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세계 4대 종교로 손꼽히는 것은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이다. 이 4대 종교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언어의 신성성(神聖性)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는 각각 라틴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세속적인 언어와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신성(神聖)을 담보하는 언어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불교는 언어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언어와 문자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물론 특정 언어와 문자가 특별한 수행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졌던 경향도 있었지만,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천명한 근본적인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불교도에게 말이나 글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를 전달하는 여러 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종교와는 다른 자유롭고 관대한 태도는 불교가 세계의 여러 지역에 전파될 때 매우 큰 장점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로 불교를 전달할 수 있었다. 불교경전은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의 다양한 언어와 문자로 옮겨졌고,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불전문학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현대에 불교를 공부하는 일반인이나 불교학자들은 불교가 지나온 대륙 위에 펼쳐진 광활한 언어의 숲을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언어의 숲을 헤쳐가기 위한 하나의 지도로서 현재까지 어떤 지역의 언어와 문자로 불교경전이 전해지고 있는지 그 대강의 현황을 살펴보는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 연구서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일부 제시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1930년대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었던 불경 단편들이 지금까지 대부분 불교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는 최전선의 자료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다량의 새로운 사본들이 등장하였다.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동의 결과로 생각된다.
이 새로운 사본들, 즉 스코이엔 콜렉션이나 영국국립도서관의 간다라 사본들, 파키스탄의 바주르 사본들은 20세기 초에 발견된 사본들보다 훨씬 오래된 사본들이 많고 그 분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불교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사본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 불교의 전파나 불전 번역의 역사가 다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실정을 살펴보면, 불교경전을 담고 있는 언어와 문자에 대한 이해는 불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초지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서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일부 제시되었을 뿐이었다. 최신 연구동향과 함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서 불교경전의 역사에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이 저술되었다.
각 분야의 전공자 7명이 불교경전을 표현했던 각 시대와 지역의 언어와 문자에 대해 그 변천사와 최신 연구결과까지 체계적이며 상세하게 서술한 10편의 글을 한 곳에 모았다.
인도의 구전문화에서 처음 어떻게 문자가 등장했는가를 설명한 심재관(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남전과 북전의 각 전승에서 달리 나타나는 결집의 역사를 소개하고 제4차 결집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이필원(가산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 상좌부의 경전과 언어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경 언어와 문자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설명한 박영길(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펠로우쉽 연구원), 티베트 언어와 문자의 기원, 불경번역사 등에 대해 간단하지만 매우 신뢰할만한 입문을 제공한 안성두(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방대한 중국의 역경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한 권탄준(금강대학교 불교복지학부 교수), 중관과 유식의 중요한 불경의 사본들이 현재 우리들에게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전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준 김성철(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법화경을 사례로 삼아 간략한 연구사와 함께 한 권의 출판물로 등장하기까지 어떠한 사본들을 통해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한 심재관, 한글에 담긴 불경의 의미에 천착한 최종석 등 한국불교학계의 내로라하는 실력 있는 학자들이 집필진으로 나섰다.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분이면 갖춰놓아야 할 요긴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