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이어령은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질타했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으로,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으로,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 당대의 문호들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15일부터 평창동 영인문학관(寧仁文學館)시작된 ‘한국문학 그 새벽에 온 사람들Ⅱ-<폐허>파-염상섭·오상순·김억 3인전’ 개막식에서 55년 전 ‘우상의 파괴’ 시절의 에피소드를 꺼냈다. “이제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그의 언급에 서둘러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그의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4월 15일 염상섭, 공초등과의 교유 에피소드를 전하는 이어령 선생님.

내가 서울대 학생시절 염상섭 선생을 독하게 비판했다. 그의 작품 중 널리 알려진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리얼리즘, 내추럴리즘을 표방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크기가 3센티, 5센티에 불과한 청개구리를 해부했다는 것도, 냉혈동물인 개구리를 해부했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는 것 등은 전혀 리얼리즘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단, 특히 평단은 이런 것을 그냥 막연하게 지나왔다. 표본실과 거기에 해부용으로 놓인 청개구리라는 것으로도 물론 내추럴리즘이나 리얼리즘 문학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독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그런데 염상섭 선생은 역시 대가다웠다. 젊은 학생의 독한 비평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시다가, 3개월 후 발표한 ‘독나방’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나는 독나방에 쏘였다’는 표현으로 당신의 심정을 드러냈던 것이다. “몸이 근질거리고 열이 나고, 하필 그 독나방이 나를 쏘았다”며 아팠던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대응인가.

미당 서정주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의 신라인’이라며 신라라는 조롱(鳥籠), 즉 새장에 갇혀있다는 아픈 비평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미당이 말하기를 ‘나는 새 같은 거 가둬서 안 기른다. 나는 새를 좋다고 조롱에 가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신라라는 조롱에 갇혀있다’는 신랄한 비평에 대한 미당식 반응이었다.

나는 공초 오상순 선생과도 명동 청동다방에서 자주 만났다. 공초는 청동다방에서 늘 차와 담배로 살았다. 쭉 앉아 있다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의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차 마시고 담배 피고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할 때 그를 지탱해준 것은 차와 담배였을 것이다. 공초는 이렇듯 시(詩)로서 살았다.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다. 시 한 구절 그림 한 점이면 8도 어디를 가든 집과 밥이 해결됐다. 우리나라는 그런 멋이 있는 나라다. 나도 묵객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청동다방에 가서 공초 선생을 만나 글도 쓰고 그랬다.

이번 전시는 이런 소중한 기록들, 기억들을 모아 전시하는 것이다. 사실 50년이나 지난 후에 이런 전시가 있을 줄 염상섭 선생이나 공초 선생이 생각이나 했겠는가. 글을 쓴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끈끈한 인연이 맺어져 사후 50년이 되어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이 자리다. 옛날 우리 문학을 이끌었던 분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내가 50년이 지난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이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공초 오상순의 초상화. 오수환 그림

이어령 선생의 회고사에 앞서 그의 아내이기도 한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폐허(廢墟)파 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의 인사말을 했다.

강인숙 관장은 “‘창조’가 평안도 출신 문인들이 주도한 동인지인데 반하여 ‘폐허’는 서울 출신 문인인 염상섭, 오상순, 남궁벽이 주도했다”며 “서울 출신 문인들이 ‘창조’의 출현에 자극을 받아 결성한 것인 만큼, 초기 동인인 김안서, 김찬영 등이 곧 ‘창조’파로 가버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강 관장은 “서울 출신 문인이 적은 한국의 문학에서 ‘폐허’파를 서울 출신 문인들이 주도한 것은 문학사가 기억할만한 사항이며, 거기에서 염상섭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폐허’는 존재가치가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초창기에 쌍벽을 이루던 ‘창조’와 ‘폐허’ 두 잡지가 지니는 지방적 특성을 대비하면 1920년대 한국문학의 초상화가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번 ‘폐허’ 전시회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강인숙 관장은 염상섭과 공초, 이상 등이 활동한 종로는 ‘구문학관’이 세워져야 마땅한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에게 “구문학관을 세워 종로구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구로 만들고 나아가 시장이 되시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염상섭의 사진.

이번 전시에는 희귀자료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염상섭의 육필원고, 증명서, 훈장 등이 나와 았고, 대표작 ‘삼대’의 출판계약서도 눈길을 끈다. 조계사 일대에서 머물며 반승반속으로 지냈던 공초 오상순의 경우는 더 화려하다. ‘공초하면 떠오르는 청동문학’만 46부가 공개되었다. 특히 공초의 문학은 불교문학의 한 획으로서 더 연구되고 선양되어야 할 분야라고 할 때 불교계에서 관심을 가져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이밖에 김안서의 초기시집 세 권, 육필원고 50여통, 박두진과 최윤의 애장품 등도 등장 더 풍성한 전시회가 되었다.

‘그 새벽에 온 사람들Ⅱ-폐허’전은 두 달 간 계속된다.

문의; 영인문학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99-3(산마루길 58) 02)379-3182.


영인문학관이 전시 중인 <폐허> 전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