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전 붓다의 나라를 직접 느끼기 위해 신라를 떠났던 혜초 스님이 <왕오천축국전>의 모습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우리에게 왕오천축국전의 진면목을 선사해주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은 신라 승려 혜초가 붓다의 나라를 방문해서 쓴 기행문이다. 1908년 중국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발견돼 프랑스로 넘어간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대중들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다.

혜초 스님은 723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떠나 백실로 중국 광저우를 거쳐 인도에 도착한 뒤 육로로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지나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이르러 2000 km에 이르는 대장정을 끝냈다. 스님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5년에 걸쳐 다섯 천축국과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 서역의 여러 나라들을 기행했고, 이곳에서 체험한 내용들을 책으로 남겼다. 현재 왕오천축국전은 한 장의 두루마리로 남아있지만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서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원본은 사라지고 축약본인 현재의 두루마리 한 장만 막고굴 장경동에 남겨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에는 혜초 스님이 남긴 몇 편의 시가 전해지는데, 고향의 하늘을 그리워하는 가슴 절절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님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밀교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혜초 스님은 50여년간 인도 밀교승 금강지의 밑에서 수학하면서 밀교교리를 한역(漢譯)하는데 힘써 중국 밀교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신라를 떠난지 1287년만에 왕오천축국전의 모습으로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해 중국 신쟝(新疆)․간쑤(甘肅)․닝샤(寧夏) 등 3개 성(省) 10여 개 박물관의 유물 22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혜초와 함께 하는 서역 기행’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번 전시는 8세기 혜초가 여행하였던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 동쪽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총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실크로드의 도시들’은 서역북도의 카슈가르․쿠차․투루판, 서역남도의 호탄․누란, 천산북로의 우무무치 등의 오아시스가 소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카라샤르에서 출토된 황금대구는 큰 용 한 마리와 작은 용 7마리가 구름 위에서 노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평양 출토 유물과 거의 흡사해 흥미를 끈다.

2부는 ‘실크로드의 삶과 문화’라는 주제로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서역 남로에 있는 호탄, 니야, 누란 등의 오아시스 도시 및 서역북로, 천산북로 등 실크로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2002년 누란 소하묘지(小河墓地, 도3)의 발견으로 이 지역에서 약 4,000년 전 유럽계의 인종이 밀 등을 재배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소개한다.
3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주제로『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었던 둔황의 석굴과 벽화 및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을 중심으로 혜초의 여행을 설명한다. 중국 서쪽 영토의 끝이자, 서역이 시작되는 관문으로서 번영을 누린 둔황 막고굴의 유물 16점, 복제품 20점(벽화 17점 포함)이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둔황 석굴 모형 2점(17호굴, 275호굴)을 통째로 가져다 전시하여 둔황 막고굴의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세계를 현장에서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가운데 17호굴(도4)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5)』뿐 아니라 둔황문서가 대규모로 발굴되었던 이른바 장경동(藏經洞)으로서 둔황학 성립과 관련하여 의의가 큰 곳이다.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왕오천축국전』은 한국인이 작성한 최초의 해외 여행기로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중 하나로 손꼽히며,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문화·경제·풍습 등을 알려주는 세계의 유일한 기록으로 그 가치가 높다.
4부는 ‘길은 동쪽으로 이어진다’는 주제로 둔황에서 서안에 이르는 간쑤 및 닝샤 지역 및 경주의 유물이 소개된다. 이 지역은 중국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흉노 등 유목민 전통도 강하게 남아 있는 독특한 성격의 문물이 많이 남아 있다. 청동의장행렬(도6)은 중국적인 전통이지만, 매머리장식(도7)은 흉노 등 유목민 사이에 유행하였던 것이다. 감숙성 북쪽에 있는 닝샤(寧夏)에서 발견된 동로마 금화(도8)는 이 지역에서도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4월 3일까지 개최되지만, 왕오천축국전은 대여기간이 90일인 관계로 3월 중순까지만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