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생들의 1박2일 참선 템플스테이 현장
부처님오신날을 며칠 앞둔 지난 4월 30일과 5월 1일. 경기도 광주 오포에 위치해 있는 참선도량인 조계종 용화사 법보선원에는 30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참선삼매에 들어 있었다. 승복 색깔인 회색 수행복을 입은 30명의 ‘신참수좌’들은 지도법사 스님의 지시에 따라 참선과 강의, 행선과 와선, 차담 등을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차례차례 진행했다.
경기도 광주 용화사에서 열린 참선템플스테이에 참석, 좌선 삼매에 빠져 있는 단국대불교학생회 학생들. 처음 경험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제법 자세가 잡혀 있다.
맛있는 공양시간. 공양도 수행의 한 과정이라, 밥과 반찬을 담는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용화사 대중들은 참선도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아직은 참선이 낯설을 대학생들에게 다짜고짜 1시간 짜리 참선수행을 밀어부쳤다.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허리도 뻐근하고 졸음도 몰려왔지만, 대학생들은 스님의 지도에 잘 따랐다.
그리고는 맛난 저녁공양에 이어 교무 스님의 '양자물리학과 불교'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VTR을 활용한 강의로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육체적 피곤함과 식곤증으로 졸음에 빠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스님의 강의에 집중했다.
지도법사 교무스님과 함께 차담을 하며 양자물리학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는 학생들.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종교를, 그러니까 서양종교를 기준으로 한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불교는 최고의 가르침, 최고의 진리이며, 부처님께서 발견해놓은 우주법계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2500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물리학 등 과학에 의해 사실임이 규명되고 있다, 다른 종교의 교리는 과학이 발달할수록 틀렸다는 것이 늘어나지만, 불교는 그와 정반대'라는 스님의 설명에 한창 학문에 호기심이 많을 나이의 대학생들은 귀를 쫑긋 기울였다.
불교라고 하면, 노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잘못된 선입견을 깨뜨리려는 교무 스님의 열정은 비가 내리는 산사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촛불을 켜고 오체투지하고 있는 대학생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처님 전에 엎드려 간절한 기원을 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촛불제가 법당에서 시작됐다. 불교학생회 송운석 지도교수(행정학과)의 말씀처럼 ‘첫날의 하이라이트’ 순서가 시작된 것이다. 종이컵에 양초불을 밝히고 각자의 발원을 일으키라는 교무 스님의 말씀이 있자, 학생들은 더욱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참회진언을 외우며 연비의식을 마친 대학생들은 촛불을 두 손에 모아쥐고 '옴 살마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외우며 법당을 돌았다.
참선도량에서의 1박2일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견성성불로 이어가라는 스님들의 간곡한 당부를 마음속깊이 되새기는 듯 보였다.
지도교수님과 선원의 원감스님이 20여 차례 뜯어고치며 짰다는, '빡빡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됐다.
드디어 밤 10시. 취침시간. 잠을 자지 않고 한 두 시간은 재잘거려야 제격일 학생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예불에 참석하려면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질척거리는 봄비소리에 대자연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을 4월의 마지막 밤을 30명의 청년납자들은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막 잠이 들었을까, 여지없이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부스스 눈 비비고 일어나 이불을 개고 수행복을 챙겨 입은 후 법당으로 종종종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새벽처럼 신선했다.
선에 좌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에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선지식들이 가르쳐주시지 않았던가. 와선의 모습이 색다르다.
여느 절과는 조금 다른 용화사 법보선원의 아침 예불문을 용화사 원감인 성조 스님의 집전으로 함께 한 학생들은 교무 스님의 인솔에 따라 다시 선적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벽 참선 수행을 하기 위해서다. 교무 스님은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학생들을 배려해 갑자기 좌복을 펴고 누우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와선(臥禪)을 하겠다는 것이다.
“선이란 반드시 앉아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모두 화두를 들어야 바른 참선입니다. 와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자 쭉 다리를 뻗고 좌복 위에 누우세요. 두 손은 단전 위에 올려놓고요. 그렇다고 코를 골면 안 됩니다. 누워 있어도 눈을 감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마세요.”
와선이 끝난 후 용선사 법보선원 선원장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대선사로 추앙을 받고 있는 송담 대선사의 테이프 법문을 들으며, 한 시간 가량의 좌선시간이 이어졌다. 참선, 그것도 활구참선을 해야 하고 언제나 ‘이뭐꼬’를 놓치지 말라는 송담 대선사의 가르침을 육성으로 들으며 학생수좌들은 조금씩 참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참 나는 무엇인가, ‘참 나를 찾아가는 템플스테이’에서 나는 참 나를 얼마나 발견했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학생들의 표정도 각양각색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학생,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을 한 학생, 무엇인가 불편한 듯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학생, 마악 잠이 들려는 학생 등. 화엄경에서 백초시불(百草是佛)이라더니, 학생들 각자각자가 그대로 모두 부처였다.
