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를 무대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멋지게 쇼 한 번 하고 가라”는 도영 큰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의 수처작주(隨處作主) 법문을 들었기 때문인지, 서울에서 템플스테이를 위해 내려온 동국대 정각원합창단과, 비록 교세가 약한 전라북도 지역이지만 찬불가를 향한 열의만큼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결의로 가득찬 전북불교발전협의회 소속 남성 7인조 중창단(이하 전불협 중창단)의 모습은 마치 링에 오르기 직전의 선수들처럼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번 배틀은 전불협중창단이 서울 동국대 정각원합창단이 송광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찬불가를 부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도전’ 의사를 표명, 이뤄졌다.

찬불가 연주를 하고 있는 동국대 정각원합창단. 정각원합창단은 세련된 화음과 노련한 솜씨를 한껏 뽐냈다.


전북불교발전협의회 회원들로 구성된 남성7인조 중창단. 당당하고 우렁찬 목청으로 멋지게 찬불가 두 곡을 소화해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먼저 무대에 오른 팀은 서울 정각원 합창단. 정각원 신도들을 주축으로 교수와 교직원이 가세한 정각원 합창단이 무대에 등장하고, 지휘자와 반주자가 자리를 잡는 순간 청중석에서는 ‘멋있다’, ‘화이팅’의 연호가 터져 나왔다.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온 일불제자라는 고맙고 소중한 인연을 익히 알고 있는 송광사의 불자들이기에, 이미 내편 네편의 분별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지휘자의 원숙한 리드로 시작된 정각원합창단의 노래는 가릉빙가가 현현한 듯 아름다운 목청과 부처님에 대한 절절한 찬송에 다름 아니었다.

세련된 서울팀답게 정각원합창단은 ‘우리도 부처님 같이’에 이어 정각원 신도 임보선 시인의 시 ‘솟대’에 전준선 씨가 곡을 붙인 노래 ‘솟대’를 불렀다. 정각원 합창단이 연주를 마치려하자 청중 속에서 “앵콜, 앵콜”의 연호가 터져 나왔다. 앵콜에 신바람이 난 듯 정각원합창단은 앵콜곡을 찬불가가 아닌 가곡 ‘석굴암’을 선택,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관음전이 떠나갈 듯한 박수를 받으며 연주를 모두 마친 정각원 합창단이 객석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불협 중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육중한 체구의 남성 7인조가 당당한 포즈로 인사를 하자, 휘파람 소리와 함께 “멋있다”는 연호가 연신 터져나왔다. 같은 지역팀인지라 박수소리가 좀 더 큰 것은 당연한 것. 전불협 중창단은 클래식풍이 아닌 재즈풍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불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멋들어지게 불러 제쳤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우렁찬 남성의 목청에 관음전이 흔들거리는 듯했다. 먼저 연주를 마친 정각원합창단원들은 맨 앞자리에서 온몸을 흔들며 가장 열렬하게 응원을 보냈다.

전불협중창단의 연주에 가장 열렬하게 박수와 몸짓으로 응원을 하고 있는 정각원 합창단원들. 이 순간 이미 찬불가 배틀은 배틀이 아닌 축제가 되었다.

전불협 중창단은 두 번째 곡으로 ‘사박걸음으로 가오리다’라는 다소 생소한 찬불가를 연주했다. 투박한 면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면 개의하지 않고 당당하게 소리를 내뿜는 그들의 모습은 금강역사를 닮아 있었다. 오늘은 더 준비한 곡이 없어 앵콜을 사양한다는 재치 있는 멘트와 함께 자리로 돌아온 전불협 중창단을 향해 200여 대중을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줄기차게 내리던 장맛비도 이 두 팀의 찬불가 연주를 듣겠다는 듯이 이내 그쳤다. 전라도 완주 송광사에서 벌어진 초유의 ‘찬불가 배틀’은 이렇게 환희를 가득 머금은 채 마무리됐다.

사실 재밌게 그 명칭을 ‘’배틀‘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날의 배틀은 상대를 더 올려주고 격려해주는 작은 축제였다.

다음에 다시 이런 기회가 마련된다면, 더 열심히 연습해서 더 아름답고 훌륭한 연주를 하고 싶다는 정각원 합창단, 많은 수의 단원으로 구성된 정각원 합창단을 보니 우리도 더욱 열심히 해서 보다 많은 불자들이 합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전불협 중창단의 인사를 끝으로 이날의 ‘찬불가 배틀’은 막을 내렸다.

배틀에 참가한 단원들은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본 송광사 도영 큰스님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마치 절앞 연밭의 백련처럼 피어올랐다.

서울과 지방의 불자들이 ‘찬불가’를 매개로 한 자리에 모여 한 바탕 어우러진 법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마든지 있어도 좋을 배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