 앉아 있는 것이 선 전통이 아니다. 설법도 듣고 탁발도 가고, 경과 좌선을 함께 갖춘 것이 참선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맞는 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설우 스님은 “평생 참선수행을 해온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다. 이 문제에 고민을 하고 있다. 종단이 간화선 대중화를 걸어놓고 있는데 사실 저는 이런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본다. 왜냐, 간화선이란 화두를 걸어놓고 정진을 해서 어떤 경지를 얻는 것인데,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생활 속에서 선을 하도록 하느냐, 지속적으로 화두를 들게 하느냐, 그런 문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발언에 나선 종광 스님은 “토론을 들으면서 소통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절감하고 있다. 결국 중국불교의 선사들이 펴낸 대작, 즉 규봉종밀, 영명연수가 쓴 종경록 등의 대표적인 저술들이 있는데, 거기에 의하면 이 두 선지식은 선과 교를 어떻게 회통할 것인가에 큰 고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광 스님은 이어 “화합승가는 여섯 가지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즉 같은 규범 속에 있어야 하고, 견해가 같아야 하는 등의 육화가 있다. 사회자께서 조계종지의 현대적 구현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했는데, 솔직히 없다. 그저 고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광 스님은 이어 “금세기 안에 지금의 기성종교들은 거의 쇠락할 것이라는 종교학자들의 전망이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교단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스님들부터 먼저 소통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재가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재가자의 각성을 촉구했다.
승가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재가자의 시주거부로 분쟁을 종식시킨 부처님 당시 코삼비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한 종광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좀 더 공부를 많이 해주셨으면, 사찰이 가난해지도록 힘써 주셨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종단은 건강해지지 않는다. 종교집단이 부자가 되어서 망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당부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 종단에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은 돈이라도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교단을 망치게 한다. 승가는 승가로서 역할을 하고 재가는 재가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거듭 재가자의 각성과 그에 따른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도법 스님은 “개인적으로 종지의 뜻을 잘 모르겠다. 참선도 염불도 간경도 해봤는데, 솔직히 별로 신통치가 않더라. 자각각타 각행원만이라는 종지가 내 40여년 중 생활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더라.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지도, 영향을 준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종지가 어디에 쓸 물건인가 생각하게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도법 스님은 이어 “종지정신으로 봤을 때,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부에 의지해서 불사를 하는 것, 사찰에서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종지에 어떻게 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을 종지가 답할 수 없다면 종지가 무슨 소용인가. 고급승용차와 폭력성, 이해를 위한 집단이 만연하는 것에 우리 종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종지 문제를 다뤄야 한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폐단, 한계, 위험이 종지와 관련이 있는가. 있다면 이런 문제를 야기시키는 종지는 당연히 폐기처분해야 하고, 관련이 없다면 그런 종지가 왜 필요한지, 적나나하게 토론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종지에 대한 원론적이고 파격적인 견해를 제기했다.
종광 스님은 “자꾸 역사적인 문제를 되풀이하게 되는데, 지난 역사를 바르게 성찰하지 못하면 내일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선종사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선종사가 왜곡되고 어떤 부분은 조작된 부분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가신자들이 스님들의 법문 들을 때 이 스님 저 스님 법문들을 때 헷갈린다고 한다. 그것은 스님들 스스로가 정리를 안 하는 부분도 있고,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늘 헤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종광 스님은 또 “탐욕은 탐욕대로 갖고 도인이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선종사찰에서 하는 일은 재를 지내는 일이다. 불사일법이라고 해서 하나의 법도 버릴 게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조계종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자기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작업을 한 다음에 종지를 현대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종광 스님은 또 “깨달음, 깨달음 자꾸하는데, 깨달음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팔정도의 정견이 깨달음이다. 정견을 통해 중생의 몸속에서 거듭거듭 부처를 지어가는 것이다. 우리 삶의 현장을 떠나서 정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고매하게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 따로, 삶의 현장에서 고생하는 중생 따로, 이런 거 아니다. 도법스님 말씀대로 출가자는 출가자대로 재가자는 재가자대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혹여라도 우리 교단에 비불교적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해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사부대중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설우 스님이 반론을 펼쳤다. “종지가 필요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 저는 그 이야기가 석가여래가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석가여래가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종지도 있고 그런 것이지. 이것을 잘못 듣는 사람들이 오해를 할까 싶어서 한 말씀 드린다. 도법 스님이 현실적 답답함을 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혹시 오해를 할 수도 있어서 말씀을 드리겠다. 우리는 종교인이다. 종교인이 자꾸 현학적으로 가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조선 5백년을 지내오면서 계맥이 끊겼을 때, 금담스님, 대은 스님 두 분이 기도 중에 대은스님이 서상계(瑞祥戒)를 받자, 대은스님의 스승인 금담스님이 제자인 대은스님에게 불계에 계를 받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우리 계맥으로 인정한다. 우리가 종교인이며 따라서 종교성을 벗어나선 안 된다. 이런 것도 자꾸 역사적 사실만 따지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학담 스님이 발언에 나섰다. “편협한 선종의 종통이 결합된 종지가 현재 조계종의 종지라고 본다. 조계종의 종지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반야를 통해 육바라밀로 향하는 것과 다르다. 선, 하면 부처님이 생각나지 않고 달마가 생각나는 것,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학담 스님에 이어 종광이 설우 스님의 서상계에 대한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서상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던 중 어떤 현상을 보았다. 머리를 만져주었다. 이런 것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1973년에 태국에서 스님 12분을 모셔다가 한국의 율사스님들이 모두 계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한국불교의 계맥이 끊겨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서상계는 보살계에 한정하는 것이다. 비구-비구니계에 서상계를 적용시키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한국의 비구계는 엄격하게 말한다면 1973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1973년 고승들의 태국 비구계 수계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고 있지만, 당시 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한국불교에 그동안 계맥이 끊겨서 비구가 없었는데 우리나라(태국) 스님 10분이 가서 수계를 주었다고 태국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다고 한다. 종교성과 허구는 다른 것이다 신앙성이 조작하고는 다른 것이다. 만일 이것이 혼동된다고 하면 참 고약한 불교가 된다. 제가 신심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성이나 신앙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었다.
조계종 종지의 현대적 구현을 주제로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결론적으로 종지의 적합성과 효용성에 대해 폭넓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조계종이 앞으로 개선하고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