용화사 법보선원 원감스님, 교무스님과 지도교수, 동문, 학생들이 회향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원감스님은 회향식에서 학생들에게 참선공부 인연으로 반드시 견성성불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전 10시. 드디어 회향식. 용화사의 신도님들도 한번 친견하기 어렵다는 원감 성조 스님이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법당으로 들어오셨다. 스님과 함께 예불과 참회진언을 외우고, 역시 간단한 축원과 연비의식을 마치는 것으로 회향식이 끝났다.
한마디 말씀도 없이 법당을 나서려는 원감스님에게 학생들의 대선배 한 분이 한 말씀 들려주실 것을 요청했다. 그래도 1박2일 동안 학생들이 참선공부를 했는데, 원감스님께서 그래도 한 말씀 격려를 해달라는 청을 성조 스님은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참선이라는 최상승법을 만나는 소중한 인연을 맺었으니, 부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견성성불하시기 바랍니다.”
모습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게 말씀을 마친 스님은 기념촬영까지 해주시고는 지체없이 선방으로 들어갔다. 모습만으로도 가르침을 주는 선사의 모습에 학생들도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원감스님이 우리학교 선배님이시래.” “불교학생회 출신이시라던데…” “불교동아리방 부처님을 모실 때 학교에도 오셨데요.”
수군수군거리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선원으로 향하는 원감스님에게서, 또 그 뒷모습을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풋풋한 대학생들에게서 상서로운 향내가 느껴졌다.
*2. 단국대불교학생회가 보여준 작은 기적
대학생불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난리다. 이렇다할 뾰죽한 대안이 없어 답답함을 더한다. 현재 각 대학의 불교 동아리는 거의 고사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에 꼽을 몇몇 학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대다수의 학교들이 아예 불교 동아리가 없어지거나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런 암담한 대학생 불교의 위기 속에서 난관을 뚫고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는 불교 동아리가 있다. 단국대학교 불교학생회(이하 단불회)가 그 주인공이다.
단불회는 지난 1972년 창립되어 4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불교학생회이다. 그동안 많은 수의 출가스님을 배출했고, 80년대 초반에는 등록회원이 150∼200명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느 대학의 불교동아리와 마찬가지로 단불회는 회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아리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단국대불교학생회 회장 이위진 군. 현재 행정학과 2학년이다.
한 해에 가입하는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 불교학생회 몇몇 회원들이 과 친구들이나 아는 학생들에게 부탁해 명단을 올려서 겨우 동아리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도 어려워졌고, 혹시라도 적극적인 학생이 군입대를 하게 되면 동아리방을 지킬 학생조차 구하지 못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동문회가 나서서 이런 저런 협력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둬들이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2009년 단불회는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서류상 회원의 하한선인 20명의 명단을 채우지 못해 동아리방 퇴출 결정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단불회 역사 이래 가장 적극적이고 훌륭한 지도교수님을 만났지만, 쇠락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동문들이 팔을 붙이고 나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단불회를 살리고자 동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대책을 숙의하기 시작했다. 우선 단불회 살리기 기금 5백만 원을 모아 1차로 학교에 불교학생회의 활동지원에 사용할 것을 명기한 지정기탁을 학교쪽에 제출했다. 단불회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문들은 학교를 찾아가 동아리를 담당하는 부처인 학생처를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다. 모교인 단국대학교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인 단불회의 역사를 단지 숫자타령으로 끊으려하는 것은 학교 쪽에도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을 주지 시켰다. 불교동아리 퇴출을 결정한 동아리 규칙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 문제를 학교 안팎에서 문제삼겠다는 압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한 학기 퇴출유예를 받아낸 단불회는 회생을 위해 지도교수와 학생, 동문이 머리를 맞댔다. 동문과 지도교수가 광주 용화사에서 1박을 하며 타개책을 숙의했다. 오랜 시간 토론 끝에 맺어진 결론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템플스테이 시행이었다.
매학기 1회씩 1박2일의 템플스테이를 시행하되, 일체의 비용은 동문들이 책임을 지기로 했다. 2009년 가을의 용주사 템플스테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 인근의 명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는 공지를 포스터와 플래카드, 그리고 학교와 동아리 홈페이지에 올렸다. 첫 순서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지원을 했고, 아무런 강요도 없이 정성을 다해 템플스테이를 뒷바라지 하는 지도교수와 동문, 그리고 사찰의 배려에 참가 학생들은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템플스테이가 이어졌고, 참가 학생 가운데 스스로 불교학생회에 가입을 해오는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명, 10명 씩 가입을 신청했고, 불교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교생활에도 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입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돌면서 불교동아리 방을 두드리는 학생도 생겼다.
그렇게 해서 현재 단불회 회원 수는 어느새 50명을 넘어섰다. 회장 한 명만이 텅빈 동아리방을 지키던, 동아리연합회로부터 ‘방 빼라’는 통지를 받았던, 그야말로 앞이 캄캄했던 2년 전의 악몽은 지금 단불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는 학교 동아리 전체에서 3번째로 많은 회원수를 확보한 가장 활기찬 동아리가 되었다. 동아리방이 좁게 느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정기법회도 잘 진행되고 있고, 학교쪽과 논의해 불교동아리의 큰 형으로 있는 연구원이자 강사인 불교학박사 이호석 강사의 불교학 강의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나아가 교직원과 교수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도 계획하고 있다.
단불회의 신바람 나는 변신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