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단장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창비)에는 특히 낙산사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눈에 띤다. “거의 새로 집필”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양양 낙산사 편은 이번 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화재로 인해 새로 복원한 낙산사는 거의 새로 집필하였다.”<개정판 서문>

‘동해 낙산사의 영광과 상처’라는 큰 제목 아래 ‘의상대 낙산일출/ 원통보전의 탑, 불상, 돌담/ 낙산사 화재/ 낙산사 복원’이라는 소주제의 글이 실렸다. 저자가 낙산사 화재 당시에 문화재청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터라, 화재와 복원 과정에 걸친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달랐음을 기술하고 있다.

“양양 낙산사를 생각하면 나는 회한으로 가득하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군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은 45만평(150헥타르)의 야산을 태우고 낙산사 원통보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각 13채와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마저 삼켜버렸다. 당시 나는 문화재청장으로 그 책임을 져야 했다. 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나라의 보물 하나를 망실(亡失) 처리했다는 불명예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죄인으로 되었다.” <403페이지>

저자는 이 책에서 낙산사 복원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서술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전액 국고로 복원하고 싶었지만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국가지정문화재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원통보전과 홍예문의 복원, 동종의 재주조 등 일부에만 예산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나머지 요사채나 전각의 복원은 오직 낙산사 스님들과 사부대중들이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격려에 힘 입어 마침내 2009년 10월 12일 복원불사 회향을 봉행할 수 있었던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오늘 이 복원불사 회향은 낙산사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기와 한 장, 서까래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자비의 마음을 내어주신 국민들의 따뜻한 성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픔과 눈물 속에서도 간절한 발원과 원력으로 복원불사를 회향할 수 있었던 힘은 모두 다 이같은 국민들의 성원과 자비 때문이었습니다.”<404페이지>

김홍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원형 그대로 복원된 낙산사 전경.

유홍준 교수는 당시 낙산사 주지였던 정념 스님의 회한을 길게 인용해 소개하고 있다. 회향식에 차마 얼굴을 내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그는 잊지 않고 그의 방식대로 갚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나 명지대로 돌아온 그는 2009년 학생들과 함께 낙산사를 찾았다. 화마도 비켜간 의상대와 홍련암에 이르러 길게 홍련암과 관련된 전설을 소개하고는 그는 이렇게 감상을 적는다.

“이런 전설을 지닌 홍련암은 낙산사 화재 때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사람들로 하여금 의상대사의 신성함과 신통력을 다시금 생각게 하고 있다.”

화재때 불타버린 홍예문이 훌륭하게 복원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을 태우던 유 교수는 마침내 홍예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와서는 새로 복원된 낙산사 새절을 보고 놀란다. 범종루와 사천왕문 너머 원통보전에 이르는 반듯한 가람배치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한 동안 눈길을 머문 것이다.

“화재 이전의 낙산사는 정말로 어지러운 절이었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콘크리트 2층 한옥건물이었고 스무 채 남짓하게 들어선 낙산사 가람배치에는 어떤 질서가 없었다. 그렇다고 선암사처럼 옛 마을을 연상케 하는 자연스러움도 아니었다. 그 어지러움이란 낙산사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20년 전 낙산사 답사기를 쓰면서 낙산사의 이런 모습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도무지 동해 낙산사!라고 부를 수가 없었던 예전의 낙산사가 화재 후 천지개벽을 한 것에 대해 이렇게 놀라움을 표현한다.

“이런 절이 이제 김홍도의 ‘낙산사도’에 입각하여 다시 태어난 것이다.…낙산사의 새절은 바로 이 그림(낙산사도)을 모델로 하여 복원한 것이니 절문에 들어선 순간 그 정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원통보전이 전소하는 과정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칠층석탑, 새로이 지은 보전 안에 모신 건칠관음보살좌상, 아직도 화염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원통보전 별무늬 담장을 돌아보며 회한과 안도의 숨을 내쉰 유 교수는 지금은 회주로 있는 정념 스님을 주지 무문 스님의 안내로 만난다.

“정념스님은 내 두 손을 덥석 잡고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스님에게 두 손을 맡기고 눈길로만 하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이내 화재 당시의 아픔, 괴로움, 안타까움, 미안함을 말하는 무거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미안해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답사기에서 원통보전 별무늬 담장 외에 볼 것이 없다고 하신 탓에 별무늬 담장은 화마에도 살아남았지만, 낙산사 동종은 언급도 하지 않아 동종이 화가 나서 녹아버렸지 않았느냐는 정념스님의 조크에 만면에 웃음을 띤 두 사람.

문화재를 공부하고 사랑하는 학자와 문화재가 아닌 성보를 온몸으로 지키고 또 새롭게 되살려낸 스님의 해후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재회일지도 모른다. 이 감동의 장면이 유 교수의 유려한 필력으로 부활한 장면이 새로이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 기록되어 있다.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이라면, 특히 낙산사를 사랑하는 불자라면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