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으나 그 길에는 무수한 걸림이 있다. 나약하고 지혜가 없으면 우리는 그 걸림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리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강단 있고 용기 있는 이는 고통을 딛고 당당하게 일어선다. 그러므로 미래에 불행이 닥칠 때까지 지레 겁을 먹고 소극적으로 살기보다는 굳은 신념과 큰 희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한 지혜는 오직 자신을 살피는 깊은 선정력과 따듯한 사유에서만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마른 지혜일 뿐이다. 참 지혜는 언제나 촉촉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 기후 스님. 온화한 성품에서 수행력이 배어나온다.

경북 봉화의 깊은 산속인 구마동 계곡에 토굴을 짓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산골승 기후 스님이 45년 출가생활 중 20여년에 걸친 선방생활을 오래된 빛바랜 사진과 함께 수행 엣세이로 펴냈다. 저자는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전강스님의 용화선원에서 첫 안거를 시작한 이후, 봉암사, 도성암, 수도암, 통도사 등 제방선원에서 여러 안거를 보냈다. 이 책은 자칫 고단하고 힘든 행자생활, 치열하게만 보일 수 있는 선방 수좌 생활조차 저자 특유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재현돼 때로는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절로 나오고, 때로는 심오하고, 때로는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면서 나긋나긋하게 펼쳐져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저자는 늘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으나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천형처럼 다가온 어릴 때의 천연두로 인해 그의 사춘기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훤칠한 키와 인물에도 불구하고 동네 여학생이 다가오면 그 앞을 지나지 못하고 두 배나 먼 길을 돌아가야 했던 지은이는 결국 출가를 결심한다. 그는 통도사와 해인사의 승가대학에서 강사까지 역임했지만 결국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진 삶의 질곡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자 선방 수좌로 살기로 작심ㅎ나다. 그리고 오랜 선방 생활을 6년간의 묵언 수행으로 마감했다.

저자는 묵언수행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던진 아픔의 돌을 자연스레 해체하자 홀로 해외포교에 나섰다. 그러고는 15년 흘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암이 찾아왔다. 그는 다시 귀국하여 산중에 토굴을 짓고 암치료도 하지 않은 채 7년간 홀로 살아왔다. 그리고 빛바랜 오래된 사진을 찾아내 그 사진에 자신의 수행일지를 담아냈다. 스님은 우리에게 웃으면서 묻는다.

“지금 이 순간, 그대가 꺼내야 할 돌은 무엇인가?”

이 책에는 마흔다섯 가지의 에피소드가 잔잔한 필체로 펼쳐진다. 행자시절 찾아온 어느 멋진 여인과의 얽힌 이야기, 수행에 걸림이 될까봐 걸망에 해골바가지를 지고 다녔던 치열했던 한 수좌의 파계, 차 한 잔 마시다가 떠난 일등수좌의 죽음, 솥까지 걸머메고 떠났던 수좌들의 소풍이야기, 고구마 서리를 하다 들킨 재미난 이야기부터 탄허, 경봉, 전강, 성철, 월하, 법전 스님 등 쟁쟁했던 선승들과의 치열했던 수행 이야기들. 그리고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승부를 하기 위해 묵언을 해야 했던 정진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옛날 사진을 보면서 글을 붙인 것입니다. 본래 책 내려고 한 건 아니고. 이런 글을 하나 둘 카페에 올리다보니 책 한 권 낼 분량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기후 스님은 시골 산승답게 순수하다. 선사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객기도 보이지 않는다. 사교입선의 전통을 살려야 하고, 아직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일본의 조동선이 스티브잡스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것을 보며, 우리나라의 참선풍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열린 시각도 가지고 있다. 확철대오, 내외명철만을 주창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나 중근기를 위한 의리선도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모 아니면 도’ 스타일의 한국선 풍토를 비판하기도 한다.

반드시 이름난 스님들의 책만이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록 해외 포교, 또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의 글이지만 진솔하고 감동적이며 깊은 내면의 성찰은 어느 선지식의 그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기후스님은?
1943년 경북 안동 오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첫돌도 되기 전에 천연두를 앓아 사춘기시절까지 마음고생이 심하였다. 스님은 1965년 범어사 금강암에서 행자로 출가하여 1969년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하고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제방선원에서 수행했고, 호주에서 15년간 해외포교를 하다가 암에 걸려 귀국 암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암치료를 거부하고 홀로 깊은 산에서 선수행을 하면서 암을 극복했다. 선방주좌이면서 걸림없이 자유자재한 성정으로 대중이 즐겨 부르는 곡에 가사를 짓기도 하고, 시를 써서 산중을 찾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