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기로 정평이 난 정우스님의 주지 부임 이래 몰라보게 말끔히 단장된 통도사. 그러나 달라진 것은 식당과 화장실 등 경내 건물들과 경내를 뒤덮은 잘 관리된 소나무 숲, 그리고 논밭과 연밭, 도로만이 아니었다. 유례없이 뜨거웠던 경인년 여름,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용맹정진을 한 수선납자들의 모습도 확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았고 눈빛을 형형했다. 무사히 공부를 마친 것도 그렇거니와, 정진 끝에 무엇인가 얻어진 경계를 방장스님 앞에서 확인받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에 설법전으로 모여드는 납자들의 안색은 마치 피부속이 보일 듯 투명하게 빛났다.
잿빛 승복에선 기운이 솟아오르고,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서는 중생을 위한 자비로움이 묻어나왔다. ‘통만법도중생(通萬法度衆生)’의 원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창공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점검과 회향의 길로 떠나는 납자들의 시선과 호흡 속엔 설렘도 섞여 있는 듯했다.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통도사 선방엔 선풍기 한 대도 없다”고 소개했다. 선풍기 소리가 정진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130년 만의 혹서라는 경인년 여름 안거에도 선납자들은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촌음을 아끼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경인년 해제법회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멀리서 찾아와줘 고맙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속세를 버리고 산중에 와서 공부하는 것을 (기자들이)알아야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영축총림 통도사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 원명 스님(73)은 하안거 해제를 맞아 해제일 하루 전 당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할 이야기가 뭐 있느냐”며 말문을 닫았다. 여전히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단호한 모습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안거 해제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방장스님의 ‘한 말씀’을 잔뜩 기대하고 대웅전 뒤 방장실 정변전(正편殿)을 찾은 이에겐 꽤나 서운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수좌들이 왜 그렇게 공부를 하는지’라도 해달라며 거듭 ‘한 말씀’을 조르자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문을 여신다.
“(누구나처럼)선방의 수좌스님들도 이 한 몸을 받아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왔다가 또 갑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수좌스님들은 바로 그 생과 사의 문제를 해결하러 정진하는 것이지, 달리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원명 스님은 “그리 아시라”며 옆에 있던 한 장의 다포(茶布)를 들어보인다. 다포에는 ‘寒山拾得 呵呵笑誰能識’(한산습득 가가소 수능식)이 인쇄돼 있다. ‘한산과 습득이라는 두 스님이 껄껄 웃는 것을 누가 능히 알겠는가’라는 의미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화두 한 자락’을 던진 스님은 큰 미소를 띠며 아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조주스님은 사람이 찾아오면 차도 주지 않고 ‘차나 마시고 가게’ 라고 했는데, 그래도 여러분들은 주지스님으로부터 차를 한 잔씩 얻어 드셨으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원명 스님의 ‘진짜 말씀’은 24일 아침 8시 설법전에서 거행된 해제법회에서 터져 나왔다. 스님은 해제법어를 통해 “범부와 성인을 뛰어넘는 근본 도리를 밝혀보려고 모두들 한 철을 두문불출하고 애를 썼다”며 “고인의 말씀처럼 혼신을 다해 깊숙이 살펴서 넓고 큰 바다가 되어야지 얕은 물처럼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 “해제는 자신의 막힌 곳을 선지식에게 묻고 골똘히 해서 명철하게 하기위한 방편”이라며 “한 철 동안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운수납자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와서 다시 한 바탕 애를 써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원명 스님은 이어 “一扁霞衲任風塵(일견하납임풍진)이여 定靜工夫不是眞(정정공부불시진)이라, 虎穴魔宮隨處樂(호혈마궁수처락)하니 逍遙天地作閑人(소요천지작한인)이로다”란 게송을 읊었다. ‘어깨에 누더기 걸치고 풍진에 내 맡김이여, 고요한 곳의 공부는 진실하다 할 수 없네. 호혈과 마궁에서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어야, 천지를 소요하는 한가로운 이라 하리라’란 의미다.
이날 방장 원명 선사의 해제법어를 듣기 위해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경인년 하안거 결제를 한 대중들이 참가했다. 방장스님의 게송에 맞춰 합장한 채 나무아미타불을 합송하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날 해제법회에는 통도사 큰절 선원인 보광전 무쌍선원 47명, 극락암 호국선원 28명, 서운암 무위선원 21명, 조계암 대적선원 7명, 석남사 정수선원 49명,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39명 등 출가납자와 보살선원 67명, 부산포교원 시민선원 26명, 홍법사 무위선원 13명 등 300백여 납자대중이 모여들었다.
방장 스님의 맑은 하늘색만큼이나 청량한 법어를 듣고 산문을 나서는 선납자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청산이 백운을 타고 노니는 신심 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이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경봉 스님의 맏상좌이기도 한 원명 스님은 1952년 출가이래 50년을 넘게 산문을 벗어나지 않고 수행승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스님이다. 지난 2007년 조계종 전 종정 월하 스님의 뒤를 이어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에 올랐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한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라 한 것은,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爲僧者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한 데서 비롯된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득도케 하였다.
이렇게 창건된 이 절은 이후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僧團)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중심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경내의 건물들은 대웅전과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비롯하여 영산전(靈山殿)·극락보전(極樂寶殿) 외에 12개의 법당과 보광전(普光殿)·감로당(甘露堂) 외에 6방(房), 그리고 비각(碑閣)·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일주문(一柱門)·범종각(梵鐘閣)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과 41년(인조 19)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세의 건물들이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이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보물 제334호인 은입사동제향로(銀入絲銅製香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奉鉢塔)이 있고,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소속 암자로는 선원(禪院)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비로암 등 17개의 암자가 있다.
